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배기 계열사 ‘큐익스프레스’도 임금 체불, 큐텐발 유동성 리스크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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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익스프레스 대표, 임직원에 '급여 지연' 메일 공지
큐텐그룹 계열사 임금 체불 신고, 일주일 새 136건
알짜 회사마저 '흔들', 피해자들 "피해 구제 악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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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텐그룹 미정산 사태에 대한 피해 구제가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임금 체불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티몬·위메프(티메프)에 이어 큐텐그룹의 알짜회사로 꼽히던 큐익스프레스마저도 8월 급여 지연이 현실화한 것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임금 체불은 채무 변제 불가의 전조 현상이라는 점에서 대규모 미정산·미환불 사태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알짜’ 큐익스프레스도 급여 지급 지연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큐텐그룹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는 8월 급여를 정상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영선 큐익스프레스 대표는 ‘8월 급여 지연 사과문’이라는 제하의 메일을 통해 “일부 미지급 도매업체들이 큐익스프레스 은행 대부분의 계좌에 가압류를 긴급으로 설정해 출금이 안 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급여 지연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일부 직원들의 퇴직금도 지연된 상태다. 큐익스프레스에 따르면 7월 퇴사자들까지의 퇴직금을 모두 지급 완료한 상태지만 8월 퇴사 예정인 직원들과는 개별 협의를 통해 지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큐익스프레스의 임금 체불을 두고 티메프 임금 체불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현재 티메프는 물론 큐텐테크놀로지 등 큐텐그룹 계열사를 둘러싼 체불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큐텐그룹 계열사 임금 체불 신고 접수는 136건으로 △티몬 61건 △위메프 56건 △큐텐테크놀로지 19건 순이다. 아직 큐익스프레스에서는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지만, 이달 급여 지연 사태 해결 여부에 따라 신고 건수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현재 고용부는 임금 체불 예방과 피해 근로자 권리 구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지난 22일 서울강남지청과 서울남부지청에 별도의 티메프 전담팀을 꾸리는 등 적극 행보에 나선 상태로, 고용부는 임금 체불 피해자를 위한 대지급금 지급과 생계비 융자를 추진하면서 이번 사태의 여파로 발생한 대규모 실직자에게는 실업급여를 신속히 지원할 계획이다.

‘체무 변제 불능’의 신호탄 우려

티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 한국 계열사와 달리 비교적 재무 건전성이 탄탄한 것으로 평가받던 핵심 계열사 큐익스프레스마저 급여 지급에 난항을 겪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큐텐그룹이 촉발한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체로 확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 포트폴리오가 한국보다 동남아시아에 집중돼 있는 큐익스프레스는 다른 계열사들과 달리 연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뚜렷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최근 큐익스프레스의 재무적 투자자(FI)들이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를 몰아내고,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큐익스프레스는 살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급여 지급 불능 상황에 빠진 만큼 큐익스프레스를 비롯한 그룹 전체에 위기가 전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임금 미지급이 ‘채무 변제 불가능’의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큐텐그룹 계열사들의 임금 체불이 지속되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는 데다, 큐익스프레스가 새 주인을 찾아 독립할 경우 구 대표가 보유한 지분을 활용해 자금을 융통할 가능성도 희박해질 수 있어서다. 현재 큐익스프레스는 큐텐과 구 대표가 각각 지분 약 66%와 29%를 보유하고 있는데 FI들이 권리를 행사해 주식 전환을 하면 구 대표의 지분은 5% 미만으로 희석돼 소수 주주가 된다. 게다가 큐익스프레스의 독립은 피해자들의 거센 반발을 살 공산이 크다. 구 대표가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문어발 사업 확장을 감행하고 판매 대금을 돌려막기했다는 비판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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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성장에만 혈안, 성장 본질은 외면

실제 큐텐그룹 몰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사실상 무자본 M&A로 외형을 확장하는 데 몰두했던 것이 돈맥경화를 초래했단 지적이 비등하다. 구 대표는 큐익스프레스 상장을 위해 외형 확장이 절실했다. 이에 자본 잠식 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인수하는 데만 집중했을 뿐, 사업 효율성 강화, 현금흐름 창출 등 핵심 역량 강화는 뒷전으로 미뤘다. 과거 성공에 도취해 근본적 성장을 도외시했던 것이 몰락을 가속화한 것이다.

앞서 구 대표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던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할 당시 지분 교환 방식으로 품으면서 자기 자본을 거의 쓰지 않았다. 지난해 야놀자로부터 인터파크커머스를 인수하고, 올해 초 인터파크커머스를 통해 온라인 쇼핑몰 AK몰을 사들일 때도 주식 교환과 현금을 적절하게 섞어 거래를 성사시켰다.

사달이 난 것은 올 초 글로벌 쇼핑 플랫폼 위시(Wish)를 인수하면서다. 위시 인수 역시 큐익스프레스 상장을 위한 밑그림으로, 인수 금액은 1억7,300만 달러(약 2,300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위시를 인수하면서 구 대표는 ‘진짜’ 현금이 필요했다. 결국 위시 인수 자금을 마련하려 큐텐이 티메프 등 이커머스 계열사의 판매대금을 끌어 쓰는 과정에서 미정산 사태가 촉발됐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지적이다.

이렇듯 구 대표가 자본잠식 회사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인수를 감행했던 이유는 ‘계열사 거래액(GMV)을 키워 상장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GMV는 명확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고 이커머스 플랫폼 거래 규모에 따른 성장성과 점유율 등을 추정하기 위한 보조지표 성격이 짙다. 상당 기간 누적 적자가 불가피한 이커머스 플랫폼 특성상 기업가치를 계산할 때도 재무지표보다 GMV가 주로 쓰였다.

하지만 외형 확장에 혈안이 된 나머지 성장성을 외면한 선택은 결국 패착이 됐다. 현금흐름이 전무한 상태에서 GMV을 키우려다 보니 자본잠식 상태의 적자 회사를 줄줄이 인수하는 데만 주력했던 것이다. 티몬의 경우 2022년 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6,386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였고 지속된 적자로 누적 결손금만 1조2,644억원에 달했다. 위메프도 마찬가지다. 위메프는 2022년 54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 결손금이 2021년 6,077억원에서 6,624억원으로 급증했다. 큐텐에 인수되기 약 3개월 전 2022년 말 기준 자본총계는 -1,441억원이었다.

더 큰 문제는 큐텐이 이들 이커머스 기업의 고객 자금을 마치 자기자본으로 취급했다는 점이다. 이에 업계에선 사실상 ‘그림자 금융’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회사 자금을 다루는 ‘고유 계정’과 ‘고객 계정’이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유동성 고갈과 맞물려 정산 주기 시차를 악용한 그림자 금융으로 변질됐단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