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I 가속기 블랙웰’ 양산 개시, 시총 3조 달러 눈앞에
차세대 반도체 '블랙웰' 4분기 출하, "수요도 매우 강력"
한때 결함설 있었지만 HBM3E 12단 채택하며 설계 변경
엔비디아 주가 120달러 회복, 제조사 TSMC 주가도 급등
인공지능(AI) 반도체 선두 주자 엔비디아가 차세대 반도체인 블랙웰의 대량 생산을 시작했으며 수요가 매우 강력하다는 미국 증권가의 전망이 나왔다. 한때 양산 계획에 차질이 발생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고대역폭 메모리 HBM3E 12단을 채택하는 등 설계를 변경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여기에 주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주식 매각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잠시 주춤했던 엔비디아의 주가도 4% 가까이 급등하며 한 달 만에 120달러를 회복했다.
모건스탠리 “4분기 45만 개 출하, 매출 100억 달러 전망”
24일(현지 시각) 모건스탠리는 “엔비디아의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대량 생산에 돌입했다”며 “블랙웰의 4분기 출하량이 45만 개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가 새로운 칩에서만 100억 달러(약 13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지난 11일 황 CEO는 골드만삭스의 기술 콘퍼런스에서 “블랙웰이 4분기 출하를 시작해 내년까지 물량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엔비디아의 제조 협력사인 폭스콘도 올해 4분기 말부터 블랙웰 GB200의 출하를 시작할 계획이다.
블랙웰은 엔비디아가 올해 3월 처음으로 공개한 AI 칩으로 2022년 출시한 호퍼 시리즈의 뒤를 잇는 제품이다. 전력 소모량에 따라 B100, B200으로 나뉘며 2개의 블랙웰 GPU와 중앙처리장치(CPU) 그레이스를 결합하면 AI 가속기 GB200이 된다. AI 가속기는 AI 학습·추론을 빠르게 구현하도록 설계된 전용 하드웨어를 말한다. 엔비디아는 “GB200이 호퍼 시리즈의 H100에 비해 최대 30배의 대규모언어모델(LLM) 추론 성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들이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은 최근 13만1,000개의 블랙웰 GPU로 구동되는 제타 스케일 OCI AI 슈퍼 클러스터를 발표하고 엔비디아에 GPU 공급 확대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모건스탠리는 “엔비디아뿐 아니라 아시아 공급망에도 긍정적인 소식”이라며 2025년 TSMC의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의 월간 생산량 전망치를 7만 개에서 8~9만 개로 상향 조정했다. 또 국가 주도의 AI 프로젝트와 소규모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업체가 용량을 확장함에 따라 H200 등 호퍼 GPU 수요도 당분간은 견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주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던 황 CEO의 주식 매도 계획도 종료됐다. 투자 전문 매체 배런스 등에 따르면 황 CEO는 올해 3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기업 내부자 사전 거래 계획’에 따라 예정했던 600만 주에 대한 매각을 마무리했다. 평균 매도가는 118.35달러이며 총가치는 7억1,300만 달러(약 9,455억원)에 달한다. 해당 계획의 유효 기간은 내년 1분기까지였으나 정해진 매도 물량이 6~9월 중 모두 소진됐다. 매각 후에도 황 CEO는 여전히 엔비디아의 최대 개인 주주로 남는다. 현재 그는 개인 계좌에 엔비디아 주식 7,540만 주를 보유 중이며 신탁과 파트너십을 통해 7억8,600만 주를 별도로 보유하고 있다.
이에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한 달 만에 다시 120달러를 돌파하면서 전일 대비 3.97% 오른 120.8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이 2조9,640억 달러로 늘어나면서 3조 달러(약 3,980조원) 재진입을 눈앞에 두게 됐다. 엔비디아 주가 상승은 제조 협력사인 TSMC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날 4.13% 상승했다. 시가총액도 9,437억 달러까지 오르면서 1조 달러(약 1,330조원)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한때 양산 지연될 것이란 전망에 엔비디아 주가 하락
한 달 전만 해도 블랙웰 GB200의 생산 지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지난달 초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블랙웰 생산 과정에서 발견된 결함 때문에 출시가 당초 예정보다 최소 3개월 늦춰져 내년 1분기까지는 대규모로 출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도 제조 공정 일부를 개편해야 한다고 밝히며 출시 지연을 인정했다. 이 시기 열린 콘퍼런스에서 애널리스트들이 블랙웰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지만, 황 CEO가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자 시간외 거래에서 주가가 7% 넘게 하락하기도 했다.
당시 업계에서 분석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GB200에 필요한 TSMC의 최첨단 패키징 CoWoS-L의 용량 부족이고, 또 하나는 B100 칩 설계의 문제다. CoWoS는 엔비디아가 자체 개발한 2.5D 패키징 기술로, 로직 반도체와 HBM을 SiP(시스템 인 패키지) 형태로 묶는 것을 뜻한다. 2.5D 패키징은 넓은 기판 모양의 실리콘 인터포저 위에 반도체 다이(Die)를 수평 배치하는 기술이다. 활용되는 소재에 따라 종류가 나뉘며, CoWoS-L의 경우 로컬실리콘인터커넥트(LSI)라는 소형 인터포저를 채용한다.
이에 엔비디아는 즉각 대응책을 마련했다. 기존 B100의 대체품으로 B102를 재설계하고, 이를 기반으로 공랭(Air Cooling) 방식을 적용한 ‘GB200A’를 제작하기로 했다. 아울러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한 패키징 구조 역시 변경했다. GB200은 GPU 2개를 묶어 하나의 칩처럼 동작하게 하고, 주변에 HBM3E 8단(24GB)을 8개 집적하는 형태다. 반면 새롭게 수정한 GB200A는 GPU를 묶지 않고 B102 칩 하나에 HBM3E 12단(36GB) 4개를 집적하는 방식이다. 내장된 GPU 2개가 총 HBM 8개를 운용하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단일 HBM의 용량을 높이고자 12단을 채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나아가 AI 가속기 성능 고도화 과정에서 HBM, GPU 등 칩 수가 급증해 발생하는 발열 이슈에 대해서도 개선 방안을 내놨다. 황 CEO는 지난달 25일 열린 반도체 콘퍼런스 ‘핫칩2024’에서 B200에 액체 냉각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블랙웰 B200의 최대 소비전력은 1,000W(와트)로, 전작 H200(700W)보다 42% 높아졌다. 전력 사용량이 늘면서 열 방출량은 기존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이에 기존 공랭식에 액체 냉각을 더한 새로운 냉각 방식을 적용해 전력 소비를 최대 28%까지 줄일 것으로 추산했다.
HBM3E 12단 채택에 삼성·SK·마이크론 메모리 업체 경쟁
엔비디아의 대응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제조업체들의 대응 또한 분주해졌다. 당초보다 빨리 HBM3E 12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HBM3E는 5세대 HBM으로, 올해 상반기 8단 제품부터 상용화에 들어갔다. 더 많은 D램을 적층하는 12단 제품은 주요 메모리 3사 모두 고객사와 퀄테스트를 거치고 있으며, 아직 공식 승인을 받은 기업은 없다.
산업계는 HBM3E 12단 제품의 탑재량이 늘면서 HBM 경쟁 구도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는 HBM3(4세대), HBM3E 8단과 달리 HBM3E 12단과 관련해서는 삼성전자가 지난 2월 업계 최초로 제품을 개발해 엔비디아의 퀄테스트를 받고 있어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가장 먼저 퀄테스트를 통과한 기업이 가장 많은 납품 물량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