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낸드 가격 두 자릿수 하락, PC 등 IT 기기 수요 부진 탓
D램 가격 17.1% 급락, 1년 5개월 만에 '최대 하락 폭'
낸드플래시도 11.4% 하락, 1년 반 만에 하락세 전환
4분기 PC 출하량 3.8% 감소, 재고 감축 기조 이어져
지난달 D램 가격이 1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하는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됐던 스마트폰·PC 등의 수요 부진과 중국의 경기 침체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핵심 수요 품목인 IT 기기의 수요 반등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올해 상반기 상승세로 전환했던 메모리 가격은 당분간 보합세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D램·낸드 가격, 보합세 유지해 오다 지난달 급락
1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9월 PC용 D램 범용 제품 DDR4 1Gx8의 평균 고정거래 가격(기업 간 거래 가격)은 1.7달러로 전월(2.05달러) 대비 17.1% 급락했다. 전월 대비 증가율 기준으로는 -19.9%를 기록한 지난해 4월 이후 1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2021년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던 D램 가격은 지난해 10월 약 2년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가 올해 8월 들어 하락세로 돌아섰다.
또 다른 메모리 반도체인 낸드플래시의 고정거래 가격 또한 10% 넘게 하락했다. 메모리카드·USB용 낸드플래시 범용제품 128Gb 16Gx8 MLC의 9월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4.34달러로 지난달 대비 11.4% 떨어졌다. 낸드플래시 가격이 하락세를 보인 건 지난해 3월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낸드플래시도 D램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10월 반등한 뒤 줄곧 상승세를 이어오다가 올해 3월부터 상승세가 둔화하며 보합세를 유지해 왔다.
메모리 가격의 급락에는 부진한 IT 수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PC 제조사는 아직 IT 기기에 대한 수요 반등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반영해 여전히 높은 수준의 재고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4분기 PC 출하량은 직전 분기 대비 3.8%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당초 예상치인 0.8% 감소에 비해 하향 조정된 수치”라고 설명했다. PC 제조사가 재고 감축을 지속하면서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조달 규모가 더욱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러한 예상을 반영해 트렌드포스는 4분기 PC용 D램 모듈의 가격 전망을 당초 ‘직전 분기 대비 3~8% 상승’에서 ‘보합세(Flat)’로 하향했다. PC 제조사의 재고 감축 기조에 국내 D램 제조업체들의 점유율 확대 전략 등이 더해지면서 DDR4와 DDR5 모두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낸드플래시의 경우 TLC(트리플 레벨 셀) 계약, 현물 가격 하락 등의 영향으로 10월에도 SLC(싱글)·MLC(멀티) 제품 가격의 연쇄적인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초엔 ‘연말까지 상승세 유지’ 전망 나오기도
올해 초만 해도 반도체 업계에서는 하반기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 1월 트렌드포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이미 2023년 말부터 뚜렷한 인상 조짐을 보였다”며 “올해 연말까지 가격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구체적으로 낸드플래시는 1분기 가격이 20% 급등한 이후 2분기부터 연말까지 3~8%대 인상률을 유지하고, D램은 가격 변동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2024년 내내 가격 인상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반도체 반등론이 무색하게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상반기 내내 보합세를 보였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가격이 박스권에서 정체된 이유로 중국의 경기 침체를 꼽았다. 글로벌 전자제품의 60~70%를 제조하는 중국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 품목인 PC, TV, 스마트폰 등 주요 전자기기의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서 반도체 제조사의 메모리 재고는 크게 줄지 않아 가격 상승이 늦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중국의 제조업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달까지 2개월째 ‘경기 위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불황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현재 한국의 전체 반도체 수출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이른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전 세계 PC 수요가 저가형 PC로 돌아서면서 메모리 반도체의 수익성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에도 스마트폰 등 시장의 수요 개선 폭이 10%포인트 미만에 그치면서 메모리 가격 상승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당장 3분기부터 가격이 오름세로 전환하려면 늦어도 2분기부터는 일부 가격 상승 조짐이 있었어야 했다는 진단이다.
업황 악화 전망에도 여전한 수요 증명한 반도체
이런 상황을 두고 시장에서는 반도체 업황 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고점을 준비하다(Preparing for a Peak)’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 ‘반도체 겨울론’에 불을 붙였다. 모건스탠리는 “AI를 둘러싼 흥분 속에서 반도체와 테크 하드웨어의 경기 순환적 특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메모리 반도체가 수요 감소로 가격이 하락하고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가 공급 과잉 상태에 도달하면서 반도체 사이클이 고점에 다가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일시적인 가격 하락을 다운사이클 진입 신호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실제로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실적 풍향계’로 통하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호실적을 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마이크론은 2024 회계연도 4분기 매출(6~8월)이 시장 전망치인 76억6,000만 달러를 넘어선 77억5,000만 달러(약 10조4,000억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특히 2025 회계연도 1분기(9∼11월) 매출과 주당 순이익 추정치는 87억 달러(약 11조7,000억원)와 1.74달러로, 시장 평균 예상치인 매출 83억2,000만 달러와 주당 순이익 1.52달러를 크게 넘어섰다.
아울러 글로벌 첨단 산업 선행 지표로 여겨지는 한국의 수출입 통계에서 견조한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확인됐다는 점도 반도체 낙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9월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역대 최대인 136억 달러(약 18조3,0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 6월 기록한 종전 최고 실적 134억 달러을 3개월 만에 경신한 것으로 11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증가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종목의 주가를 대표하는 지수인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도 지난 한 달간 상승 곡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