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 두고 3자 연합-형제 측 ‘기싸움’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 노리는 3자 연합, 이사회 구성원 확대 등 안건이 중심
우호 지분 상대적으로 적은 형제 측, 한미약품 최대 주주 지위 활용해 기회 잡나
3자 연합- 형제 사이에 낀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 거취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임주현 부회장 등 3자 연합이 법원에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주총회 소집 허가를 신청했다. 이사회 장악을 위한 밑바탕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3자 연합에 대한 우호 지분이 더 많은 상황인 만큼, 임시주총 개최 시 3자 연합이 유리한 고지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겸 한미약품 사내이사)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등 형제 측은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 소집을 반대함과 동시에 한미약품 임시주총으로 기회를 노릴 계획이다. 한미약품의 최대 주주가 한미사이언스인 만큼 한미약품 이사진 구성에 있어 자신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단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약품 3자 연합,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 개최 허가 신청
5일 업계에 따르면 신 회장과 모녀 측 3자 연합은 최근 법원에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 개최를 위한 허가를 신청했다. 3자 연합은 앞서 지난 7월 한미사이언스에 임시주총 소집을 요구했지만, 한미사이언스는 이사 후보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소집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이에 대해 3자 연합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세종은 “상법에 따라 정당하게 요구한 임시주총에 대해 한미사이언스는 현재까지 소집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3자 연합은 더 이상의 기다림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법원에 임시주총 소집 허가를 신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3자 연합은 기존 10명 이내로 정하고 있는 이사회 구성원 수를 11명으로 늘리는 정관 변경의 건과 이에 따른 이사 2인 추가 선임에 대한 의안을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선임을 요청한 이사 2인은 신 회장(기타비상무이사)과 임 부회장(사내이사)이다.
이들이 임시주총 소집에 사활을 거는 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장악하는 데 임시주총이 필요불가결 조건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임종윤 사내이사와 임종훈 대표를 포함해 형제 측 인사가 5명, 과거 송 회장 경영 시기 선임된 이사가 4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3자 연합이 새 이사를 1명 선임해 현재 이사회 정원인 10명을 채우더라도 5:5로, 이사회 의사결정은 고착 상태를 면치 못한다. 결국 3자 연합이 이사회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임시주총을 통해 이사회 정원을 늘리는 정관 변경의 건을 통과시켜야만 한단 의미다.
형제 측은 반발, 한미약품 임시주총으로 기회 노린다
임시주총이 개최되면 3자 연합 측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형제 측인 임종윤 사내이사와 임종훈 대표보다 3자 연합 측이 우호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한 상태기 때문이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구조는 6월 30일 기준 3자 연합 측이 48.19%, 형제 측이 29.07%다. 5.53%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공단과 2.2%의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연대의 표심이 변수로 남아 있긴 하나,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3월 주총에서 형제 측 이사 선임 안건에 모두 반대한 바 있어 3자 연합에 붙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형제 편을 들었던 소액주주연대도 이번 임시주총에 대해선 “주가 부양 의지가 높은 쪽을 지지하겠다”고 밝혀 형제 측을 지지하리란 보장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형제 측은 임시주총 요구에 격렬히 반발하는 모양새다.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2일 3자 연합의 임시주총 소집 청구 관련 추가 문건을 수신하면서 “신 회장 본인이 한미약품그룹 회장 직위가 부담스럽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볼 때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을 지주사 대표로 앉히려는 수순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3자 연합의 이 같은 행보는 ‘기-승-전-경영권 획득’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3자 연합은 그동안 ‘전문 경영’이라는 표현을 내세워 지주사를 중심으로 한 한미약품그룹의 근간을 흔들어왔다”며 “이번 공문(임시주총 소집)은 지주사 이사회에 진입해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에 형제 측은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 개최를 거부함과 동시에 한미약품 임시주총으로 기회를 노릴 방침이다. 현재 한미약품의 최대 주주는 지분 41.42%를 보유한 한미사이언스다. 형제 측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활용해 한미약품 이사진을 교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얘기다. 물론 한미약품 이사회는 3자 연합 우호 세력이 우세한 상황인 만큼 이사 해임 안건을 처리하기엔 의결권이 부족할 수 있다. 다만 한미약품 주식을 보유한 모든 주주가 출석하지 않는다면 형제 측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임종윤 사내이사도 이와 관련해 “한미약품 지분에서 개인 주주 비율이 높은 만큼 모든 주주가 주총에 참석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참석 가능한 사람을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니 당장 임시주총을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한미약품이 한미약품그룹의 ‘핵심’인 만큼, 형제 측이 한미약품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면 경영권 분쟁의 저울은 형제 쪽으로 급격히 기울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한미약품그룹의 실적을 보면 한미약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는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6,292억원을 기록했다. 동기간 별도 기준 매출이 1,020억원임을 고려하면 자체 사업으로만 낸 매출은 16%에 그친다. 반면 한미약품은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으로만 매출 7,818억원을 거뒀다. 한미약품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의 매출이다.
‘꼭두각시’로 전락한 한미약품 대표
문제는 경영권 분쟁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동안 기업 경영이 불안정해지고 있단 점이다. 3자 연합과 형제 측 사이에서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꼭두각시’로 전락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박 대표의 직급은 대표에서 전무로 기습 강등됐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서울 본사가 아닌 지방 지사에 있는 제조본부를 맡게 된 것이다. 박 대표는 송 회장과 임 부회장 측 인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기습적인 최고경영진 교체 사태로까지 번진 것이다.
박 대표에 대한 형제 측의 견제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박 대표가 직위 강등 처분 전 한미사이언스와는 별도로 인사조직 신설을 추진한 바 있어서다. 박 대표는 지난달 28일 한미약품 내 인사·법무팀을 신설하고 이승엽 전무이사와 권순기 전무이사를 각 팀 리더로 선임하는 내용의 인사 발령을 냈다. 그간 한미약품 인사는 한미사이언스가 담당했는데, 여기서 벗어나 독립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에 대해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의 인사 조직 등은 중요한 의사결정 사안이기에 이사회에서 정할 문제인데, 이를 대표이사가 독단적으로 정하는 건 절차 위반”이라며 “박 대표의 독단적인 인사조직 신설 결정은 명백한 해사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미약품의 최대 주주인 한미사이언스를 사실상 ‘패싱’하려는 박 대표의 모습에 직접적인 반발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3자 연합 측은 박재현 단독 대표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2일 한미약품은 임시이사회를 개최하고 ▲박재현 대표의 북경한미약품 동사장(이사회 의장) 교체 안건 ▲임종윤 사내이사의 대표이사 선임 안건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첫 번째 안건은 참석자 10명 중 7명이 찬성했고, 임종윤 사내이사의 대표이사 선임 및 박 대표 해임 건은 논의 도중 임종윤 사내이사와 임종훈 대표가 이탈하면서 끝내 부결됐다. 형제 측의 경영권 장악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은 셈이지만, 향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달아 일어날 경우 경영상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