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용만 잘 팔리네” 범용 D램 시장, 부진 우려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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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진 범용 D램 가격, 소비자 수요 둔화 영향
AI용 '고성능 D램' 시장 급성장, 노 젓는 삼전·SK
"수요 양극화, 한국 반도체 시장엔 독" 우려도 제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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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범용 D램의 가격이 소폭 하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버를 중심으로 한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경쟁에 불이 붙은 가운데, 모바일·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며 범용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요 양극화’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범용 D램 가격 하락세

12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DR4 8Gb 1Gx8 D램의 8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2.38% 하락한 2.05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 상승 흐름을 탄 이후 올 5월부터 7월까지 2.1달러선에서 유지되던 범용 D램 가격이 지난달 본격 하락 전환한 것이다.

가격 하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모바일·PC 제품 수요 위축이 지목된다. 한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PC 제조업체들은 올해 하반기 대규모 디바이스 교체 주기가 돌아올 것이라고 판단, 공격적으로 D램 재고 확보에 나선 바 있다”고 짚었다. 이어 “문제는 이들 기업의 판매 실적이 소비자 수요 부진으로 줄줄이 악화했다는 점”이라며 “재고 부담이 커진 이상 범용 D램 주문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KB증권에 따르면 현재 D램 제조사들의 재고 수준은 지난해 다운턴(불황 국면)과 비슷한 12~16주로 늘어난 상태다.

이렇다 보니 시장 곳곳에서는 범용 D램 시장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8GB 저전력(LP)DDR5 가격이 3분기에 3.5% 상승한 뒤 4분기에는 2.9% 하락할 것이라 관측했다. PC용 16GB DDR5모듈(UDIMM) 가격 역시 3분기 5.3% 상승한 이후 내년부터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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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SK하이닉스 ‘고성능’에 집중

반면 빅테크 기업들의 AI 관련 수요를 고스란히 흡수한 HBM, DDR5 고성능 D램 제품들의 판매량은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다. 한 시장 관계자는 “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면서 고성능 메모리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하는 추세”라며 “수주 기반으로 책정된 가격 등도 (고성능 D램 제품들의) 안정적인 성장세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에 국내 D램 시장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서버향 DDR5 D램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술 개발의 중심축 역시 수요가 확대된 고성능·고용량·저전력 메모리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고용량 기업용 SSD 주문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 256TB 서버용 SSD를 선보일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초에 128TB SSD 제품을 출시하고, 이후 256TB 고용량 제품을 본격 개발한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는 저전력더블데이터레이트(LPDDR)에 연산 기능을 더한 ‘LPDDR5X-PIM’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LPDDR5X 대비 성능은 133% 증가하고 전력 소모는 52% 줄인 제품인 LPW(LPDDR Wide-IO)를 개발 중이다. 올해 말에는 기존 RDIMM(D램 모듈) 대비 2배의 대역폭을 제공해 초당 12.8기가비트의 속도를 내는 MCRDIMM 고용량 모듈을 출시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차후 LPDDR6, LPCAMM(LPDDR 모듈), 512GB(기가바이트) 고용량 DIMM(D램 모듈) 등을 선보이며 시장 경쟁력 강화에 착수할 방침이다.

수요 양극화의 이면

범용 D램 시장과 고성능 D램 시장의 ‘양극화’ 기조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이 국내 반도체 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은 HBM 시장 성장세에 따라 상승 추세를 이어갈 수 있지만, 범용 D램에 의존하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실적은 하락하며 전체적인 생태계의 기초 체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HBM은 메모리 칩 메이커가 전·후공정을 전부 담당하고 있는데, 관련 시장이 성장해도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돌아오는 수혜는 미미한 상황”이라며 “HBM과 관련한 제품을 공급하더라도 기존 범용 D램이 차지해 왔던 매출을 대체할 수 없는 만큼,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될수록 국내 반도체 공급망 내 기업들의 체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선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HBM 수요 확대에 따라 범용 D램 생산이 줄어들고 있는 만큼, 시장 수요 회복에 따라 범용 D램의 가격 역시 언제든 반등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PC 시장 등에서는 메모리가 약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모바일 시장에서는 신제품 출시 효과 등에 따라 (범용 D램)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며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이 내년 중 1c(10나노 6세대) D램 등을 양산할 예정인 만큼, 이와 관련한 수혜가 관련 생태계로 넓혀질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