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명품 판매 플랫폼, 팬데믹 끝나자 줄줄이 자본 잠식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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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 직전 투자 가치 대비 1/3 토막 난 1,000억원에 투자 유치 나서
경쟁사인 머스트잇, 트렌비도 비슷한 처지
쿠팡이 인수한 파페치도 수익성 개선 어려운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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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발란

국내 명품 플랫폼 발란이 생존을 위해 기업가치를 대폭 낮춘 채 투자 유치에 나섰다. 이번에 발란이 제시한 기업가치는 1,000억원으로, 이는 직전 시리즈 C 투자 당시의 3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현재 발란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놓여 있으며, 1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한때 국내 1위 명품 플랫폼, 팬데믹 끝나면서 오프라인 매장에 시장 돌려줘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발란은 100억원 규모의 투자금 유치를 위해 투자자들과 접촉하고 있다.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자 상환전환우선주(RCPS) 투자 외에도 출자자들의 원금 보장을 위해 전환사채(CB) 발행을 염두에 둘 정도로 자금이 급한 상황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OTT 전문 스타트업 왓챠가 전환사채로 4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가 200억원 헐값 매각을 진행하던 중 투자자 측에서 200억원 매각을 거절해 무산된 후, 스타트업계에서는 CB로 투자받는 것을 극도로 꺼려 왔다.

CB는 회사 사정에 따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있고, 기업이 파산 절차를 밟을 경우 은행 등의 다른 채권자와 동일하게 회사의 잔존 가치에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때문에 CB로 투자를 받을 경우 다음 라운드에서 기업 가치를 낮춰 투자를 받기 어려워지거나, 매각 절차 중 투자자의 원금 회수마저 불가능한 상황에서 왓챠 사례처럼 매각이 불발되는 경우 등도 있어 최근 스타트업계에서는 CB 투자를 받는 것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RCPS도 상환 의무가 부여되지만, 상환 재원으로 이용할 배당가능 이익이 있어야 발행이 가능하다. 회사가 망하면 못 받는 건 같지만, 그래도 CB가 우선순위를 갖는다.

다만 업계에서는 발란이 투자처를 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코로나19로 인한 특수가 끝난 상황에서 오프라인 매장 대비 접근성 이외에 장점이 떨어지는 데다,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상 소비자들의 충성도도 낮은 편이어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진을 깎는 것 이외에 달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맹점이 국내외 주요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기도 하다. 경쟁사인 머스트잇과 트렌비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모델의 수익화 실패는 이미 검증이 끝난 상황”이라며 이커머스가 추가적인 비용 혁신 없이 투자자들의 투심을 유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모 명품 플랫폼에서 지난 1월에 퇴사한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시절에 온라인에서 명품을 구매하던 소비자들이 다시 백화점으로 돌아간 데다, 최근 들어 경기 침체로 명품 판매 자체가 침체에 빠진 것도 어려워진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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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파페치

글로벌 시장 명품 수요 동반 추락 중, 쿠팡 인수한 파페치도 수익화에 어려움

지난해 말 글로벌 최대 온라인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한 쿠팡도 실적에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지난 8월에 공개된 쿠팡의 2분기 실적에 따르면 2022년 3분기부터 7분기 연속 흑자를 마감하고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에서 1,628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과 더불어, 파페치의 1,480억원 순손실이 흑자 폭을 모조리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특히 파페치와 과징금을 제외한 쿠팡의 실적이 지난 7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한 쿠팡 관계자는 지난해 말 김범석 쿠팡 의장의 파페치 인수를 사실상 실패한 경영 선택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당시 파페치는 5억 달러(약 6,900억원)에 달하는 채무 압박으로 사실상 부도 상태였다. 이렇다 보니 쿠팡의 파페치 인수가 수익성이 목적보다는 글로벌 사업체를 가진 아시아권 이커머스 기업, 명품 판매 기업 등의 이미지 홍보가 더 주요한 의사 결정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당시 김 의장은 “파페치를 인수할 의도는 없었지만 5억 달러를 투자해 거래액 40억 달러(약 5조5,200억원)에 달하는 업계 최고 서비스를 인수할 드문 기회였다”고 언급했다.

지난 8월 김 의장은 콘퍼런스 콜에서 “파페치는 연말까지 상각전영업이익(EBITDA) 흑자 근접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시점에서는 올해 목표 달성이 순조로울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아직 여정의 초기 단계지만 파페치의 발전과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벌 주요 명품 브랜드인 구찌(GUCCI), 버버리(BURBURRY) 등이 판매 부진 등의 이유로 대규모 해고 절차를 밟고 있는 것에 미뤄봤을 때 파페치의 수익성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실상 명품 플랫폼 종말 시대 왔다?

이와 관련해 이커머스 업계 전문가는 백화점에서도 팔리지 않는 명품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온라인에서 쉽게 팔리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최근 들어 글로벌 불경기가 심화되면서 명품 판매가 크게 줄어든 데다, 주요 고객이었던 중국 큰 손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명품 시장 자체가 크게 축소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국내 명품 플랫폼 업체 3곳인 발란, 머스트잇, 트렌비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결손금이 각각 785억원, 236억원, 654억원에 달한다. 특히 트렌비는 매출이 2022년 대비 절반이나 감소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전문업체 시밀러웹(SimilarWeb)에 따르면 파페치의 2022년 월 평균 방문자 수는 4,000만 명이었으나, 올해 하반기 들어 2,500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방문자 감소 수준을 감안하면 파페치의 하반기 매출은 상반기보다 훨씬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이커머스 사업 모델의 한계가 온 만큼 로켓배송, 새벽배송, 검색 플랫폼 등을 연계한 쿠팡, 컬리, 네이버 스토어와 같은 ‘하이브리드형 커머스’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고 입을 모은다. 이어 유통 마진을 누리던 백화점들이 지방에서부터 차례로 문을 닫고 있는 것도 유통 시장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설명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