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열하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 당정 ‘반도체 특별법’ 통과 최우선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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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반도체 지원 강화' 강조
반도체특별법 통과에 속도
전문가들 "인력 수급이 더 시급" 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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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민생 입법과제 점검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국민의힘TV 캡처

경기 둔화와 민생 악화가 계속되자 당·정이 반도체산업특별법 제정 등 민생 입법 추진에 뜻을 모았다. 당정은 이번 정기국회를 ‘경제 살리기 골든타임’으로 보고 정쟁과 관계없이 민생 입법에 성과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당정, 민생입법과제 협의

29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만나 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서민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며 국정감사 이후 정기국회에서 민생법안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먼저 당정은 인공지능(AI), 첨단산업, 데이터센터 등으로 전력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송전망과 송전탑을 신속하게 건설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전력망법을 우선 순위에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2014년 이후 10년째 시행되고 있는 이동통신단말기유통법도 폐지키로 했다. 단통법 시행 이후 가계 통신비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구 비상사태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중점 추진 법안에 포함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가 딱 하나 일을 할 수 있다면 국민의힘은 망설이지 않고 민생을 택할 것”이라며 “우리의 정책적 노력이 민생에서 성과로 보이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묵묵히 우리 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시급한 민생·경제 입법 과제들이 금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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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산업특별법 통과’ 최우선 과제로 선정

특히 당정은 글로벌 반도체 전쟁 국면에서 국내 반도체산업 지원대책을 총망라하는 반도체특별법 통과를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이 법은 반도체 클러스터에 직접 보조금 지급을 명문화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는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의원이 강연을 진행한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모임 ‘왜 AI와 반도체를 함께 이야기하는가?’에 참석해 “(AI·반도체) 산업혁명의 물결에 올라타고 숟가락 얹어서 이 드라마틱한 성장의 계기에 동참해야 한다”며 “그게 바로 우리 당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반도체법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조항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이어 “(반도체 기업 지원이) 반도체 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와 AI의 혁명을 통한 국가 전체의 부를 늘리고 세금이나 법적 자원으로 우리 모두를 잘 살기 위한 복지를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추경호 원내대표 또한 “반도체가 없었으면 지금 우리의 대한민국 산업 경제가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라며 “반도체가 어떠한 전략 무기보다도, 더 소중한 지금 우리의 안보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간 국민의힘은 고동진·박수영·송석준 의원이 대표발의한 ‘반도체 지원법’을 토대로 당론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법안에는 직접보조금 지급이 포함될지 여부가 관건이다. 전날 출범한 국민의힘과 민주당 민생·공통공약 추진 협의회에서도 반도체·AI 산업은 여야 공감대가 형성된 우선 처리 법안으로 거론됐다.

고 의원은 이날 강연 이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민생협의체에서 (논의되는 법안에) 반도체 특별법도 포함되어 있다”며 “(그 법안에) 직접보조금을 넣으려는 방안을 추진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도체 특별법은) 대기업을 위한 게 아니라 팹리스 회사나 중소·중견 기업, 소부장 기업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11월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한파’보다 더 심각한 인력난

다만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에 있어 가장 시급 과제는 인력 수급이라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정작 인력을 구하지 못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학비 무료, 채용연계 등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주요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를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이공계 우수 학생들은 의대를 선호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수도권 주요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 최초 합격자의 등록 포기율은 155.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연계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등록 포기율의 경우 130.0%에 달했다. SK하이닉스와 연계된 고려대 반도체학과와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등록 포기율도 각각 72.7%, 80.0%를 기록했다.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등록 포기율이 무려 275.0%에 달했다. 대기업과 함께 협력해 만든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가 정작 우수 학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학생 이탈만이 문제가 아니다. 학부생들을 가르칠 교수도 부족한 형국이다. 지난해 기준 반도체 관련 학과(기계·기전·반도체 및 세라믹·신소재·재료·전자공학 계열)가 있는 대학교의 학과 1,421개 중 전임교수가 1명도 없는 학과 비율은 69.2%(984개)에 달했다. 반도체학과 10곳 중 7곳은 겸임, 객원교수 등 비전임교수가 강의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임교수가 그나마 많은 연세대 시스템반도체학과의 경우 지난해 4명에서 올해 2명이 추가되긴 했으나 입학 정원이 지난해 50명에서 올해 100명으로 크게 늘었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전임교수가 없다. 학계에서는 실력 있는 전임교수를 채용하려면 고액 연봉을 줘야 하지만, 국내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로 재정적인 여유가 없어서 교수 채용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국, 대만, 일본이 정부 주도로 교수진을 육성하는 것과 대비된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의 무차별적인 러브콜로 인재 유출도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인력은 2031년 30만4,000명에 달하지만 실제 공급 규모는 5만4,000여 명 부족할 전망이다. 인력 배출 규모 또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매년 공급되는 인력이 직업계고 1,300명, 전문학사 1,400명, 학사 1900명, 석·박사 430명 등 5,000여 명에 불과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산업 기술인력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반도체 산업 분야의 기술 부족 인력은 2019년 1,579명, 2020년 1,621명, 2021년 1,752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일각에선 향후 10년간 반도체 부문의 인력 부족이 3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