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똑같은 의료 서비스 받아도 사라지지 않는 계층 간 ‘건강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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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서비스 격차 없어도 소득 계층 간 ‘건강 차이’ 여전
40대부터 만성 질환 유병률 차이 뚜렷하게 나타나
경제적·지역적 요인이 ‘흡연, 음주’보다 불평등에 큰 영향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소득 격차에 따른 의료 서비스 차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네덜란드에서도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 기대 수명(life expectancy)에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부 간 기대 수명 격차는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컸는데, 사망률 차이가 명확해지는 노년에 이르기 훨씬 전부터 만성 질환(chronic illness) 유병률 차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흡연, 음주 등 개인 건강 습관보다 사회경제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 지역적 격차(geographic disparities) 등이 만성 질환과 계층 간 ‘건강 불평등’(health inequality)에 월등히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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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EPR

소득 계층 간 ‘건강 불평등’, 의료 혜택 동일해도 여전

저소득층의 0.4%만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고 보고될 정도로 의료 혜택이 공평하게 제공되는 네덜란드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상관없이 국민이 고른 건강 상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저소득층 여성들의 기대 수명은 고소득층 여성에 비해 7.6년 낮았고, 저소득층 남성과 고소득층 남성 간 기대수명 차이는 여성보다 더 큰 11.6년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빈부 건강 격차는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 전체와 미국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그동안 빈부 간 건강과 기대 수명 차이로 정의되는 ‘건강 불평등’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복합적인 데다 이들을 측정할 방법도 제한적이어서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앵거스 디튼(Angus Deaton)은 “건강 불평등의 근본 원인에 대한 의견 일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합의된 의견들조차 구체적 증거보다는 반복되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만성 질환’이 ‘빈부 간 사망률 차이’ 최대 원인으로 밝혀져

카베 다네쉬(Kaveh Danesh) UC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내과 레지던트, 조너선 콜스타드(Jonathan Kolstad) UC 버클리(Berkeley) 하스(Haas) 경영대학원 부교수, 윌리엄 파커(William Parker) 런던 경제정치대학원(LSE) 박사과정생, 요하네스 스핀뉴진(Johannes Spinnewijn) 동 대학원 교수로 구성된 연구진은 한 개인의 인생 주기에서 건강 불평등이 발현되는 패턴을 만성 질환에 중점을 둔 연구를 통해 분석했다.

연구 결과 심혈관 질환, 당뇨병, 호흡기 질환 등으로 대표되는 만성 질환이 빈부 간 사망률 차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이미 젊은 나이부터 미래에 나타날 건강 불평등을 정확하게 예견하는 지표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2006년 이후 네덜란드 전역에서 발행된 방대한 처방전 자료에 담긴 만성 질환 관련 기록을 추적해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가장 특기할 만한 발견은 노년층 빈부 간 사망률 차이 원인의 30~40% 정도가 만성 질환 유병률 차이에 있다는 사실이다. 빈부 간 의료 서비스 차이가 사실상 없는 네덜란드의 경우 저소득층이 부유층보다 질 낮은 치료나 오진을 받는 경우가 드문데도 저소득층 인구가 더 이른 나이에 더 높은 빈도로 만성 질환에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혜택이 공평하더라도 빈부 간 만성 질환 유병률 차이가 나타나고 이것이 건강 불평등으로 연결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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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70세 인구의 소득 계층에 따른 만성 질환 유병률
주: 좌측 그래프(여성), 우측 그래프(남성), 70세 만성 질환 유병률(X축), 만성 질환 종류(Y축), 소득 하위 10% 계층(D1), 소득 20~50%(중하위) 계층(D2-D5), 소득 60~100%(상위) 계층(D6-D10) / 결핵, 에이즈, 치매, 빈혈, 장 질환, 통풍, 파킨슨병, 암, 정신병, 편두통, 류머티즘, 뇌전증, 녹내장, 골 질환, 당뇨병, 갑상선 질환, 만성 통증, 정신 질환, 호흡기 질환, 산 관련 질환, 고지혈증, 심혈관 질환(Y축 위부터)/출처=CEPR

저소득층이 만성 질환 더 일찍, 더 많이 걸리는 ‘노화 속도 차이’가 주원인

여기서 연구진은 은퇴 연령 이후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망률 차이는 사실상 결과에 불과하고 건강 불평등의 근본 원인은 삶의 훨씬 이른 시기에 뚜렷하게 자리 잡는다고 설명한다. 40세 정도가 되면 70세에 갖게 되는 기대수명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원인이 이미 생겨 있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패턴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저소득층이 더 일찍, 더 많이 만성 질환에 걸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성 질환에 걸린 국민들이 시간이 지나며 저소득층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여기서 저소득층의 건강 상태가 더 빠른 속도로 악화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노화 속도 차이’(differential ageing)가 빈부 간 건강 격차를 만들어 내는 주원인으로, 만성 질환자의 저소득층 ‘질병 편입 효과’(health-based sorting)보다 건강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40%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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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 인구와 저소득 인구 간 연령에 따른 ‘만성 질환 지수’(Chronic Disease Index, CDI) 차이(네덜란드)
주: 연령(X축), 만성 질환 지수(Y축), ‘질병 편입 효과’ 포함(CDI), ‘질병 편입 효과’ 제외(Simulated CDI), 고소득층(High), 저소득층(Low), *만성 질환 지수: 특정 연령대의 만성 질환으로 예측하는 노년 사망 위험도/출처=CEPR

‘사회경제적·지역적 차이’가 ‘건강 습관’보다 건강 불평등에 훨씬 큰 영향

연구에서 도출된 또 하나의 주목할 결론은 흡연, 음주, 운동 같은 건강 습관이나 직업 등의 요소가 빈부 건강 격차의 주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구진이 설문조사와 행정 문서 등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지위’와 ‘지역 간 불균형’이 각각 만성 질환 원인의 1/3을 차지하는 데 반해 건강 습관은 큰 영향 요소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이 결과에 따라 공중 보건 정책의 초점이 지금까지처럼 개인의 건강 습관보다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변수에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역적 변인을 무시하고 건강 습관에만 집중해 온 그간의 연구들이 오류를 야기했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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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대에 따른 만성 질환 영향 요소(네덜란드)
주: 연령대(X축), 요소별 영향력(Y축) / 건강 습관 및 체질량지수(짙은 갈색), 부모 건강(갈색), 거주지(옅은 갈색), 고용(청색), 소속 산업(옅은 청색), 직장 내 급여 순위(하늘색), 소득 및 재산(짙은 녹색), 교육(녹색), 인구통계학적 특성(옅은 녹색)/출처=CEPR

결론을 통해 연구진은 보건 정책의 방향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발생한 질병 치료도 필요하지만 건강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예방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연구가 증명한다는 것이다. 또한 만성 질환이 저소득 인구의 생애 주기에서 상당히 젊은 시기부터 발현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사회경제적 상황을 개선하고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는 등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건강 불평등 해소에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정책 당국자들에게 조언한다.

원문의 저자는 카베 다네쉬(Kaveh Danesh) UC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내과 레지던트 외 3명입니다. 영어 원문은 Closing the health gap: How chronic illness drives health inequality early on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