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펀드 10% 증액에도 VC 업계 ‘앓는 소리’ 여전, “2020년 1조원 대비 예산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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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부 내년도 모태펀드 출자예산 5,000억원, 전 부처 총출자액은 약 1조원
재정 확대안에도 업계선 볼멘소리, "증액 폭이 과거 삭감률에 못 미친다"
모태펀드 점진적 축소 시사한 정부, '민간투자 활성화' 목표 현실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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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가 벤처·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내년도 모태펀드 출자예산을 10% 증액하기로 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위축된 VC 시장을 재활성하겠단 취지지만, 업계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2020년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이 1조원에 달했음을 고려하면 여전히 액수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중기부 2025년 모태펀드 출자예산 10% 증액

19일 VC 업계에 따르면 중기부가 편성한 내년 모태펀드 출자예산은 5,000억원으로 금년보다 460억원 늘었다. 올해 예산이 4,5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05억원(44.8%) 증액됐는데, 내년엔 이보다 더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이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포함한 전 부처 모태펀드 출자예산도 내년 약 1조원 규모로 올해 9,649억원보다 소폭 증액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재정 확대안을 내놓은 건 고금리가 장기화한 탓에 글로벌 VC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라서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KPMG의 글로벌 VC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VC 규모는 3,440억 달러로 201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나마 올해 상반기 국내 벤처펀드의 결성 금액과 투자 실적이 증가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이는 정책금융 비중이 지난해 14.4%에서 올 상반기 18.0%로 커진 덕이다. 국내 VC 시장에 정책금융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단 의미다.

이에 한국벤처캐피탈협회는 정부의 예산 확대책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협회 측 관계자는 “어려운 재정 여건에도 VC 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부 예산 당국의 모태펀드 출자예산 확대 결정은 투자심리 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VC 시장이 위축됐으나 올 상반기 펀드 실적은 정책금융 덕에 회복세”라며 “모태펀드의 선순환 구조가 민간 투자 확대를 이끌어 원천기술 확보 등 국가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자금줄 막힌 VC 업계, “모태펀드 증액 의미 없어”

다만 일각에선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게 나온다. 모태펀드 예산이 확대돼도 돈줄 자체가 막혀버린 현 상황을 타개하는 건 어려울 거라는 시선에서다. VC가 펀드를 결성하려면 모태펀드가 약 50%를 출자하고 나머지 50%를 다른 곳에서 충당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국내 자본시장에서 이 50%의 자금을 마련해 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예산 증액률이 과거 삭감률을 상회하지 못하는 수준에 그친 점도 불만 대상이다. 당초 2020년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은 1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2021년 관련 예산은 2,000억원 감액돼 8,000억원까지 줄었고, 이후로도 2022년 5,200억원, 2023년 3,135억원으로 점차 예산이 삭감됐다. 당장 예산이 10% 증액된다고 해도 투자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론 실제 출자 규모가 예산 증액 이전과 큰 차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중기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 동안 정부가 출자한 회수 재원 규모는 1조627억원에 달했다. 2019년엔 전체 모태펀드 출자액에서 회수 재원의 비중이 63.9%였다. 결국 국회 예산심사 심의 대상에서 빠져 있었을 뿐, 모태펀드 출자액이 감소한 예년에도 정부 차원에서 회수 재원을 활용해 출자액을 일정 수준까지 유지해 왔단 것이다. VC 업계 관계자는 “최근 2~3년 동안 모태펀드 본 예산액의 증감에도 정부는 회수 재원을 활용해 매년 1조원 안팎의 출자액을 유지했다”며 “올해도 정부가 그 기조를 유지한다면 출자액 증액에 따른 변화는 크게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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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모태펀드 축소 기조에 업계 우려 ↑, “자구책 마련도 어려운 상황”

이런 가운데 정부는 향후 모태펀드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확정할 방침이다. 모태펀드 규모가 커지면 오히려 민간자금 유입을 감소시키는 구축(驅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단 이유에서다. 우선 모태펀드 출자를 통해 VC 기반을 어느 정도 닦은 후 민간투자가 활성화할 만한 환경이 조성됐단 판단이 들면 모태펀드 출자액을 점차 줄여 나가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민간 주도 및 민간 연계 사업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정부의 청사진에 의문을 표하는 분위기다. 모태펀드 규모가 축소된 이래 VC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는 양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VC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지난 1월까지 VC 등록이 말소된 투자사는 5곳에 달했다. 지난해 허드슨헨지인베스트먼트, 심포니인베스트먼트, 실버레이크인베스트먼트, 서울경영파트너스에 이어 올해 이랜드그룹의 기업주도형 밴처캐피탈(CVC) 이랜드벤처스까지 VC 사업을 포기했다. 이외 자본잠식 상태로 파악된 VC도 6곳, 경영 개선을 요구했지만 이행하지 않은 곳은 7곳으로 나타났다.

모태펀드 자금을 확보한 VC 중 민간 자금 매칭에 어려움을 겪은 곳도 있었다. 1세대 VC로 꼽히는 대성창업투자는 지난해 한국벤처투자 모태펀드에서 출자받아 만들기로 한 600억원 규모의 콘텐츠펀드 결성을 철회했다. 올해 초엔 한국성장금융과 함께 추진한 1,0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 혁신펀드 결성도 포기했다. 모태펀드의 출자를 받으면 6개월 안에 추가로 투자금을 모아 펀드 결성을 완료해야 하는데, 민간 매칭 출자자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서 펀드 결성을 취소한 것이다. 결국 민간투자시장이 ‘관망세’를 견지하고 있단 뜻이다. 모태펀드 자금을 줄여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겠단 정부의 계획을 업계가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해외자본을 유입하는 등 VC 차원의 자구책 마련이 필요하단 의견도 일각에서 나오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국내외의 투자 문화 자체가 상이한 탓이다. 한국은 스타트업이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 포지티브 방식을 따른다. 모든 투자사의 동의를 받아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해외에선 주력 투자자가 주도권을 모두 쥐는 경향이 짙다. 이 때문에 글로벌 투자사들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선결 조건으로 ‘기존 국내 투자사에 대한 권리 조정’을 요구하게 되는데, 해외 투자계약 구조에 익숙지 않은 국내 투자사들은 이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존 투자사와의 계약 문제가 해외 투자 유치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단 것이다.

이렇다 보니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해외 투자액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벤처투자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해외 투자자가 포함된 한국 스타트업·중소기업의 투자 유치액은 4,399억원에 그쳤다. 2022년 같은 기간 1조7,680억원, 지난해 5,739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가 민간투자 활성화에만 집중하기보단 규제 완화 및 국내 벤처투자 문화 개선책 마련 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를 중심으로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