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교육포기] ①정부가 수포자되면 학생들이 덜 수포자 될까?

정부가 고교 수학 교육을 포기한다고 학생 수포자 비율이 줄어드는 것 아냐
지난 7차 교육과정부터 미·적분 포기했지만 꾸준히 수포자 비율은 느는 추세
결국 대학에서 고급 교육을 받고 싶은 일부 학생들만 피해를 보는 구조

지난 22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선택과목으로 심화수학(미적분II+기하학)을 신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2028년부터 수능으로 대학을 가는 학생들은 2004년 이전 6차 교육과정 학생들 중 문과 학생들보다 더 좁은 범위의 수학만을 배우고 이과 전공으로 대학을 가게 되는 것이다.

현재도 미적분, 기하 및 확률과 통계 중 한 과목을 선택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각종 비난을 받아왔으나, 2028학년도부터는 대수, 확률과 통계 및 최소한의 미적분학을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기존 미적분에 포함되어 있던 수열의 극한, 미분법, 적분법 등의 내용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국교위 결정을 들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제일 먼저 궁금했던 건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고교생 중에 수포자 비율이 줄었을까는 의문이었다. 한국 귀국 후 지난 6년간 봤던 한국인 학생들의 수학 교육 수준은 심각하게 낮았는데, 그것보다 더 낮춰야할만큼 한국이 수학을 못하는 나라로 살아야 하나? 그만큼 수포자가 많아서 정부가 학생, 학부모 눈치를 보고 수학 교육 부담을 덜어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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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exel

수포자는 매년 늘고 있다

살던 동네의 한 외국어 고교를 다녔는데, 그 때 우리 학교 친구들 중에 수학에 대한 부담을 거의 느끼지 않았던 비율은 전체의 20~30%정도 였던 것 같다. 난 1학년 1학기 이후로 수학 공부를 딱히 시험에 맞춰서 해 본적이 없었는데, 나같은 친구들이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를 넘지는 않았다. 나름 명문고등학교고, 부모님의 알뜰살뜰한 선수학습 지원 덕분에 수학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하고 온 애들이 절반이 넘었던 학교였는데, 거기서도 여전히 수포자는 상당했고, 그 친구들은 “수학만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왜 배우는지도 모르겠다더라.

대학와서 경제수학, 경제통계학을 들으면서 거꾸로 고교 시절에 수학II를 제대로 안 보고 온 걸 후회하고는 방구석에 먼지만 소복하게 쌓여있던 수학II 교재를 다시 꺼내들었었는데, 군 복학 후에 보니까 후배들이 미분, 적분을 안 배우고 대학을 와서 경제학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선형대수학, 미분방정식, 해석개론 같은 수학과 전공 수업들을 찾아가면서, 예전에는 경제학과 선배들이 수학과 A를 휩쓸어갔는데, 우리 세대는 A 못 받는 (나같은) 애들도 생기고, 더 밑으로는 아예 수학과 수업을 도전하는 애들이 별로 없어졌다고 하더라. 10년 사이에 빠르게 문과의 수학 실력이 추락했던 것을 반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지난 2022년 한 조사에 따르면 고교생 수포자 비율이 2019년 9%, 2020년 13.5%, 2021년 14.2%로 늘었단다. 솔직히 설문 조사를 넘어서 현실을 따지면 수학으로 대학 교육 과정을 따라갈 수 없는 비율이 국내 고교생 중에 50%, 아니 80%를 넘을 것이다. 이미 2005학년도에, S대에서도 미분, 적분을 못 따라가서 경제학을 포기했던 애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걔들은 다들 고시 공부하러 가더라.

어차피 고교 교육 과정에서 가르치는 수학은 문제 풀이에 불과하다. 대학 수학처럼 증명 기반으로 논리를 쌓아가는 학문 훈련이 아니라 지식 전달인 이상, 뭘 어떻게 가르쳐도 그 범위 안에서 수포자의 비율은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분, 적분이 개념적으로 더 도전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우리 눈에 ‘중세인 수준’인 1700년대 인류가 만들어낸 수학이고, 그걸 증명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 풀이에 이용하는 정도라면 비슷한 레벨의 다른 수학 지식에서 거의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아마 미분, 적분을 못하는 애가 기하학, 함수론만 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레벨에서는 다 같은 수학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예외가 있다면 잘못 배운 상태일 것이고, 하나를 잘 하면 나머지 하나를 잘 하게 만드는 교육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굳이 뭘 가르치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 범위를 굳이 늘릴 필요 없이, 최소한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대학가서 네가 하고 싶은 전공에 맞춰 더 배워라고 대학교에 짐을 넘겨 버리는 것이다. 자꾸 수포자 많아지는데 굳이 더 학생들을 괴롭힐 필요 있나?

수포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수학 교육, 나라를 이끌 인재들의 눈높이에 맞춘 수학 교육

귀국해서 지난 6년 동안 내가 싸워왔던 가장 큰 적(適)을 고르라면, 단연코 개발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개발자 집단 중에 코드 몇 줄을 복사하면 AI/Data Science 전문가라고 주장하던 집단, 그렇게 광고하면서 교육과정을 팔던 분들이 내 입장에서 가장 큰 적이었다. 저건 수학 교육이 후진적인 2류 국가에서나 있을법한 일이었는데, 심지어 지난 정권이 3류 코딩 교육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쏟았나?

수포자들은 수포자들에게 맞는 교육이 있다. 그들도 자기들의 재능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맞춰 재능을 개발하고, 그걸로 먹고 살 방법을 찾으면 된다. 반대로 수학을 잘 하는 애들에게 던져주고, 그걸 풀어 냈을 때 합리적인 보상이 주어지도록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저런 인재들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원인은 한 가지다. 수포자들이 사회 권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교위의 정책 결정이 외부 정치적 압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또 그 분들이 수포자들이기 때문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표를 주는 일반 국민들의 압도적인 다수는 수포자들이고, 그 분들은 수학 교육을 왜 해야되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다.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들이 수포자로 재생산되는 구조가 몹시 괴로울 것이다. 말을 바꾸면, 한국 사회가 수포자들이 사회 권력을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수학을 잘하건 못하건 1명이 1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수포자 될 애들을 굳이 억지로 끌어올리려는 시늉만 하는 저런 국가 정책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이런데 저 분들인들 뭘 바꿀 수 있을까?

정부가 수포자되면 수포 안 한 애들만 피해 본다

저 결정이 미칠 영향은 05학번부터 23학번까지 지난 20여년간 대학교 신입생들의 수학 실력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제 한국에서 미분, 적분을 내가 해외 대학에서 가르치는 수준, 혹은 글로벌 명문대의 학부 2~3학년 수준에서 따라올 수 있는 인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충격적인 상황이었는데, 앞으로 심화수학이 사라지고, 저렇게 최소한만 교육과정에 넣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지겠지. 본인이 따로 더 공부를 하는 예외적인 학생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바로 그 예외적인 학생들이 진정한 피해자들이다. 이 학생들은 지적 역량을 갖추고 있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면 더 많은 도전을 하고, 더 극복할 수 있는 탄탄한 능력을 갖춘 인재들인데, 저렇게 정부가 수포자가 되면서 배움의 기회를 잃었다. 아마 교육을 받고 싶으면 고가의 외부의 사립 교육 기관들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정부는 세금으로 지원해주지만, 사립 교육 기관들은 지원금 없이 운영되는데, 정부처럼 저렴한 가격에 교육을 제공해 줄 수는 없다. 그 사립 교육 기관 관계자들도 월급을 줘야하는 직원이 있고, 관리해야하는 건물이 있고, 운영해야하는 기관이 있다. 자원 봉사를 할 수는 없잖아?

어차피 수포자 비율은 그대로인데, 수포 안 한 똘똘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공공 교육의 범위가 축소되는 현상, 그게 바로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겪은 현상, 앞으로는 더더욱 심하게 겪을 현상이다.

열정을 갖고 SIAI를 찾아온 한국인 학생들 중에 00~04 학번 세대는 나이가 들었어도 잘 따라오고 있는게 보이는 반면, 05~10학번 세대는 고교에서 배운 수학 실력이 부족한 탓에 내가 고교 수준의 수학만 갖다 써도 괴로워했다. 그 아래 학번 출신들은 아마 매우 괴로웠을 것이다.

그간 학부 1학년 수준, 고교 2~3학년 수준의 수학 교육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발을 빼고 살았는데, 나라가 저렇게 결정하면 SIAI에 학부 0학년, 1학년 과정을 만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혼자서 다 공부했으니까, 너네도 알아서 혼자서 다 공부해라고 해 봤는데, 애들이 정말 아무것도 못 따라가더라. 아무것도.

어차피 수익성도 없는 교육기관이라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 학생들이 너무 불쌍하다. 자기는 배우고 싶은데, 아무도 자기들을 챙겨주지 않을 것이다. 교육과정을 앵무새처럼 따라가는 학교 선생들과 대학가는데 도움되는 수학만 가르쳐야 수익성이 나오는 학원 선생들이 그런 학생들의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을까? 대학 교수들마저 그런 기초 교육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을텐데, 과연 누가 저 학생들을 구제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