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턱 넘은 ‘벤처대출’ 제도화, 스타트업에 독일까 약일까
산자위, 투자조건부 융자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 21일 가결 투자 혹한기로 어려움 겪는 스타트업들에 자금조달 용이해질 것으로 보여 한편, 해외 VC들 투자금은 벤처대출 대상에서 제외
벤처대출(투자조건부 융자)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벤처투자촉진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번 제도화를 통해 투자 혹한기로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들의 자금조달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왔으나,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그룹 파산 여파가 국내 시장까지 번지면서 부정적인 의견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우려 속 문턱 넘은 벤처대출 제도화
벤처대출은 은행 등 대출 기관이 자금조달이 어려운 벤처기업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후속 투자 유치 시 대출금과 지분인수권 일부를 확보할 수 있는 융자상품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식 투자조건부 융자상품으로도 불리며 최근 파산한 SVB그룹의 주요 사업모델이기도 하다. 국내에선 중기부가 2022년부터 도입을 추진해왔고, 지난해 말 기업은행이 1,000억원 규모로 시범사업을 개시하면서 국내 벤처 시장의 새로운 자금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후 국회에 투자조건부 융자 등 벤처대출을 비롯한 다양한 벤처투자기법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벤처투자촉진법 개정안이 제출되었고, 결국 지난 21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가 중소벤처기업소위원회를 열고 개정안을 가결했다. 사실 해당 개정안은 지난 2년간 여러 차례 국회 상임위 소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지만, 상품의 복잡한 구조 탓에 벤처업계가 아닌 금융권이 투자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부작용 등의 이유로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특히 이번 SVB그룹 파산 사태 여파로 벤처대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며 개정안 가결이 또 한 번 무산될 뻔했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은 “스타트업이 후속투자를 받아야 대출금 상환과 약속한 지분 등을 받는 회수가 가능한데, 지금과 같은 투자 혹한기에는 이런 구조가 어려울 수 있다”며 벤처대출의 취약점을 주장했다.
이에 중기부는 SVB 파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벤처대출을 주요 골자로 하는 사업모델이 아닌, 보유 채권의 가격 폭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외 신용평가사들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SVB의 대출 포트폴리오 가운데 벤처·스타트업에 대출은 23.5%로, VC나 PE 등 투자회사 대출(55.6%)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VC 등 투자자들 심란해질 듯
투자사들은 벤처대출 제도화를 반길 리 없다. 스타트업들이 VC로부터 받은 투자금으로 기존 대출을 상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지원받은 투자금을 오로지 회사 운영 자금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투자금을 기반으로 자산을 형성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 기업 규모를 키워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외에도 자산을 불리고 기업의 성장을 지속하는 것 또한 기업 경영의 본질이다. 하지만 제도화가 시행되면 대출 상환에 들어가는 비용이 발생해 자산을 키우지 못하고, 그것이 다시 성장 동력의 부재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다.
해외에선 이러한 악순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알린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는 2021년 투자 유치 당시 한화 10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최근 40%가량 몸값을 낮춰 투자 유치를 진행하게 됐다. 그 이유는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조달한 자금 중 일부가 회사의 세금 납부에 사용될 것으로 알려지며 투자자들이 등을 돌린 데에 있다. 스트라이프가 세금 납부에 사용해야 하는 자금은 자그마치 35억 달러(약 4조6,455억원)에 달하며, 그중 6억 달러(약 7,900억원)는 장기 근속한 직원들의 주식 관련 세금에 사용될 예정이다.
개정안 일부 조항 두고 엇갈리는 의견들
산자위 관계자는 “여야 모두 제도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별다른 법안은 이견 없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특히 스타트업이 기업 규모를 늘리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조달 관련 애로사항을 줄이기 위해 벤처대출과 같은 또 다른 금융기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여야 모두가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의 일부 조항이 문제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 VC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국내 투자사들로부터 벤처대출을 받은 경우만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내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해외 VC들이 제외된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렇게 될 경우 이번 제도화가 국내 VC들의 지원 형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라고 비판했다.
이날 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의결을 거친 뒤,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등 절차를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여야 모두 제도화 시행에 반대하지 않았던 만큼, 업계에선 개정안이 향후 국회 의결 절차에서도 큰 이견 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고 다가올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