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 중시 내실 뒷전’ 글로벌세아그룹, ‘세아STX엔테크’ 경영권 매각
글로벌세아그룹 ‘성공 신화’, 계열사 적자에 흔들
세아STX엔테크, 스토킹호스 방식 경영권 매각 시동
계열사 차입 늘린 글로벌세아, 재무건전성 부담 가중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려 나갔던 글로벌세아그룹의 계열사 세아STX엔테크(Sae-A STX Entech)가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세아STX엔테크는 연이은 실적 부진에 유동성 위기까지 맞물리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는데,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아 파산 대신 경영권 매각이 결정된 것이다. 글로벌세아가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회사들을 인수해 몸집을 불리는 데만 집중하고 정작 계열사들은 ‘돌려막기’ 식으로 경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아STX엔테크, M&A 매물로
1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세아STX엔테크는 회생계획 인가 전 M&A 추진을 위해 매각 주관사 선정 작업에 착수했다. 회생절차 개시를 전제로 M&A를 추진해 회생절차의 조기 종결을 도모한다는 복안이다. 회계전문기업 안진회계법인의 조사 결과, 보유한 자산을 처분했을 때 가치인 청산가치가 기업의 존속가치보다 높다고 판단 돼 파산 절차가 아닌 경영권 매각이 결정됐다.
매각 방식은 수의계약 형태로 우선협상대상자를 고른 뒤 공개경쟁입찰을 진행해 최종 인수자를 선정하는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이 유력하다. 아울러 세아STX엔테크는 100% 신주 발행 후 구주를 무상 소각하는 방식의 매각 구조를 만들 예정이다. 구주 매출로 진행되면 매각 대금이 기존 주주인 글로벌세아 측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즉 채권 변제 등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결국 글로벌세아그룹은 주주로서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경영권을 넘기게 될 공산이 크다. 시장은 새 주인이 매각 대금으로 기존 채권자들의 빚을 변제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한 뒤 기업 정상화에 사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존 채권자 대부분이 글로벌세아그룹 계열사다. 세아STX엔테크의 전체 차입금은 1,318억원으로, 전체 차입금의 80% 이상을 글로벌세아·세아상역·태림페이퍼 등 관계사에서 빌렸다.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도 455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결과적으로 글로벌세아그룹은 주주로서는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지만 채권자로서는 일부 변제받을 전망이다. 다만 그룹은 경영 부실의 책임이 있는 만큼 일부 채무는 감액될 예정이다.
그룹 전체 위기 전이 우려에 결단
세아STX엔테크는 STX중공업의 플랜트 사업 부문 후신으로 2018년 7월 글로벌세아그룹에 편입된 기업이다. 환경·발전 분야 화공설비 플랜트 설계·조달·시공(EPC)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당시 글로벌세아는 건설 사업에 진출할 목적으로 180억원을 투입해 기업회생 절차를 진행 중이던 STX중공업의 플랜트 사업 부문 지분 100%를 인수했다.
세아STX엔테크의 유동성 위기 우려가 표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22년이다. 인수 첫해인 2018년 세아STX엔테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80억원, 21억원이었고,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20년에는 매출 1,130억원, 영업이익 97억원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2021년 매출 2,244억원, 영업손실 79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한 후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2020년 코로나19로 원자재 공급망에 차질이 생긴 데 이어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며 건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세아STX엔테크의 직·간접비 지출이 대폭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발주처인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등 발전 자회사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 조정에 동의하지 않아 손실이 더욱 커졌다.
이에 프로젝트 진행이 지연됐고 신규 프로젝트 수익성도 급격히 악화했다. 세아STX엔테크는 2022년 매출 2,644억원, 영업손실 1,008억원, 자본 총액 마이너스(-) 780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전년 대비 손실 규모가 14배나 불어난 것이다. 지난해 매출 역시 전년 대비 28.8% 감소한 2,053억원, 영업손실은 353억원으로 적자가 지속됐다. 자본 총액은 -1,285억원으로 한 해 사이 늘어난 자본잠식 규모가 505억원에 달한다.
재무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세아STX엔테크는 금융권, 계열사, 김 회장의 사재 출연 등으로 차입을 급속도로 늘렸다. 재무 건전성 악화, 기업 신용도 하락에 따라 금융권 등 외부에서 자금을 융통할 수 없게 된 탓에 계열사 돈을 대거 끌어왔지만, 그럼에도 세아STX엔테크의 실적 회복 전망이 요원하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남동발전·한국남부발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자구책도 마련한 상태다.
M&A 통한 몸집 부풀리기 전략 ‘부메랑’으로
업계에서는 연이은 M&A로 몸집을 급격하게 불려 온 글로벌세아그룹이 후폭풍을 맞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세아는 세아상역으로 성공을 거두자 2000년대 중반부터 굵직굵직한 M&A에 뛰어들었다. 2007년 4월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던 패션업체 ㈜나산(현 인디에프)을 인수한 데 이어 2018년 8월 세아STX엔테크, 2020년 1월 국내 1위 골판지 상자 제조업체 태림포장과 원지 생산업체 태림페이퍼를 계열 편입했다. 2022년 3월에는 수소충전소 업체 발맥스기술에 이어 그해 12월 중견 건설사 쌍용건설도 사들였다.
이 같은 M&A를 통해 글로벌세아는 세계 최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에서 건설·플랜트, 제지·포장, 식음료, 문화·예술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사로 발돋움했다. 오롯이 M&A만을 통해 대기업(자산총액 5조원 이상) 반열에 오른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글로벌세아그룹은 현재 자산(2023년 말 국내 계열사 개별자산 합계) 6조3,700억원으로 재계 순위 70위에 랭크하고 있다. 매출 5조870억원에 계열사는 71개(6월 말 국내 24개·해외 47개)사에 달한다.
그러나 몸집에 비해 내실은 빈약한 모습이다. 조이너스·꼼빠니아·트루젠 등의 브랜드로 유명한 인디에프는 2019년부터 5년 연속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이 기간 누적 영업손실만 600억원에 이른다. 육상·해양 수소 설비 업체인 발멕스기술도 지난해 말 17억원의 적자를 냈고, 글로벌세아가 의욕적으로 인수했던 태림페이퍼와 태림포장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반 하락하며 그룹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글로벌세아 측은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지만, 재계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계열사들의 동반 추락을 두고 ‘승자의 저주’를 우려한다. 과도한 M&A로 인해 그룹의 체질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세아그룹 계열사들의 실적 압박은 최근 주력 계열사인 세아상역과 지주사 글로벌세아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세아상역의 매출은 2조3,397억원에서 1조8,219억원으로 전년 대비 22.1% 감소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감소 폭은 더 크다. 영업이익은 63.5%(1,768억원→622억원), 순이익은 70.5%(1,706억원→504억원)나 각각 감소했다.
글로벌세아의 경우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적자 전환했다. 2022년 플러스(+) 640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마이너스-202억원으로 내려앉았다. 영업비용인 지분법평가손실(790억원)이 영업수익인 지분법평가이익(506억원)보다 큰 탓에 영업손실이 확대된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차입금 증가에 따른 이자비용 증대가 주효했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