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 수록 손해” 미국 비트코인 채굴기업 주가 ‘급락’
비트코인 채굴기업 주가 '한 달간 약세', 고점 대비 절반 아래 뚝
채굴사들 "채굴 비용도 안 나와", 과거와 달리 반감기 후 급등 난항
비트코인 시세 5만7,000달러대로 추락 "명확한 촉매도 안 보인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채굴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최근 약세를 보이던 비트코인 가격이 결국 채굴 원가를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실적 악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트코인 채굴사 주가 ‘반토막’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비트코인 채굴사인 라이엇 플랫폼스(Riot Platforms)는 전날보다 2% 하락한 7.5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한 달 만에 27.4% 떨어진 수치다. 라이엇 플랫폼스 주가는 비트코인 가격이 강세를 보이던 올해 2월 14일 17.62달러까지 치솟았지만, 반년 만에 ‘반토막’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하락했다.
주가가 크게 떨어진 채굴사는 라이엇 플랫폼스만이 아니다. 마라톤 디지털(Marathon Digital)도 최근 5거래일 연속 하락 마감하며 같은 날 16.7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올해 들어 고점이었던 지난 2월 28일 주가 31.03달러와 비교해 46.2% 떨어진 것이다. 지난달 5일 15달러 넘는 가격에 거래가 됐던 아이리스 에너지(Iris Energy) 역시 약 두 달 만에 절반 수준인 7.91달러로 주가가 내려갔다.
채굴사의 주가는 비트코인 가격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때는 채굴 비용 대비 수익성이 높아져 주가가 상승하지만 반대로 비트코인이 약세를 보이면 채굴사의 실적 부진 가능성이 커져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올해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한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자, 채굴사의 주가도 크게 올랐다. 지난 1월 16달러대에 거래됐던 마라톤 디지털의 경우 한 달 만에 주가가 2배 가까운 수준으로 급등했고, 라이엇 플랫폼스 등도 단기간에 급등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점차 하락하면서, 채굴사 주가도 약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말 6만8,000달러대를 기록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2일 기준 5만7,000달러로 하락했다. 국내 비트코인 거래 가격 역시 약 한 달 만에 다시 7,000만원대로 내려온 상태다. 금융데이터제공업체 매크로마이크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비트코인 1개당 평균 채굴 비용은 7만6,300달러를 기록한 반면 같은 날 비트코인 가격은 5만8,970달러였다. 현재의 비트코인 가격에서는 채굴을 할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셈이다.
비트코인 채굴 원가가 시세보다 높아 “손해 막심”
가상자산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채굴사 주식에 대한 투자 심리가 악화된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 기준금리를 인하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미 비트코인 가격에 상당 부분 반영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또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치러지지만,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완화를 공언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조사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진행됐던 비트코인 반감기(채굴 보상이 평소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기) 이후 가격 흐름이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비트코인 반감기는 지금껏 4년 단위로 진행돼 왔다. 지난 2012년과 2016년, 2020년 반감기를 지난 후 비트코인 가격은 급등했다. 그러나 세 차례의 반감기를 거치면서 비트코인의 보상 물량 감소 폭도 줄었다. 과거 채굴자들은 블록 하나를 채굴할 때마다 50개의 비트코인을 받았으나 2012년 첫 번째 반감기에서 채굴 보상이 25개로 줄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반감기를 거치면서 각각 12.5개, 6.25개가 된 데 이어 올해 4월 반감기 후 보상은 3.125개로 감소했다. 과거에는 반감기를 거치면서 공급 물량도 크게 줄어 비트코인의 희소가치가 높아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같은 효과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채굴사의 실적도 알화일로를 걷고 있다. 마라톤디지털홀딩스는 2분기 1억,9970만 달러(약 2,67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허트8마이닝 또한 7,190만 달러(약 963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보유한 비트코인의 가치 하락과 채굴 난이도 향상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영향이 컸다. JP모건에 따르면 지난달 비트코인 채굴 수익성은 올해 초 반감기 이전과 비교해 무려 40%가량 낮은 상황이다.
물론 채굴사들은 채굴한 비트코인을 바로 판매하진 않는다. 시장 상황을 보고 유리한 상황에서 매도에 나선다. 다만 대부분 채굴사는 비트코인이 지지부진한 흐름을 오랫동안 지속하자 손해를 보고서라도 판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인전문매체 크립토포테이토에 따르면 지난 3개월 동안 채굴업자가 비트코인을 매도하기 위한 경로인 장외거래(OTC) 창구 잔액이 70% 이상 증가했는데, 과거에도 비트코인 OTC 창구 잔액 증가는 비트코인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재정난 직면 ‘로디움 엔터프라이즈’, 자발적 파산 신청
이렇다 보니 파산하는 채굴사도 생겨나고 있다. 미국 가상화폐 전문 매체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로디움 엔터프라이즈(Rhodium Enterprises)는 미국 텍사스 남부 연방 파산법원에 최대 1억 달러의 부채를 공개하며 챕터 11에 따른 자발적 파산을 신청했다. 신청서에는 로디움 앙코르(Rhodium Encore), 조던 HPC(Jordan HPC), 로디움 JV(Rhodium JV), 로디움 2.0(Rhodium 2.0), 로디움 10MW(Rhodium 10MW), 로디움 30MW(Rhodium 30MW) 등 6개 자회사도 포함됐다. 문서에 따르면 로디움의 부채는 5,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사이며 총 자산은 1억 달러에서 5억 달러(약 1,340억~6,700억원) 사이로 추정된다.
로디움의 파산은 재정적 어려움에 따른 것이다. 로디움 엔터프라이즈는 지난 7월 5,400만 달러(약 724억원)의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납입 마감일 전 부채 구조조정 제안이 있었으나, 이해관계자들 간의 의견 불일치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촉발됐다. 로디움은 자발적 파산에 따라 회사 운영을 지속하면서 부채를 재조정할 수 있게 됐으며 수정된 조건에 따른 상환 계획 협상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JP모건은 채굴사들의 2분기 실적과 채굴 효율성 개선, 해시레이트 목표 등 기업별 발표를 반영해 주가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구체적으로 현물 비트코인 가격 가정을 6만8,000달러에서 6만 달러로 낮췄고 기준 네트워크 해시레이트 가정을 초당 600엑사해시(EH/s)에서 615 EH/s로 상향 조정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채굴사들의 EH/s당 목표 총이익 추정치가 감소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금이 매수 기회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하락세에서 명확한 촉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몇 가지 긍정적인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이 반응하지 않고 있어서다. 또 비트코인에 대한 기관 투자자들의 수용도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SEC에 접수되는 올해 2분기 13F 신고서(주식자산 1억 달러 이상 대상)에 따르면 비트코인 현물 ETF의 기관 보유자는 1,924곳으로 증가했다. 이는 비트코인 가격이 4~6월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분기 1,479곳에서 증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