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전화 기반 여론조사와 인터넷 기반 여론조사

전화 기반 여론조사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 높아, 인터넷 여론조사 진행하는 경우도 많아
한국은 휴대전화 기반 신원 확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여론조사 정확도 높고 비용 저렴한 축에 속해
인터넷 조사가 비용은 저렴하지만 정확도 높이기 어려워 아직 한계 있어

이번 22대 총선 기간 내내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처리해놨었다. 주소지가 경합지역이어서인지는 몰라도, 하루에도 최소한 4번 이상의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바쁜 업무 와중에 사업상으로 중요한 전화를 놓치게 되는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 여론조사에 응해주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선거철 진행되는 여론조사에 대한 응답률이 5%를 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으로 길거리에서 선호도를 표현하는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해도 바쁘다면서 회피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텐데, 전화는 비대면인만큼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더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번 선거 기간 중에 해외에는 전화 기반 여론조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한국만 아직도 구시대적인 전화 조사를 진행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선거투표

전화 기반 여론조사의 장점과 한계

미국인, 일본인 친구가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점은 휴대전화번호가 1명의 신원을 상징하는 사회 시스템이다. 본인 인증을 위해서 어릴 때 고향, 최근 집 주소, 어머니의 결혼 전 성씨 등등을 질문하는 복잡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는 해외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은 휴대전화번호만으로 본인 신원을 인증하는 시스템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알뜰폰의 경우, 1명이 2개의 번호를 가지지 못하도록 서비스 자체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다. 사업상 여러 번호를 운영하는 분들을 보면 1개 통신사에서 개인용 휴대전화번호를 2개까지만 허락해주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여러 통신사를 쓰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미국 드라마에서 쓰고 버리는 대포폰을 편의점에서 사서 도망자 신세인 주인공이 쓰는 경우들을 흔히 봤겠지만, 한국에서는 통신사에서 번호 개통을 할 때 신분증을 제출해야 한다. 그만큼 휴대전화번호에 따른 신원 확인이 높은 수준으로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휴대전화번호만으로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나라와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나라 사이에서 여론조사 방식이 같을 수 있을까? 위의 차이는 한국이 전화 기반 여론조사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반대로 미국이 휴대전화 기준 여론조사를 오래전부터 보완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넷 기반 여론조사의 장점과 한계

최근들어 주요 여론조사 관계자들이 전화 기반을 포기하고 인터넷 기반 여론조사를 시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터넷 기반의 여론조사가 상당히 진행됐고, 정확도도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 다만 개인 식별 문제를 여전히 휴대전화번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식만 여론조사가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휴대전화번호에 의존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모든 인터넷 기반 여론조사는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는 응답자가 스스로가 조사대상자가 된다. 개인이 스스로 여론조사에 참여하므로 조사자의 조사대상자 선정과정이 생략되기 마련이다. 전문용어를 쓰면 표본이 모집단을 대표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표현할 수 있고, 일반인들 용어를 쓰면 그 웹사이트 들어가는 사람들만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생각하는거겠지라고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1936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인기잡지인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미국의 전화 가입자와 자동차 소유자 1천만 명에게 우편엽서를 발송해, 236만 명에게서 답변을 받는 지상투표식 조사를 시행했다. 이를 통해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랜던 57%, 루스벨트 43%로 랜던의 우위를 예측했다. 반면 갤럽은 미국 전역의 유권자 중 할당추출법으로 1,500명을 추출해 이들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시행했다. 이를 토대로 갤럽은 랜던 44%, 루스벨트 56%를 예측했다. 개표 결과는 38% 대 62%로 루스벨트가 당선됐다.

보통은 위의 예시를 많은 표본이 무조건 정확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모집단을 대표하는 표본을 뽑아야한다는 예시로 쓴다. 인터넷 기반 여론조사를 들으면서 위의 사례가 떠올랐던 것은 인터넷 웹사이트의 클릭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대표성과 잡지 구독자들의 우편엽서가 만들어낼 수 있는 대표성이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보다 더 정확한 여론조사 쉽지 않아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휴대전화번호보다 더 쉽게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표본을 추출하기는 쉽지 않다.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비용은 훨씬 더 비쌀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 기반 여론조사가 가능해진다면 기관들이 선택하는 이유는 더 정확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더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전화 기반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다.

실제로 영어권의 주요 언론사들이 웹사이트 방문자 숫자, 구글 검색 트렌드 등을 이용해서 여론조사를 시도해 본 적이 있다. 심지어 캠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는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좋아요 클릭 정보를 이용해 사용자들이 반응할만한 콘텐츠와 후보를 엮어 만든 선거 홍보를 만들었다가 미국 상원 청문회를 거치면서 회사 주요 관계자들이 범법자가 된 사례도 있다. 인터넷 공간이 여론을 담고 있는 만큼,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낸다면 대표성 있는 집단을 뽑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근거들이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결국에는 전체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표본을 추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전화 기반 여론조사를 인터넷 기반 여론조사가 대체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인터넷 기반 여론조사도 가입자를 받을 때 전화번호 인증 등의 절차를 거쳤고, 출신 지역, 성별, 연령 등의 주요 선거 관련 변수 정보를 직접 받거나, 과거 투표 성향들을 통해 위의 변수들을 역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ARS 기반 전화조사가 아니라 실제 상담사의 대화를 통한 여론조사 비용이 1건에 3천만원 정도 든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한 단가를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매우 비싼 비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단 3천만원으로 대한민국 5천만 인구의 정치적 선택을 매우 높은 정확도로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비싼 비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인 1번호라는 휴대전화 보급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더라면 그 비용은 더 비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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