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 中 하이브리드차 열풍에 점유율 역성장
충전소 등 전기차 인프라 부족에 하이브리드차 수요 급증
정부 보조금 지원받은 中 업체, '저가 하이브리드차' 공세
WSJ "하이브리드 수요 전환에 테슬라 부진 장기화 우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BYD 등 현지 자동차 업체가 정부로부터 인센티브를 지원받아 저가의 하이브리드차를 잇달아 출시하면서다. 순수전기차(BEV)를 고집해 온 테슬라는 2019년 이후 중국 시장에 신차를 선보이지 못하면서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테슬라 中 판매량 1.9% 감소, 전기차 점유율도 하락
9일(현지시각)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에 따르면 지난달 테슬라가 중국에서 판매한 차량은 6만3,456대로 전년 동월 대비 1.9%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테슬라의 중국 매출도 92억 달러(약 12조3,6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억 달러(1조8,800억원) 쪼그라들었다. 중국 순수전기차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하락했다. 전기차 전문매체 CNEV포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테슬라의 점유율은 10.9%로 전년 동월 대비 2.3%포인트 떨어졌다.
중국 시장에서 테슬라의 부진은 하이브리드차의 약진과 관련이 깊다. 순수전기차만을 고집하고 있는 테슬라와 달리 현지 자동차 업체들은 최근 하이브리드차 수요 급증에 힘입어 앞다퉈 하이브리드차량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테슬라의 경쟁사들이 하이브리드차를 비롯해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사이 테슬라는 현지 자동차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지난 6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자동차 업체가 올해만 100개 이상의 신모델을 출시한 반면 테슬라는 2019년 이후 중국에서 신차를 출시하지 않았다”며 “테슬라가 신제품 없이 경쟁사의 매출을 빼앗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차이나 드림이 최대 위기에 처했다”고 평가했다. 포천도 “중국 자동차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테슬라는 중국 브랜드에 밀리며 성장세가 둔화했다”고 전했다.
하이브리드차 신모델 출시로 中 업체 점유율은 상승
최근 중국에서는 충전·주행거리 등의 측면에서 사용 편의성이 높은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더해 가족용·휴가용 차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수요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순수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합친 친환경차의 8월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42% 증가하며 1백만 대를 돌파했다. 8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을 비교해 보면 전기차는 전년 동월 대비 30% 증가한 데 반해 하이브리드차는 90% 가까이 급증했다. 테슬라와 경쟁하는 현지 자동차 업체의 판매량도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급증했다. BYD는 8월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30% 급증한 37만544대를 기록했는데 이 중 순수전기차는 12%, 하이브리드차는 48% 증가했다.
테슬라도 8월 판매량이 38만8,000대를 기록하며 최고치를 경신하긴 했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은 3%로 BYD 증가율 30%에는 크게 못 미쳤다. 포천에 따르면 이 기간 테슬라는 순수전기차 수요가 충분치 않아 4월 재고분 처리를 위해 생산량을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중국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받은 현지 자동차 업체들이 저가의 하이브리드차를 공급하면서 테슬라를 비롯한 해외 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승용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가격을 내린 중국산 신에너지 차종이 136종에 이른다. 하이브리드 열풍에 그동안 순수전기차에 주력해 온 샤오펑이나 지리자동차의 전기차 사업부 지커도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하기로 했다. 하이브리드차 가격 인하와 신모델 출시 효과 등으로 올해 중국 자동차 업체의 자국 내 점유율은 60%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테슬라는 친환경차 시장에서의 부진을 자율주행차로 만회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5일 테슬라는 차량의 자율주행을 목표로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 FSD(Full Self-Driving) 판매를 내년 1분기에 유럽과 중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해당 계획은 규제 당국의 승인에 달려 있다는 단서가 포함됐다. 이날 ‘테슬라 AI’ X에 게시한 테슬라의 로드맵에는 FSD 작동 중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하기 전까지 차량이 자율적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종전보다 6배 늘린 ‘v13 버전’을 오는 10월에 출시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오는 10월 10일에는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있는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로보택시 데이’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 행사를 통해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술의 미래와 로보택시 서비스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 모건스탠리는 “로보택시 데이에 테슬라가 단순히 FSD 기술 시연과 로보택시 시제품 공개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깜짝 발표할 수 있다”고 예측하면서 “이날은 단순한 신제품 발표 행사를 넘어, 테슬라의 미래를 가늠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美도 전기차 수요 둔화에 하이브리드차 대세론 부상
한편 중국과 함께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서도 하이브리드차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기차 인프라 미비로 미국에서 휘발유차와 전기차의 겸용인 하이브리드차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며 “전기차 인프라 부족 등으로 순수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둔화하는 가운데 엄격해지는 자동차 배기가스 제한으로 인해 당분간 하이브리드차의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순수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의 부진이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대선도 변수로 등장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비난해 온 데 더해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최근 전기차 의무화 조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전기차 지원 정책이 후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미국의 대표 완성차 업체들도 하이브리드 신차 출시에 착수했다. 포드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출시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하이브리드 버전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고 제너럴 모터스(GM)도 2027년 대표 차종인 ‘볼트’의 하이브리드 버전을 출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