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돈줄’ 죈 미국, 내년 대중 투자 통제 “기술 패권 전면전 돌입”
美 첨단 기술 대중 투자 규제 최종안 확정
내년 1월 2일 시행, 미, '중 기술 발전' 위협 판단
반도체 기술과 양자컴퓨팅 관련 거래도 제한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기술과 관련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통제하기로 했다. 사실상 중국에 대한 미국 자본의 최첨단 기술 분야 투자를 전면 통제하는 것이 골자다. 중국으로의 첨단 칩 수출 규제는 이미 시행 중이며 이번 규칙은 구형 반도체 관련 투자의 경우에도 신고를 요하는 등 기존 규제를 구체적으로 보완한다.
美 ‘對中 통제’ 강화, 투자 ‘원천 봉쇄’
28일(현지시간) 미 재무부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 14105호’에 대한 의견 수렴 및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우려 국가 내 특정 국가 안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미국 투자에 관한 행정명령 시행을 위한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최종 규칙은 내년 1월 2일부터 시행된다.
최종 규칙안은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홍콩과 마카오 역시 ‘우려 국가’로 규정했다. 통제의 목적은 중국이 해당 첨단 기술로 군사 역량을 키우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백악관은 “국가 간 투자 흐름과 미국의 개방적 투자 정책은 미국 경제 활력에 기여하고 있다”면서도 “우려 국가들은 미국의 투자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내년부터 반도체, 양자컴퓨팅, AI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를 진행하려는 기업은 사전에 투자 계획을 미 재무부에 신고해야 한다. 먼저 AI 분야에서는 모든 AI 시스템 개발과 관련된 거래가 신고 대상이다. 군사 분야에 초점을 맞춘 중국 AI 회사의 경우 미국 개인과 기업이 지분을 취득하는 것이 금지된다. 아울러 민간 AI 모델 투자의 경우에도 금지 또는 제한될 수 있다. 조지타운대 안보·신기술센터(CSET)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1년 사이 중국 AI 기업의 글로벌 투자 거래의 17%에 미국 자본이 들어갔으며 10건 중 9건이 벤처캐피털(VC) 단계에 참여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특정 전자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특정 제조 또는 고급 패키징 도구, 특정 고급 집적회로의 설계 또는 제조, 집적 회로용 고급 패키징 기술, 슈퍼컴퓨터와 관련된 거래 등이 금지된다. 또 집적 회로 설계, 제작 또는 패키징과 관련된 거래의 경우에도 신고해야 한다. 폴 로젠 재무부 보안 담당 차관보는 “첨단 암호 해독 컴퓨터 시스템이나 차세대 전투기와 같은 차세대 군사, 사이버 보안, 감시 및 정보 애플리케이션의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팅 분야의 경우 양자컴퓨팅과 관련된 개발 또는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 생산, 특정 양자 감지 플랫폼의 개발 또는 생산, 특정 양자 네트워크 또는 양자 통신 시스템 개발 또는 생산 등의 거래가 금지된다. 위반 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따라 민사 및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中기술 굴기’ 견제 쐐기
백악관은 이번 규칙이 중국 견제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행정명령을 통해 중국을 비롯해 홍콩과 마카오를 우려 국가로 규정하면서 재무부에 대중 투자 제한 세부 규칙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이에 재무부는 올해 6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규칙 제정안(NPRM)을 공개하고, 의견 수렴을 거쳐 이날 최종 규칙을 발표한 것이다.
워싱턴DC의 신미국안보센터(CNAS) 등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이후 반도체나 AI 등 첨단 분야에서 40개 이상의 대중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 2022년 10월 16㎚(나노미터) 내지 14㎚의 로직(시스템) 반도체 등 장비 및 기술에 대한 대중 수출 통제를 시행한 데 이어 이듬해 10월에는 규제되는 장비와 반도체를 대폭 늘렸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 커텍티드카(인터넷에 연결된 차량)의 중국 소프트웨어 사용 금지 등의 조치를 잇따라 발표하는 등 중국의 첨단 기술을 견제하는 미국의 제재 수위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다만 이런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이번엔 투자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중국의 기술 발전을 더 적극적으로 저지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미 언론들은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중국 견제 기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韓 기업-합작사 전방위 피해 가능성
미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미국에 현지 법인을 두고 있거나 미국 기업 혹은 펀드의 투자를 받으면 모두 대중 투자가 막히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첨단산업 분야에선 한국 기업이 최선두 국가인 미국에 법인을 두거나 미국 자본의 투자를 받은 사례가 많다. 올해 6월 미국 실리콘밸리 VC 등에서 440억원 투자를 유치한 AI 벤처기업 뤼튼 테크놀로지스(Wrtn Technologies)나, 지난해 10월 엔비디아와 인텔의 투자를 유치한 AI 영상 스타트업 트웰브랩스(Twelve Labs) 같은 곳들은 향후 중국 시장 진출 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두고 있는 삼성넥스트, LG테크놀로지벤처스, GS퓨처스 등 주요 그룹의 기업벤처캐피털(CVC)도 마찬가지다.
양자 분야에서도 중국과의 협력 차질이 예상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8월 양자 기술 협력을 위해 SK텔레콤, KT, LG전자 등 국내 기업 107곳 정도와 미국 IBM 등 글로벌 유수 기업이 합작한 표준화 기구 ‘퀸사(QuINSA)’를 출범시켰다. 미래 산업인 양자 분야에서 기술 표준화를 주도하고 글로벌 기술 발굴 및 투자를 함께하기 위한 협의체다. 하지만 이번 규제안이 시행되면 IBM이 끼어 있다는 이유로 대중 양자 기술 협력이나 투자 프로젝트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투자를 금지하는 대상도 매우 광범위하다. 단순히 우려 국가 뿐만 아니라 ‘우려 국가 국민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자’까지 포함하면서 사실상 중국·홍콩·마카오와 거래관계가 있는 우리 기업들까지 모두 미국 투자 유치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지난 5월 중국 반도체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국영기업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합작법인 계약을 마무리한 SK하이닉스도 앞으로 미국 투자 유치가 막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