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R 속도 조절하는 빅테크, 최우선 사업 AI에 투자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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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AR 스튜디오·디바이스 개발 잠정 중단 
올해 초 출시한 애플의 비전 프로도 판매 부진
시장 선두 주자였던 구글은 구글 글래스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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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가 기대보다 저조한 성과를 내면서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확장현실(XR)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 오픈AI의 챗GPT 출시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대한 경쟁이 심화하면서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I에 전사의 역량과 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메타, VR·AR 사업에서만 500억 달러 손실

29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 등 메타의 경영진은 최근 제품 검토 회의를 거쳐 프리미엄 MR 헤드셋의 개발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메타는 당초 2027년 출시를 목표로 애플과 경쟁할 프리미엄 제품을 개발해 왔으나, 애플이 올해 2월 출시한 비전 프로의 판매 실적이 기대보다 저조하자 XR 사업의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오는 2025년 1월부터는 AR 스튜디오 ‘메타 스파크’에 대한 서비스도 종료한다. 메타 스파크는 AR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으로 페이스북 등에 연동해 AR 필터와 효과를 제작하는 도구를 제공해 왔다. 블룸버그는 “메타는 올해 1월까지 VR·AR 사업에서만 500억 달러(약 66조원)의 손실을 본 상황”이라며 “경영진이 논의를 통해 사업 방향을 전환해 AI 등 우선순위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메타와 XR기기의 사업화를 위한 협업을 추진해 온 LG전자도 사업을 축소하고 시기를 늦추기로 했다. 앞서 지난 2월 한국을 찾은 저커버그 EO와 조주완 LG전자 CEO 등이 만나 차세대 XR 디바이스에 대한 협업 방향을 논의한 지 4개월 만이다. 지난 6월에는 해당 사업의 인력과 조직도 다른 부서로 재배치했다. LG전자는 “XR 시장이 당초 기대만큼 성장하지 않고 있어 사업화 계획을 늦추기로 한 것”이라며 “다만 XR과 관련헌 R&D는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글 글래스·홀로렌즈 단종, 비전 프로만 남아

10년 전 ‘1세대 구글 글래스’를 출시하며 가장 먼저 AR 시장을 개척했던 구글 역시 XR 사업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1세대 구글 글래스는 2014년 출시 후 1년 만에 단종됐고 이후 기업용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판매해 왔지만, 이 역시 지난해 단종됐다. 최근 들어 구글이 유명 선글라스 브랜드 레이밴의 모회사인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에 스마트 글래스 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아직 확정된 사안은 없는 상태다.

2015년 MR 제품 ‘홀로렌즈’를 개발한 MS 역시 2019년 발표한 ‘홀로렌즈2’를 끝으로 후속작을 출시하지 않고 있으며 올해 초에는 MR 플랫폼 ‘윈도우 MR(Windows MR)’에 대한 지원도 공식 종료했다. 2017년 처음 공개된 이후 7년 만이다. 당시 레노버, 에이수스, 델, HP, 삼성 등이 윈도우 MR 지원 헤드셋을 앞다퉈 출시했으나, 제한된 콘텐츠와 부진한 판매 실적으로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단 전언이다. CNBC에 따르면 MS는 지난 6월 MR 조직을 포함해 약 1,000명을 해고했다.

이로써 현재 빅테크 중 XR 시장에 남아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애플이 유일하다. 다만 애플도 야심 차게 내놓은 비전 프로가 3,500달러(약 462만원)라는 높은 가격에 비해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혹평을 받으며 예상보다 저조한 판매 실적을 기록 중이다. 블룸버그는 시장조사업체 IDC를 인용해 “비전 프로 헤드셋이 미국 출시 후 분기당 10만 대도 팔리지 않았다”면서 “3분기 역시 판매량이 75%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챗GPT 이후 메타·구글 등 빅테크 AI로 대이동

이처럼 글로벌 빅테크들이 잇따라 XR 사업에서 철수하는 배경에는 AI 분야에서의 경쟁 심화와 투자 확대가 있다. IT 업계의 기술 트렌드 변화로 XR 기술의 대중화가 지연되는 사이 AI 시장의 조기 개화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제로 최근 에이미 후드 MS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금 AI에 적극 투자하면, 향후 15년 이상 수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수년째 스마트 글래스 등 컨슈머용 디바이스에 주력해 온 구글도 대화형 AI 챗봇 바드(Bar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챗GPT와의 본격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메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저커버그 CEO는 2분기 올해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도 “연말까지 AI 투자 규모를 당초 계획한 300억 달러(약 40조1,500억원)에서 370억~40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몇 년간 과도기에 있던 메타가 AI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태세로 전환하고 있다”며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거대언어모델(LLM) 라마를 개발한 데 이어 AI 산업에 핵심인 전력 확보를 위해 관련 신기술에 베팅하고 있다”고 전했다.

MS도 AI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말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을 공식 발표한 이후 100억 달러(약 12조3,5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부터는 오픈AI와 함께 약 1,000억 달러(약 134조원)를 투자해 데이터센터도 구축한다. 이곳에는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에 활용할 슈퍼컴퓨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애플과 엔비디아 또한 구체적인 투자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픈AI에 각각 수조 원을 투자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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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천문학적 지출에도 성과 없어 ‘AI 버블론’ 부상

글로벌 빅테크의 AI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생성형 AI에 대한 기대와 투자가 명시적이고 실질적인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AI 버블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상장 주요 테크 기업인 ‘매그니피센트7(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테슬라‧엔비디아‧메타)’의 주가가 줄줄이 하락하기도 했다. 특히 엔비디아 주가는 5일 하루 동안 6.36%가 하락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AI 버블론이 부상하는 가장 큰 원인은 데이터센터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올해 빅테크의 AI 지출액은 연간 2,000억 달러(약 27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중 아마존, MS, 구글, 메타 등 빅테크의 AI 투자액은 5년 뒤 1조 달러(약 1,34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AI 연산에 쓰이는 ‘H100’’ 같은 데이터센터용 GPU를 아마존, MS, 메타, 구글 등에 팔아 천문학적 규모의 이익을 얻고 있다. 여기에 데이터센터의 전기료, AI 클라우드를 이용하기 위한 수수료 등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비해 수익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를 두고 지난 6월 미국의 대형 벤처캐피털(VC) 세쿼이아캐피털은 ‘AI의 6,000억 달러(약 803조원)짜리 문제’ 보고서를 통해 “AI 버블이 전환점에 도달하고 있다”며 “투자비용과 수익 사이의 큰 격차가 있어 AI 산업에서 6,000억 달러의 부가가치가 발생해야 시장 참가자들이 유의미한 수익을 챙겨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GPT 같은 AI 서비스의 수익성이 한계에 부딪히면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의 현금 흐름에도 문제가 생기고, 이는 업계 전반에 부정적인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