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가 뻥튀기가 발목 잡네” 크래프톤 우리사주 보유 직원들 ‘분통’
"아직도 공모가 회복 못 해" 크래프톤 우리사주, 여전히 먹구름
상장 당시 '꼼수'로 공모가 부풀린 영향
공모주 시장 병폐로 자리 잡은 공모가 뻥튀기, 당국 제재 유명무실
크래프톤 우리사주를 보유한 직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크래프톤이 호실적을 기록하며 주가 전망치가 줄줄이 상향 조정되고 있지만, 상향된 목표가마저도 2021년 상장 당시 고평가됐던 공모가를 밑도는 탓이다. 크래프톤 상장 이후로도 시장 곳곳에서 ‘공모가 뻥튀기’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제도적 허점이 공모주 시장의 투자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호실적에도 우리사주 ‘암담’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증권가는 3분기 호실적을 기록한 크래프톤 목표가를 줄줄이 상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 7일 크래프톤은 3분기 매출 7,193억원, 영업이익 3,244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9.7%, 71.4% 증가한 수준이다.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증권사들은 △대신증권 48만원 △NH투자증권 47만원 △삼성증권·IBK투자증권·유진투자증권 45만원 △KB증권 42만원 등 크래프톤 목표가를 올렸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도 주가를 51만원으로 상향 제시했다.
호실적, 목표가 줄상향 등 호재가 누적되고 있지만, 크래프톤 우리사주를 보유한 직원들은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상향된 증권가 목표가조차 2021년 상장 당시 공모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골드만삭스 제외). 크래프톤은 2021년 8월 20일 공모가 49만8,000원으로 코스피 시장에 입성했으나, 1년 뒤 보호예수가 해제된 시점 주가는 25만3,000원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는 공모가 대비 49.2%가량 낮은 수준이다.
올 6월 말 기준 크래프톤에 남아 있는 우리사주 물량은 26만주 정도다. 이는 1년 전 28만주보다 2만 주, 상장 당시 대비 약 26% 줄어든 수준이다. 우리사주 100주 중 74주는 아직 처분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크래프톤이 우리사주조합원에게 제공한 우리사주 취득 관련 대여금은 1년 동안 753억원에서 678억원으로 75억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크래프톤의 공모가 부풀리기
시장에서는 크래프톤 상장 당시 발생했던 ‘공모가 거품’이 우리사주 투자자들의 손실을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21년 크래프톤은 공모가 45만8,000~55만7,000원으로 1,006만230주를 공모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후 공모가 40만~49만8,000원에 865만주를 공모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시장에서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여론이 확산하자,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 정정 및 비교기업 선정 방식에 대한 부연 설명을 요구한 탓이다.
당초 크래프톤은 정정 전 증권신고서에서 기업가치를 산정하면서 비교 대상으로 엔씨소프트·넷마블 등 국내외 대형 게임 회사 7곳과 월트디즈니, 워너뮤직그룹 등 글로벌 콘텐츠 업체 2곳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정 신고서상 비교 대상에는 엔씨소프트,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 등 국내 게임업체 4곳만이 포함됐으며, 크래프톤의 공모가가 높게 산출된 이유로 꼽혔던 월트디즈니, 워너뮤직그룹 등 매출 구조가 상이한 해외 기업들은 비교 대상에서 제외됐다.
문제는 크래프톤이 평가액 대비 할인율을 함께 축소하는 ‘꼼수’로 높은 공모가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크래프톤은 최초 제출한 증권신고서상 32.4%~17.8%이던 할인율을 30.9%~14.0%까지 줄여 공모 희망 밴드를 확정했으며, 결국 14.0%의 할인율을 적용해 최종 공모에 들어갔다. 2015~2020년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의 평가액 대비 할인율 평균은 32.0%~19.1%인 것으로 나타났다. 크래프톤은 당시 상장기업 평균치보다 최소 5.1%p 비싼 값에 공모가를 책정한 셈이다. 상장 후 크래프톤의 주가는 상장 후 줄곧 공모가를 밑돌았고, 청약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됐다.
공모가 뻥튀기 부추기는 ‘제도적 허점’
이 같은 ‘공모가 뻥튀기’는 최근까지도 공모주 시장의 병폐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공모가 3만원으로 상장한 씨메스는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23% 하락한 2만3,100원으로 장을 마쳤다. 10월 25일 상장한 웨이비스와 에이치엔에스하이텍은 상장 첫날 각각 공모가 대비 27.4%, 22.8%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고, 28일 상장한 클로봇도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22.54% 하락한 채 장을 마무리했다. 10월31일 상장한 성우와 11월1일 상장한 탑런토탈솔루션, 에이럭스 역시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각각 38.3%, 23.7%, 12.5% 미끄러졌다.
이에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의 공모가 부풀리기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국은 증권사들의 공모가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2013년 7월부터 코스닥 기업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가 공모 물량의 3%(최대 10억원)를 의무 인수하도록 하고, 의무 인수 지분을 상장 후 3개월 동안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공모가를 부풀리거나 부실기업을 상장할 경우 상장 주관을 맡은 증권사에도 책임을 지우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최근 증권사들은 이 같은 안전장치를 오히려 수익 실현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상장 전부터 미리 IPO 기업의 주식을 싸게 사들인 뒤 상장 후 매각해 의무인수 물량에 따른 손실을 상쇄하는 방식이다.
기술력이 뛰어난 적자 기업들의 상장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기술특례 상장’ 역시 공모가 부풀리기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기술특례로 상장할 시 현재 실적이 아닌 미래 추정 실적을 기반으로 기업 가치를 산출할 수 있다는 허점을 악용, 증권사들이 흑자 기업을 기술특례로 상장시키며 희망 공모가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올해 상장사 중 흑자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은 코셈, 삼현, 하스, 피앤에스미캐닉스, 케이쓰리아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