벤처·스타트업계 “티메프發 획일적 규제 중단해야, 이커머스 업계 타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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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 미정산 대금 1조3천억원, 입점업체 줄도산 현실로
정부, '이커머스 플랫폼 정산 주기 단축' 등 규정 신설 추진
벤처 업계 "이커머스 환경 악화, 중소 플랫폼 유동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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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를 계기로 정산 기간 단축, 판매 대금 예치 의무화 등의 규정을 신설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벤처·스타트업계가 확일적인 규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티메프 사태는 특정 업체가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탓에 발생한 것으로 과도한 이커머스 규제를 도입할 경우 혁신 플랫폼의 성장과 혁신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산 주기 등 규제로 ‘제2의 티메프 사태’ 번질 수도

26일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티메프 사태로 촉발된 이커머스 사업자에 대한 획일적인 규제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협의회는 “티메프 사태는 특정 기업의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경영 실패와 전자결제대행사(PG사) 등의 전자금융 감독규정 위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대책은 문제의 본질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협의회에는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이 참여했다.

지난 21일 정부는 티메프 사태 이후 이커머스의 정산 주기를 대규모 유통업자보다 짧게 설정한 ‘단축 정산 기한 규정’을 도입하고 이커머스와 PG사의 ‘판매 대금 예치·신탁·지급보증 보험 의무 규정’을 신설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대해 협의회는 “과도한 정산 기한 단축으로 다양한 정산 방식의 적용이 어렵게 돼 일일 정산과 송금에 따른 비용 부담이 급증하게 될 것”이라며 “나아가 새로운 정산 시스템 개발·운용비를 증가시켜 대·중견기업을 제외한 중소 이커머스 업체의 자금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의 ‘경영지도 기준’을 준수하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적절한 제재 수단 마련 등 현행 제도 내에서 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역설했다. 협의회는 “전 세계적으로 국내 플랫폼과 글로벌 플랫폼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을 자유로운 시장경쟁의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산업정책”이라며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을 보완하되, 규제의 도입으로 혁신 플랫폼의 성장과 혁신을 저해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판매 대금 예치·신탁·지급보증 보험 의무 규정의 신설은 업계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꼬집었다. 판매 대금의 전부 또는 과도한 비율로 제3기관에 예치·신탁을 강제하는 규제가 도입될 경우, 오픈마켓을 운영하는 벤처·스타트업을 포함해 업계 전반의 현금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 C커머스 사업자의 국내 시장 진출 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이커머스 사업자의 사업 환경을 악화시켜 제2, 제3의 티메프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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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 이어 알렛츠 미정산 사태 이어지며 피해 확산

금융당국에 따르면 일반적인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의 정산 기한은 40~60일이다. 네이버, G마켓, 옥션, 11번가 등 대형 플랫폼의 경우 최단 1영업일 이내 정산 처리를 하고 있지만 티메프와 같은 오픈마켓은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업체별로 정산 기한이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티메프의 정산 기한은 최장 70일에 달했다. 정산이 지체되면서 티메프가 입점업체에 지급하지 않은 미정산 대금의 규모는 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티메프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탓에 미정산 대금은 고스란히 입점업체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입점업체가 도산할 경우 금융사가 판매자를 상대로 추가 추심을 진행해 피해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그동안 대규모유통업법의 보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사실상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정부가 폐업 위기에 몰린 입점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1억6,000억원의 유동성 공급에 나섰지만, 자금력이 약해 ‘돌려막기’로 연명해 온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도산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영업 종료를 전한 알렛츠도 정산 지연으로 시작해 기업 회생에까지 이른 티메프 사태와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알렛츠의 입점업체는 2만7,000여 개로 지난 티메프 사태와 같이 폐업 결정 전에 대거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매출을 늘렸다. 하지만 돌연 폐업을 통보하면서 이제는 돌려받을 수 없는 신기루가 됐다. 알렛츠의 정산 주기는 최장 60일로 매월 16일이 중간 정산일이었으나 대부분의 입점업체가 아직 7월분 정산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파악된 미정산 판매 대금은 약 300억원으로 추산된다.

땜질식 대응엔 한계, 플랫폼에 맞는 법·제도 마련해야

이런 상황에 국회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정산 기간을 정한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안’이 8건 제출됐다. 모두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한 것이다. 이 외에도 이커머스의 판매 대금 정산 기한을 규제하기 위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상법) 일부 개정안’이 총 9건 발의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건, 민주당이 5건이다. 해당 법률안에는 짧게는 4일에서 평균 2주로 플랫폼 기업의 정산 기한을 규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대규모유통업법,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전상법 등을 관련 법령을 개별적으로 개정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판매자 보호 조치 강화를 위한 표준거래계약서 도입, 마케팅 비용 부담 전가 금지 등 조치를 마련해 사태 재발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게 아니라 기존 법을 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성격의 시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폭넓게 규율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플랫폼 서비스에 적용되는 법규가 복잡다단해진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티메프 등 이커머스 플랫폼에는 전상법·전금법·여신전문금융업법이 적용되고, 배달 플랫폼은 화물자동차법 등의 규제를 받는다. 이 때문에 신산업 분야인 플랫폼 업계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터질 때마다 유사한 법을 찾아 관련 조항을 추가해 개정하는 ‘땜질식 대응’으로는 플랫폼 서비스의 문제를 제대로 규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땜질식 대응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를 들 수 있다. 머지포인트는 음식점‧편의점 등에서 20% 할인된 가격에 사용하는 전자화폐로 고객의 선결제 대금으로 서비스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머지머니 판매가 중단되자 대규모 환불 사태가 벌어지면서 결국 1,000억원대의 미정산 대금이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선불충전금의 별도 관리를 골자로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했지만 결국 1년이 지나 올해 또다시 티메프 사태가 발생하면서 법 개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