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공장 폐쇄 시사한 폭스바겐, 독일 경기 침체 장기화·수출 급감에 ‘결단’ 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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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에 獨 경기 침체 장기화, 폭스바겐도 심각한 상황
완성차업계 부진 가시화, 2019년 대비 지난해 독일 생산 자동차 13% 감소
성장성 커진 아시아 완성차 업체 약진에 독일 3대 자동차 그룹 실적 하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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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자동차 제조 업체인 독일 폭스바겐 그룹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국 내 공장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 이후 발생한 경기 침체가 폭스바겐에도 직격타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최근 아시아 완성차 업체가 부쩍 성장한 것도 폭스바겐의 부담을 키웠다. 아시아 업체가 독일 업체의 점유율을 갉아 먹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폭스바겐 공장 폐쇄 검토

3일(현지 시각) 올리버 블루메(Oliver Blume) 폭스바겐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자동차 산업이 몹시 어렵고 심각한 상황에 있다”며 완성차 공장과 부품 공장을 각각 한 곳씩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운 경쟁자가 유럽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 내에 제조 공장을 유지하는 건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뒤처지게 만든다”며 “단순한 비용 절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고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폭스바겐 산하 브랜드 아우디도 지난 7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Q8 e트론 생산을 중단하고 이 모델을 생산하던 벨기에 브뤼셀 공장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경영진은 아울러 1994년부터 유지해 온 고용안정협약도 종료할 뜻을 밝힌 상태다. 대대적인 구조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이 같은 소식에 폭스바겐 노동조합 측은 즉각 항의하고 나섰다. 공장 폐쇄 및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자리 약 2만 개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다니엘라 카발로 노사협의회 의장은 “수익성과 고용 안정성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수십 년간 합의에 경영진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우리 일자리와 노동 현장, 단체협약에 대한 공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산업 노조(IG메탈) 역시 “폭스바겐의 근간을 뒤흔드는 무책임한 계획”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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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제 침체기, 완성차업계도 부진

폭스바겐이 노측의 반발을 무릅쓰고 구조조정을 시사한 건 독일 경제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독일의 수출액은 1,277억 유로(약 191조8,000억원)로 전달 대비 3.4% 감소했다. 이는 전문가 예상치인 마이너스(-) 1.5%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국가로의 수출이 3.2% 감소해 485억 유로(약 72조8,000억원)를 기록했고, 대미국 수출이 7.7% 줄어든 129억 유로(약 19조4,000억원)로 집계됐다. 대중국 수출은 79억 유로(약 11조9,000억원)로 3.4%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독일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부터다. 제조업 기반의 수출에 주력하던 독일로선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를 감내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실제 독일 경제는 2022년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7분기 동안 총 4번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올해 경제성장률도 1분기 0.2%, 2분기 -0.1%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독일 정부는 올해 0.3% 성장을 전망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독일 제조업의 상징인 완성차업계도 부진한 상태다. 시장분석업체 마크라인스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내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약 410만 대 수준이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약 470만 대보다 13%가량 적은 수량이다. 올해 상반기 생산량도 약 210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약 9% 감소했다. 독일은 자국에서 생산한 자동차 4대 중 3대꼴로 수출한다. 제조 수량이 줄었다는 건 결국 수출량이 줄었단 의미다.

아시아 자동차 업체 약진, 독일 업체 부담 커졌다

독일의 경기 침체기는 당분간 지속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등 아시아 지역 자동차 업체들의 약진이 이어지면서 독일 자동차 업체들의 점유율이 점차 낮아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 EY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25% 급감했다. 반면 일본 업체들은 엔저 효과를 등에 업고 매출 17% 및 영업이익 87% 상승이라는 급격한 성장을 기록했다.

독일 3대 자동차 그룹(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벤츠)의 부진은 더욱 심각하다. 1분기 3사의 영업이익은 총 125억 유로(약 184조4,7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4.8% 감소했다. 영업이익률도 크게 하락했다. 지난해 마진 1위였던 메르세데스-벤츠는 10.8%로 3위까지 추락했고, BMW는 11.1%로 2위에 그쳤다. 한국의 기아가 13.1%의 높은 이익률로 1위를 차지한 것과는 대비되는 양상이다.

독일 자동차의 점유율 하락은 국내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량 3위를 기록했던 독일 아우디는 올해 1월 판매량 12위, 2월 11위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BMW는 올해 상반기 총 3만5,130대를 판매해 28%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단순 판매량은 지난해 상반기 3만8,406대에서 올 상반기 3만5,130대로 7.8% 줄었다. 벤츠 역시 상반기 3만11대를 판매해 점유율 2위를 기록했지만 전년 동기(3만5,423대)와 비교하면 15.3%가량 판매 수량이 감소했다.

반면 일본 토요타와 혼다는 한국에서 호실적을 기록했다. 토요타는 올해 상반기 4,535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3,978대) 대비 14% 판매가 증가했고 혼다 역시 1,241대를 판매하며 116.6%의 성장세를 보였다. 국가별 등록 대수 면에서도 상반기 독일 차는 전년 동기(9만2,631대) 대비 18.8% 줄어든 7만5,182대를 기록한 데 반해 같은 기간 일본 차는 1만2,197대로 전년 동기(1만1,501대) 대비 6.1% 늘었다. 독일 차보단 일본 차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늘었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