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DS] 2천년 전 베수비오 화산 폭발에 불탄 파피루스 해독, 인공지능 대회로 밝힌 헤르쿨레니움 두루마리의 비밀

세 학생으로 구성된 연구팀, 베수비오 챌린지 우승
머신러닝 알고리즘 적용, 감각과 쾌락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 밝혀내
2024 베수비오 챌린지, "연말까지 두루마리 85% 해독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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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cientific American

한 연구팀이 2,000년 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불에 탄 파피루스 속 그리스 문자를 일부 해독해, 고고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를 푸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베수비오 챌린지(Vesuvius Challenge)라는 대회의 우승자인 이 연구팀은 이집트, 스위스, 미국 출신의 세 학생으로 구성됐으며, 이들은 말아져 있는 파피루스 스캔 이미지를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학습시켜 두루마리 속에 감춰진 내용이 감각과 쾌락에 대해 논의하는 철학적 이야기임을 밝혀냈다.

이 두루마리는 18세기 이탈리아 헤르쿨레니움의 고급 로마 별장에서 출토된 파피루스 수백 개 중 하나다. 헤르쿨레니움 두루마리로 알려진 이 파피루스는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재 덩어리가 되어 개봉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성과로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하여 두루마리 전체를 해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고, 일반적으로 더디게 움직이던 고고학 연구에 불이 지펴짐과 동시, 고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넓혀질 것으로 전망됐다.

20년간의 노력, 인공지능으로 결실 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J. 폴 게티 박물관의 유물 큐레이터 케네스 라파틴(Kenneth Lapatin)은 “항상 꿈만 같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현된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대회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영국 브리스톨대학교의 고전주의학자 밥 파울러(Bob Fowler)는 “역사적인 순간이다”고 밝혔다. 지난 5일에 공개된 우승작에는 전체 두루마리의 약 5%에 해당하는 수백 개의 단어들이 번역돼 있다. 미국 렉싱턴 켄터키대학교의 컴퓨터과학자이자 이 대회의 공동 창립자인 브렌트 실즈(Brent Seales)는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 사람의 의구심이 말끔히 씻겼다”며, 이제 해독 가능성에 대해 “더 이상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즈는 거의 20년 동안 이 두루마리들을 해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의 팀은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 이미지를 사용하여 말려진 파피루스의 표면을 ‘가상으로 펼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2019년에는 파리의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두루마리 두 장을 옥스퍼드 인근의 다이아몬드 광원 입자가속기로 가져가 고해상도 스캔을 했었다. 그러나 표면을 매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탄소 기반의 잉크는 파피루스와 밀도가 같아 CT 이미지로는 구분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에 실즈와 그의 동료들은 머신러닝 모델로 두루마리를 ‘풀어서’ 잉크를 식별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으나, 작업의 규모에 비해 그의 팀이 가진 자원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던 중 실즈의 강연을 보고 헤르쿨레니움 두루마리에 흥미를 느낀 실리콘밸리 기업가 넷 프리드먼(Nat Friedman, 전 깃허브 CEO)이 대회를 주최해 문제를 공개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125,000달러를 기부했고 트위터에서 수십만 달러의 모금이 이뤄졌다. 아울러 실즈는 고해상도 스캔 이미지와 함께 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도 공개했다. 이렇게 베수비오 챌린지는 작년 3월에 시작하여 연말까지 진행됐으며, 각각 140자 이상으로 구성된 4개의 구절을 해독한 팀에게 대상을 수여하기로 계획됐다. 또한 단계마다 우승한 코드를 참가자들에게 공개하여 서로의 발전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크랙’ 발견으로 돌파구 열어, 첫 글자는 ‘보라색’

작년 중반 미국의 기업가이자 전직 물리학자인 케이시 핸드머(Casey Handmer)가 이미지에서 갈라진 진흙 표면과 비슷한 모양, 즉 그리스 문자 모양을 형성하는 듯한 ‘크랙클'(crackle)을 발견하면서 대회 양상이 바뀌었다. 미국 네브래스카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학부생 루크 패리터(Luke Farritor)는 크랙클을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학습시켜 ‘보라색’이라는 단어 ‘포르피라스’(porphyras)를 식별해 냈고, 10월 말 첫 글자를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베를린의 이집트 출신 박사 과정 학생인 유세프 나데르(Youssef Nader)는 더 선명한 이미지로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들의 코드는 참가자들이 더 많은 해독을 할 수 있도록 마감일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공개됐다. 프리드먼은 “우리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라며 당시 절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 달리 대회 마지막 주에 18개나 되는 결과물이 접수됐다. 그 결과 패리터, 나데르 그리고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의 로봇공학을 전공한 줄리안 실리거(Julian Schilliger)가 함께 결성한 팀이 수상 기준을 모두 충족한 유일한 팀으로 선정됐다.

이탈리아 나폴리 페데리코 2세 대학의 파피루스 학자이자 대회 심사위원인 페데리카 니콜라르디(Federica Nicolardi)는 “놀라운 결과”라며, “우리는 그들이 보여준 이미지에 완전히 놀랐다”고 밝혔다.

에피쿠로스 철학과 그 너머, “발굴되지 않은 두루마리 더 있어”

이전에 공개된 헤르쿨레니움 두루마리의 내용은 대부분 에피쿠로스 철학 학파와 관련된 것으로, 기원전 341~270년에 살았던 아테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추종자인 필로데무스라는 인물의 소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루마리에는 음식의 즐거운 ‘맛’과 ‘볼거리’뿐만 아니라 고대 작가 세네카와 플루타르코스가 언급한 제노판투스라는 이름의 플루트 연주자가 등장한다. 그의 매력적인 연주로 인해 알렉산더 대왕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에피쿠로스에게서 철학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데 있었다. 따라서 우승팀이 해독한 텍스트에는 저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파울러와 니콜라르디는 텍스트의 내용이 쾌락 중심으로 서술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필로데무스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파피루스 학자이자 대회 심사위원인 리처드 얀코(Richard Janko)는 행복과 평온한 삶에 대해 설파한 에피쿠로스 철학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과 같은 더 많은 그리스 철학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했다. 이를 증명하듯 라틴어로 쓰인 두루마리 중 일부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으며, 호메로스에서 사포에 이르는 작가들의 시와 문학 작품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로 인해 아직 전체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된 적이 없는 헤르쿨레니움 별장에서 추가 조사를 실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얀코와 파울러는 빌라의 메인 도서관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수천 개의 두루마리가 아직 지하에 더 있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더 넓게 보면 실즈와 베수비오 챌린지 참가자들이 개척한 기술로 이집트의 미라를 포장하는 데 자주 사용했던 재활용된 파피루스와 같은 다른 유형의 텍스트를 연구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한편 프리드먼은 올해 연말까지 두루마리의 85%를 해독하는 것을 목표로 2024 베수비오 챌린지 상금을 새롭게 발표했다. 그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적처럼 느껴진다”며 “성공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영어 원문 기사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