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의장, 쿠팡 창업 14년 만에 보유 주식 5,000억원어치 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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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뉴욕증시 상장 후 첫 주식 대량 매도
쿠팡 측 "세금 등 재정적 요구 이행과 관련"
200만주는 기부 예정, 경영권엔 문제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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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욕증권거래소

김범석 쿠팡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이 내년 8월까지 주식 1,500만주를 매도하기로 했다. 지난 2021년 3월 상장 이후 첫 엑시트로 김 의장은 이번 매도로 5,000억원대 수익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쿠팡은 김 의장이 200만주를 국내외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매도와 기부를 통해 줄어드는 김 의장의 지분은 9.7% 수준으로 의결권 기준 보유지분이 여전히 70%를 넘겨 경영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8월까지 1,500만주 매각, 기부 지분 합쳐 9.7% 처분

6일(현지 시각) 쿠팡 Inc(이하 쿠팡)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범석 창업자 겸 CEO가 미국 증권거래법 10b5-1 규칙이 정한 증권거래위원회(SEC) 가이드라인과 쿠팡의 주식 거래 정책에 따라 ‘사전 주식거래 계획’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쿠팡은 “해당 계획은 김 의장이 보유한 쿠팡의 ‘클래스B’ 보통주를 ‘ 클래스A’ 보통주로 전환해 최대 1,500만주까지 매각하는 안으로 지난 8월 12일 체결됐다”며 “오는 11월 11일부터 시행해 내년 8월 29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며 조기 마무리될 수 있다”고 전했다.

미 증권거래법 10b5-1 규칙은 기업의 임원 등이 미리 매각할 주식 수량과 기간 등을 확정해 SEC에 매각 계획을 제출하는 제도로 기업 내부자가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에 나서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됐다. 쿠팡은 “10b5-1 규칙은 기업의 임원이 중요한 미공개 정보가 없는 경우 사전 주식거래 계획을 채택해 특정 조건으로 확정된 수량을 팔도록 허용한다”며 “김 의장은 2021년 3월 미국 상장 이후 주식을 매각하지 않았지만, 납세 등 상당한 재정적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이번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매도 예정인 1,500만주를 이날 종가(주당 24달러) 기준으로 계산하면 3억6,000만 달러(5,037억원)에 이른다. 또 이날 김 의장은 200만주를 국내외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매각 예정인 1,500만주와 기부 목적의 200만주를 합친 1,700만주는 김 의장 보유 지분(1억7,480만2,990주·클래스B 보통주)의 9.7%에 해당한다. 쿠팡은 “주식 매각과 기부 후 김 의장의 지분율은 8.8%로 소폭 하락하지만 클래스B 보통주는 주당 29배의 차등의결권을 가진 주식으로 의결권 기준으로는 지분율이 75.8%에 달해 최대주주 지위를 위협할 수준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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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 뱅크

뉴욕증시 상장 이후, 대주주와 핵심 임원 지분 매각 이어져

이번 매각은 특히 창업자 김범석 의장의 첫 엑시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내 이커머스 1세대 개척자로 통하는 김 의장은 하버드대학 재학 시절 대학생 잡지 커런트를 만들어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에 매각했다. 이후에는 명문대 출신 독자를 위한 월간지 빈티지미디어를 설립해 4년간 경영하다가 다시 매각했다. 그리고 2010년 김 의장은 대학 시절 친분이 있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딸 윤선주 이사, 하버드 동문인 고재우 부사장 등과 함께 자본금 30억원으로 쿠팡을 창업했다.

쿠팡은 설립 초기 티몬, 위메프 등과 같은 소셜커머스 기업으로 시작했지만 2014년 로켓배송 론칭을 통해 이커머스 기업으로 전환하면서 창업 4년 만에 유니콘 기업에 올랐다. 지난 2016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이후 매년 40~60% 씩 덩치를 키웠고 2020년에는 매출액은 13조원을 넘어서며 90% 성장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창업 11년 만에 기업가치 72조원을 평가받으며 뉴욕증시(NYSE)에 상장에 성공하면서 벤처 업계 성공신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성장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상장 이후에도 위기는 이어졌다. 상장 첫해인 2021년 6월 덕평물류센터 화재 사건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과 관련해 김 의장의 거취가 논란이 됐다. 당시 건물 대부분이 전소하고 1,620만개의 상품이 소실되는 재산상의 피해도 발생했다. 여기에 ESG경영이 글로벌 경영의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노동 문제도 쿠팡의 발목을 잡았다. 또 매년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에 이르는 적자가 쌓이면서 2022년에는 누적 적자 4조원을 넘어섰다.

쿠팡의 기업가치가 위협받자, 대주주들은 일제히 주식을 대량 매도하기 시작했다. 2021년 8월 2대 주주인 그린옥스캐피탈은 5,770만주를 매도했고 쿠팡Inc의 주요 주주이자 런치타임의 실질 소유주인 선 벤자민도 이 시기 1,700만주를 매도했다. 같은 기간 쿠팡Inc 임원들도 주식 매도 행렬에 동참했다. 팜 투안 기술책임자와 아난드 게레이 재무책임자가 각각 스톡옵션으로 받은 36만주와 16만주를 매도했고 파커 마이클 회계책임자도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 5만주를 차익을 챙겼다.

지난해 첫 연간 흑자 달성, 초기 투자자 엑시트 시점에 관심

이런 상황에도 김 의장은 뚝심 있게 투자를 단행했다. 쿠팡이 지난 10년간 집행한 투자액은 6조2,000억원으로 이를 통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다. 과감한 투자는 지난해에는 사상 첫 연간 흑자를 거두면서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났다. 올해 2∼3분기에도 2분기 분기 연속 매출 10조원대를 기록해 이러한 추세라면 국내 유통업계에서 단일 기업으로는 첫 40조원대 매출 달성이 유력시된다. 쿠팡에서 한 번이라도 제품을 구매한 고객 수는 3분기 기준 2,020만명으로 국내 이커머스 이용자(3,400만명)의 59.4%에 달한다.

쿠팡이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이제는 초기 투자자의 엑시트 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쿠팡의 주식 4,660만주를 매각했다. 2021년 9월, 2022년 3월과 12월에 이어 네 번째 대규모 매각으로 그간의 거래로 비전펀드는 총 4조원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전펀드가 투입한 자금이 3조원임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1조원의 수익을 본 셈이다. 쿠팡 상장 당시 3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소프트뱅크는 잇다른 지분 매각으로 현재는 약 22%대까지 비중이 줄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월에는 매버릭홀딩스가 보유한 클래스A 보통주식 1,000만주를 주당 17.79달러에 매입하는 자사주 매매계약(Share Repurchase Agreement)을 쿠팡과 체결했다. 쿠팡이 초기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를 위해 지분 일부를 자사주 형태로 인수하는 것은 2021년 상장 이후 처음이다. 당시 쿠팡은 “자사주로 인수한 물량은 전체의 0.6%으로 쿠팡은 인수 주식을 전량 소각할 계획”이라며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 창출을 위해 자사주 매입을 포함한 다양한 기회를 발굴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