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동행노조 교섭 요구 가능성 시사, ‘노노갈등’ 벌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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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노조 전삼노, 8월부로 교섭권·쟁의권 상실
3노조인 동행노조 4기 집행부 전 직원에 메시지
"총파업으로 직원들만 피해, 정책으로 소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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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3노조인 삼성전자노조동행(동행노조)이 4기 집행부 출범을 맞아 사측에 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재교섭 계획에 차질이 예상된다. 동행노조는 지난 5월부터 진행된 총파업에 관해 ‘소통의 문을 닫은 회사와 강성 노조가 합리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비판한 바 있는 데다, 전삼노도 동행노조를 ‘어용노조’라 비난하는 등 양측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 노조 간 갈등이 점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동행노조 “비노조원이 가입하고 싶은 노조 만들 것”

4일 업계에 따르면 동행노조는 4기 집행부 출범을 맞아 박재용 위원장 명의로 삼성전자 전 직원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파업이나 집회가 아닌 정책으로 먼저 소통하겠다”며 “동행노조는 조합원을 위한 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과 상생할 수 있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회사 안팎에서는 지난달 5일을 기점으로 전삼노가 대표교섭권을 잃은 상황에서 동행노조가 사측과의 교섭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박재용 동행노조 위원장은 전삼노가 동행노조를 ‘어용노조’라고 표현한 데 대해 “직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는 동행을 두고 어느 누가 우리를 어용이라며 욕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우리 동행은 진정한 노조의 길을 열도록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박 위원장은 “회사를 비방하고 서로의 발전이 저해되는 일에는 단 1원의 조합비도 사용하지 않겠다”며 “비노조원이 가입하고 싶은 노조를 만들어 보자”고 강조했다. 이는 전삼노에 가입하지 않은 8만 여명의 직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동행노조는 전삼노가 주도해 온 총파업이 3주째 접어든 지난 7월 26일 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통해 “총파업을 통한 대표 노조의 협상을 기대했지만, 회사와의 첨예한 대립으로 더 이상 합리적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며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강성 노조의 힘은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실망만 안겨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통의 문을 닫아버린 회사와 서로의 이익만을 위하는 노조”라며 “직원들만 서로 갈라지고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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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사무직 노조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통합 발표식 모습/사진=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전삼노, 교섭권 확보 위해 다른 노조와 전략적 연대

현재 삼성전자에는 △삼성전자 사무직 노조(사무직 노조·1노조) △구미네트워크노동조합(구미노조·2노조) △삼성전자동행노동조합(동행노조·3노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4조노) △삼성그룹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5노조) 등 5개 노조가 있다. 이 중 삼성전자의 최대 노조인 전삼노는 최근 사무직 노조와 통합에 합의하고 실질적인 법적 절차만 남겨둔 상황이다.

전삼노는 지난해 8월 대표교섭권을 확보했지만 권한 유지 기간인 1년간 노사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지난달 5일까지만 대표교섭노조의 지위가 보장됐다. 기간 만료 후 다른 노조가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면 개별 교섭을 진행하거나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전삼노는 대표교섭권과 쟁의권을 상실하게 된다. 여기에 최근 신규 노조인 6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점도 전삼노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전삼노는 구미노조 등 다른 노조와의 연대를 통해 교섭권과 파업권을 재확보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달 29일 전삼노 집행부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애초 교섭에 나서기로 했던 구미노조가 교섭 요구를 철회하기로 했다”면서 “집행부 긴급 논의를 통해 전삼노와 통합을 선언한 1노조가 교섭 요구를 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고 밝혔다. 즉 전삼노와 1노조가 통합을 앞둔 상황에서 집행부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1노조가 다른 노조를 견제하기 위해 교섭 요구를 한 것이란 설명이다.

회사 안팎에서는 전삼노가 설사 쟁의권과 교섭권을 잃더라도 1노조와 우호적인 관계인 데다 전 직원의 37%인 3만6,600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만큼 다시 대표교섭권을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다만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 등을 감안하면 한 달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전삼노 집행부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파업을 이어가기보다 해당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고 다시 파업권을 획득해 장기전을 준비할 것”이라며 “절차에 따라 교섭 창구 단일화가 완료되면 10월 1일 이후 교섭이 본격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삼노의 총파업은 명분·실리를 모두 잃어”

삼성전자의 노노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전삼노가 총파업을 선언하자 5노조인 초기업노조는 입장문을 내고 “최근 전삼노의 행보와 민주노총 회의록을 보면 총파업이 직원의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단체 가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 그 목적성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초기업노조에는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노조와 삼성화재 리본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삼성전기 존중지부 등 5개 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행노조, 초기업노조와 갈등을 빚어왔던 총파업도 전삼노가 쟁의권을 상실함에 따라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전삼노는 5월 총파업 이후 게릴라 파업 등의 방식으로 쟁의행위를 이어왔다. 이에 대해 전삼노는 “총파업으로 파운드리 생산 라인 등에서 실제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측은 “가용한 인원을 활용해 충분히 대응함으로써 생산 차질은 전혀 없었다”며 전삼노의 주장을 일축했다. 재계에서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한 상황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무의미한 총파업이었다”며 사실상 총파업이 실패한 것으로 평가했다.

결국 이번 파업의 실질적인 피해는 전삼노 노조원들이 입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사측의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따라 파업 기간 동안 임금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교섭 과정에서 파업타결금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앞서 사측도 “관련 법률에 따라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철저히 지킬 것이며, 추후 파업 근태의 연차 전환에 대해서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완고한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