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굴기 야심 드러낸 인도, 글로벌 반도체 기업 ‘생산 기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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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P·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 줄줄이 인도에 시설 투자
반도체 굴기에 박차 가하는 인도, 12월 중 첫 반도체 생산 예정
공급망 재편 가능성 주시하는 주요국, 한국에는 '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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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P, 마이크론,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인도 현지 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인도 반도체 미션(Indian Semiconductor Mission, ISM)’을 비롯한 인도 정부의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이 투자 유치를 이끌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인도의 반도체 생태계가 해외 투자를 중심으로 형태를 갖춰가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차후 인도 정부의 ‘반도체 굴기’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인센티브 앞세워 반도체 투자 유치

13일 힌두스탄타임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커트 시버스(Kurt Sievers) NXP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우타르프라데시주(州) 노이다에서 열린 ‘세미콘 인디아’ 행사에서 10억 달러(1조3,400억원)를 추가 투자해 인도 내 R&D 시설 및 인력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도 반도체 시장은 2026년까지 630억 달러(약 84조5,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반도체 기업의 매력적인 목적지”라며 “NXP뿐만 아니라 엔비디아, AMD, 마이크론 등 주요 기업들도 인도의 기술 생태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 6월 인도 구자라트 지역에 신규 패키징 공장을 짓기 위해 27억 달러(약 3조6,2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AMD는 오는 2028년까지 4억 달러(약 5,300억원)을 투자해 인도 벵갈루루 지역에 반도체 디자인 센터를 설립한다. 대만 TSMC도 인도 타타그룹과 협력해 인도 구자라트주에 대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투자 규모는 110억 달러(약 14조7,5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서는 인도 정부의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평이 나온다. 인도 정부는 지난 2021년 인센티브 프로그램인 ISM을 출범, 외국 반도체 기업이 인도에 공장을 설립할 시 투자 비용의 최대 절반을 지원해 주고 있다. 파격적인 정부 지원을 앞세워 국내외 반도체 기업의 제조 시설 투자를 촉진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 정부가 ISM 출범 이후 반도체 제조 공장 등 설립에 투자한 비용은 자그마치 1조5,000억 루피(약 24조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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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자립’ 노리는 인도

인도 정부는 단순 글로벌 반도체 생산 기지를 넘어 ‘반도체 자립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세미콘 인디아 2024’ 개막식 연설을 통해 “인도의 꿈은 세계의 모든 장치에 인도산 칩을 탑재하는 것이고, 전자 제품 제조가 100% 인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인도는 반도체 칩과 완제품을 모두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디 총리는 또 “인도는 2030년까지 전자 산업 규모를 5,000억 달러(약 670조9,000억원)로 늘리고, 이 부문에서 6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러한 성장이 인도 반도체 부문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도는 8만5,000여 명의 기술자·엔지니어·연구개발 전문가들로 구성된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며 “학생과 전문가들이 반도체 산업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 정부는 가까운 시일 내에 첫 자체 생산 반도체를 공개, 반도체 굴기의 첫 발을 딛을 예정이다. 앞서 지난 5월 아슈위니 바이슈나우(Ashwini Vaishnaw) 인도 철도, 통신, 전자·정보기술 담당 장관은 인도 현지 방송 ‘네트워크18’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2024년 12월까지는 첫 ‘인도산’ 반도체를 시장에 선보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초의 인도산 반도체는 미국 마이크론이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 건설 중인 공장에서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 영향은?

이 같은 인도의 반도체 자립 노력에 주요국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도와의 반도체 협력을 위한 ‘이니셔티브 온 크리티컬 이머징 테크놀로지(iCET)’를 출범하는 등 인도의 반도체 산업 육성을 적극 지원하는 추세다. 반면 미국의 각종 수출 통제와 제재에 가로막힌 중국은 인도의 레거시(범용) 반도체 시장 진입을 경계하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인도의 도전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 시장 관계자는 “인도가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낼 경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한국 기업들이 인도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한국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에 새로운 수출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차후 인도가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하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할 경우, 28nm(나노미터) 이상의 성숙한 공정 분야에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 여지는 남아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경쟁 심화로 인한 수익성 부담이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해당 관계자는 “인도의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면 글로벌 공급망 전반이 재편될 수밖에 없다”며 “(인도 반도체 굴기는) 한국에 있어서는 ‘양날의 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