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갈림길 선 ‘티메프’, 피해자들은 재발 방지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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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단체, 국민의힘·민주당 앞에서 집회
한동훈·이재명 대표 앞으로 진정서도 전달
회생법원, 티메프 회생 개시 여부 심리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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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위메프(티메프)의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발생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피해 회복 절차는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 단체가 여야 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문제 해결과 피해 구제·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여야 대표에게 관련 진정서도 전달했다. 한편 서울회생법원은 회생 신청 한 달 만에 회생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심리에 돌입했다. 회생 신청이 기각되면 사실상 판매자들의 손해 복구가 불가능해지는 만큼 회생 절차 개시 후 투자 유치, 채무 탕감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티메프 피해자들 “정부 무관심에 전자상거래 사망”

8일 티메프 피해자 모임인 ‘검은 우산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이하 검은 우산 비대위)’는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차례로 ‘전자상거래 추모 장례식’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신정권 비대위원장은 “전자상거래의 안전과 신뢰가 정부의 무관심과 부실한 대처로 사망했다”며 “이커머스 시장은 한때 법적 보호장치가 없는 상태에서도 성공을 거뒀으나, 소비자와 판매자를 보호할 명확한 법적 장치의 부재와 관리·감독의 소홀함이 결국 시장을 몰락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티메프는 금산분리의 원칙을 무시한 채 전자상거래와 전사금융업의 내부 겸영을 통해 회사의 부실을 금융업 전반으로 전이시켰다”며 “이 모든 과정에서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뤘고, 결국 소비자와 판매자는 피해를 떠안으며 희생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집회 참가자들도 “보호도 없고 구제도 없는 이커머스 사망 사태”라고 외치며 “머지 사태·티메프 사태에 이은 제3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신 위원장과 검은 우산 비대위는 각 당사 앞에서 집회를 마친 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앞으로 전자상거래 특별법 제정을 골자로 하는 진정서를 전달했다. 신 위원장은 “티메프 사태의 핵심은 법적 제도와 관리 규제의 허점을 이용해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정산 대금을 사기업이 계획적으로 유용한 것”이라며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 구제뿐 아니라,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가 공정하고 안전한 전자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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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W 주주 참여 안내문/출처=큐텐그룹

1조3,000억원 미정산 사태에 구영배 구속 집회까지

아울러 경영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티메프 사태가 발생한 지 2개월이 지났음에도,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판매자나 소비자와 달리 티메프와 모기업인 큐텐그룹의 경영진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29일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는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사태 수습에 사용하겠다”는 사과 입장문을 낸 지 7시간 만에 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어 지난달 9일에는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자 전용 사이트에 사업 정상화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KCCW(K-Commerce Center for World) 신규법인 설립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KCCW는 구 대표가 티몬과 위메프의 합병 추진을 위해 설립한 기업으로 지난달부터 ‘KCCW 판매자 조합 1호 전환사채(CB) 참여 의향 신청서’를 판매자로부터 접수하기 시작했다. 구 대표는 법원에 출석해서도 판매자들에게 KCCW의 주주로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구영배 대표는 “티메프를 매각해서는 피해 회복이 어렵지만 두 회사를 합병하면 사업 규모가 국내 4위로 상승한다”며 “합병으로 과감하게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해 기업가치가 되살려야 투자 유치나 M&A도 가능해지고, 제 지분을 피해 복구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읍소했다.

구 대표는 큐텐의 최대 주주로 나스닥 상장을 추진해 온 큐익스프레스의 지분도 29.4% 보유하고 있지만 큐텐그룹 전체가 경영난을 겪고 있어 구 대표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담보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1조3,000억원에 달하는 판매 대금의 행방을 설명하거나 채권단과의 이견 조율에 노력하지 않는 구 대표의 태도에 “KCCW의 투자금을 유치하려는 행위는 현재의 의혹을 덮기 위한 행동으로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며 날 선 입장을 내놓고 있다.

티메프 “과도한 언론보도와 괴소문이 사태 악화시켰다”

사태의 원인을 두고도 경영진과 피해자 간 입장 차가 상당하다. 법원에 제출한 회생 신청서에서 티메프측은 “지난 7월 정산 지연 사태는 일시적인 전산 오류에 따른 일종의 해프닝이었으나 당사의 자금 상황 등에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거래 중단, 소비자의 환불 요청, 판매자의 이탈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후 계속되는 언론 보도와 괴소문에 자금 이탈이 가속화됐고 은행 등의 대출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면서 당사의 현금흐름 또한 급격히 악화돼 결국 정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애초에 이번 사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티메프 합병, 나스닥 상장 등의 절차를 거쳐 쿠팡을 추월하는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티메프 측의 주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커머스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일부 긍정하는 반응이 나온다. 과도한 ‘대금 돌려막기’는 분명 ‘버블’이지만 소비자의 이탈과 유입이 자유로운 이커머스의 특성상 외형 성장을 추진하는 단계에서는 적자를 보더라도 출혈 경쟁을 통해 점유율을 높이는 투자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금과 상품성을 갖춘 이커머스 업체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국내 이커머스 업계는 일부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 플랫폼에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G마켓은 신세계그룹이 2021년 3조4,000억원에 인수한 후 매년 적자를 기록했고 SSG닷컴도 2018년 물적분할 이후 매년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최근 두 업체 모두 수장이 교체됐다. 롯데쇼핑의 이커머스 사업 부문인 롯데온의 경우 지난달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공지했다.

중소·영세 이커머스 플랫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외형 성장기를 지나 수익 창출 단계 때까지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동성 확보가 핵심이지만 금융당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산 기한을 최단 10일로 제한할 것이 유력해지면서 중소 플랫폼이 고사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진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 C커머스의 공세 속에서 막대한 자금력이 필요한 물류 경쟁까지 격화하고 있어, 자본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이커머스들은 서서히 시장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자율 구조조정 기간 연장 불발, 파산·회생 갈림길

한편 서울회생법원은 회생 신청서를 접수한 지 한 달이 경과한 지난달 30일 2차 회생절차 협의회를 마치고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악화된 티메프의 자금 수지 상황과 낮은 투자 유치 가능성 등을 고려했을 때 ARS의 연장에 따른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다. 앞서 지난 6일 ‘티메프 피해 판매자 비상대책위원회’는 법원에 티메프 회생 개시 여부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회생 개시에 맞춰 조사위원 선정부터 채권액 조사까지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법원은 각 채권자로부터 받은 의견서를 받고 회생 개시 여부에 대한 심리에 돌입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오는 14일 이전 개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기각보다는 회생 개시에 무게가 실린다. 회생 신청을 기각할 경우 사실상 파산으로 이어져 판매자의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대규모 기업의 회생 사례와 미정산 판매자 등 다수 채권자가 존재하는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우선 회생 절차를 개시한 후에 다시 사안을 들여다볼 가능성이 높다.

이는 티메프에 대한 투자 유치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티메프는 지난 2차 협의회 당시 조건부로 투자를 희망하는 투자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두 회사는 회생 절차 개시되면 회생 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티메프 기업 회생을 승인하면 전체 채무의 상당 부분을 탕감하고, 남은 채무는 최대 10년간 기업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갚게 된다. 하지만 전체 미정산 대금이 1조3,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이 중 80~90%는 탕감돼야 그나마 회생 가능성이 있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