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사태에 사법 리스크 빠진 구영배, 큐익스프레스도 결국 큐텐과 ‘거리 두기’
구영배 큐텐 대표 검찰 소환 조사 진행, 사기·횡령·배임 등 혐의
'큐텐 지우기' 나선 큐익스프레스, 300억원 투자 유치 추진 등 독자 경영 박차
티몬 차입금 전용 등 추가 혐의 포착, 계열사와의 '경영컨설팅 계약서' 확보도
구영배 큐텐 대표에 대한 검찰 조사가 본격화한 가운데,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의 주역 중 하나로 꼽히던 큐익스프레스가 구 대표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직접 나서 구 대표와 큐텐의 지분을 소각, 경영권을 빼앗아 간 것이다. 모체인 큐텐 역시 사실상 공중분해 됐다. 결국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 등 무리한 경영 전략을 밀어붙인 게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영배 대표 검찰 조사 본격화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전담 수사팀(팀장 이준동 반부패1부장)은 지난달 30일 구 대표를 사기·횡령·배임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를 진행했다. 현재 검찰이 파악한 사기 혐의액은 총 1조4,000억원가량이며, 횡령액은 500억원 수준이다.
검찰은 구 대표가 지난 4월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위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티메프로부터 인수 대금 500억원을 대여하는 등 판매자들에게 지급돼야 할 정산대금을 직접 전용했다고 보고 있다. 구 대표가 불법 행위를 지시하는 등 사실상 ‘주동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앞선 소환조사 과정에서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등 핵심 관계자들이 “구 대표가 미정산 사태의 정점”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내놓은 영향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핵심 관계자는 “구 대표에게 불안정한 자금 흐름에 따른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며 “그러나 구 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구 대표는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을 위해 계열사에 5%가량의 과도한 역마진 프로모션을 지시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큐익스프레스는 티메프에서 판매된 상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맡은 회사로, 역마진 상품의 판매가 늘면 티메프의 손실이 누적되는 대신 큐익스프레스의 매출은 늘어나는 유통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류광진 대표는 “(구 대표가) 큐익스프레스의 물동량을 늘리는 것은 큐텐그룹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고, 큐익스프레스가 나스닥에 상장돼야 큐텐그룹이 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씀을 계속하셨다”고 밝혔다. 결국 티메프가 큐익스프레스의 성장을 위한 제물로 활용됐단 의미다.
큐익스프레스 경영권 박탈, 큐텐도 공중분해 수순
하지만 구 대표가 거듭 자금을 투입한 큐익스프레스는 구 대표와 ‘거리 두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큐익스프레스 차원에서 구 대표와 큐텐 연관 지분 전량을 무효화한 것이 단적인 예다. 티메프 사태 이전 큐익스프레스의 주요 주주는 큐텐(65.8%)과 구 대표(29.3%)로, 이들의 총합 지분은 95.2%에 달했다. 그러나 티메프 미정산 사태가 발생하자 큐익스프레스에 약 1,600억원가량을 투자했던 FI들이 기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고 큐텐으로부터 인터파크커머스 매각 미수금을 못 받게 된 야놀자가 큐익스프레스 지분에 대한 담보권을 행사하면서 내부적으로 ‘탈(脫) 큐텐’ 기조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티몬을 큐텐에 넘긴 대가로 큐텐 지분을 보유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 기타 홍콩계 사모펀드(PEF)가 큐익스프레스 지분에 대한 담보권을 추가로 행사하고 나서면서 큐익스프레스의 지분 구조 재정립이 현실화했다.
이에 따라 큐익스프레스의 1대 주주는 지분 35%를 보유한 PEF 크레센도로, 2대 주주는 31%를 보유한 야놀자로 변경됐다. 아울러 KKR·앵커PE·홍콩계 PEF가 19%를, 코스톤아시아·메티스톤PE·캑터스PE·산업은행PE 등이 합산 13%를 보유하게 됐다. 나머지 2%는 큐익스프레스 임직원의 몫이다. 사실상 FI들이 나서서 구 대표로부터 경영권을 빼앗아 간 셈이다.
구 대표로부터 벗어난 큐익스프레스는 ‘독자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큐익스프레스는 최근 신규 투자자로부터 최대 300억원의 추가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다. 티메프 미정산 사태로 발생한 미수금을 자체 자금 조달을 통해 해결하겠단 취지다. 한 업계 관계자는 “큐익스프레스는 300억원 투자를 받은 뒤 티메프 사태의 영향을 없애고 동시에 조직·인력 효율화를 이뤄 실적을 내년 상반기부터 월 단위 기준 흑자로 전환시킬 계획”이라며 “구 대표 흔적 지우기가 본격화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구 대표와의 결별’로 탈출로를 마련한 큐익스프레스와 달리 여전히 구 대표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큐텐은 공중분해 수순을 밟고 있다. 큐텐은 지난달 직원 80% 이상을 정리해고했고, 이번 티메프 사태로 판매 영업도 전면 중단했다. 더군다나 티메프가 국내에서 회생 절차에 들어간 만큼 큐텐 역시 본사 소재지인 싱가포르에서 비슷한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 등 ‘영끌 전략’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구 대표의 입지가 상당 부분 약화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배임 정황 포착, 구 대표 ‘사법 리스크’ 심화 양상
이런 가운데 구 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향후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앞선 조사에서 검찰이 구 대표의 배임 의혹을 키우는 정황을 추가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서다. 서울중앙지검 전담 수사팀에 따르면 위메프가 지난 5월 티몬에 빌려준 차입금 52억원은 티몬이 아닌 큐텐 측에 흘러 들어갔다. 큐텐이 티몬으로부터 판매 정산대금을 가져갈 때 차입금까지 추가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류광진 대표는 이 같은 차입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수사가 개시된 후 처음 알았다고 진술했다. 다른 회사의 돈을 가져가면서도 큐텐이 따로 품의서를 작성하거나 결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큐텐이 계열사의 돈을 빼돌려 큐텐 그룹을 위해 사용했다면 구 대표의 배임·횡령 혐의의 근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사팀은 또 큐텐 계열사들이 지난해 6월 매년 수억원을 큐텐 본사에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체결한 ‘경영컨설팅 계약서’도 확보했다. 해당 계약서엔 구 대표의 경영 자문 대가와 재무·서비스센터 인건비 등이 지급 명목으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큐텐테크놀로지 차원에서 티메프 등 계열사의 업무를 대행하며 매달 계열사 매출의 1%를 대가로 받아왔는데, 이와 별도 계약서를 통해 재무·경영 자문 명목의 돈이 큐텐 본사로 지속적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검찰은 해당 자금 지급 계약이 계열사 대표가 모르는 사이 이뤄졌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