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진 정부에 죽어가는 ‘혁신’, “이러면서 4차 산업은 무슨”
‘로톡’ 운영사 로앤 컴퍼니, 신사옥 매물 내놓고 희망퇴직 접수 시작 국내 미래가치산업 발목 잡힌 사이, 글로벌 투자 규모 대폭 증가 전문직 이익단체 갑질에 혁신 무너져, 제2의 타다 사태로 이어질 수도
최근 법률·의료·세무 등 전문영역 플랫폼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이들 플랫폼은 일반인에게 익숙지 않은 전문영역 서비스에 대한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시민들에게 각광받는 모양새다. 그러나 각 분야 전문직 이익단체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며 플랫폼들은 하나둘 ‘타다 악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국회 무관심 속 죽어가는 스타트업
법률플랫폼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지난 3월 서울 강남역 인근 신사옥을 매물로 내놓고 직원 50% 감축을 목표로 희망퇴직을 접수했다. 당초 로톡은 170만 명가량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법무부가 합법 서비스로 인정할 정도로 성공한 전문 플랫폼으로서 자리 잡고 있었으나,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등 변호사 단체와의 갈등이 발목을 잡았다. 대한변협 등이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들에게 징계를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실제 징계 조치를 취하면서 회원 변호사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대한변협과 로톡 사이의 갈등은 역사가 깊다. 지난 2015년 대한변협은 로톡이 변호사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법률 브로커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검찰에 고발장을 세 번이나 접수했다. 또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엔 모두 무혐의 처분으로 끝나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변협 자체에서 직접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로 로톡은 타격을 면치 못하게 됐다.
‘로톡 사태’가 심화되자 정부여당도 대응에 나섰다. 지난 1월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산하 규제개혁추진단은 ‘리걸테크 스타트업 규제혁신 현안 간담회’를 갖고 법률 플랫폼 등 신성장 산업 관련 규제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변화하는 과학 문명에 맞춰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는 기조 아래 국내 법률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성으로 로톡 사태를 해결하겠단 취지였다. 그러나 실상 정부여당이 로톡 등 스타트업을 위해 해준 것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로앤컴퍼니는 너덜너덜한 이름만 손에 쥐고 있을 뿐 이제 두 발로 설 수조차 없게 됐다.
정부와 국회의 헛발질은 이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지난해 9월 벤처기업협회는 ‘벤처·스타트업 규제혁신 간담회’를 열고 새로운 영역에서 규제와의 전쟁을 이어 나가고 있는 벤처·스타트업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여당은 “신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장벽을 풀어주는 동시에 기존 산업과의 갈등 조정에도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해결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각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現 대표나 김건희 여사에 대한 사법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로톡 등 작은 스타트업에 대한 사안은 뒷전으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뒷짐 진 정부, “4차 산업 제 손으로 버리는 꼴”
이익단체와 뒷짐 진 정부에 의해 소외되어 가는 스타트업은 비단 로톡만이 아니다. 닥터나우·굿닥 등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제공 중인 30여 개 플랫폼 스타트업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가 다음 달 중단될 운명을 앞두고 있으나 지지부진한 제도화 논의에 발목을 잡혔다. 정부는 강남언니(힐링페이퍼) 등 의료정보 플랫폼 이슈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 성형과 같은 비급여 진료는 비용 광고가 가능하나 의료단체들은 이를 막고 있고, 정부도 이렇다 할 중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세무단체들이 반대하는 종합소득세 신고·환급 플랫폼 ‘삼쩜삼(자비스앤빌런즈)’과 관련해선 기획재정부가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처럼 국내 미래가치산업이 고소·고발 및 무관심에 발목 잡혀 있는 사이, 전 세계의 미래가치산업 투자 규모는 대폭 증가했다. 특히 ‘로톡’과 같은 리걸테크 산업의 전 세계 투자 규모는 총 113억 달러(한화 약 15조원)까지 성장했다. 리걸테크 분야에서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이 7개사, 예비유니콘 기업이 27개사로 확대되기도 했다. 이에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는 답답함을 토로한다.
정 부대표는 “미국변호사협회(ABA)는 매년 리걸테크 쇼를 한다. 올해 결선에 오른 업체 중 절반이 AI 기반의 리걸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였다”며 “미국은 전향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한국은 법률서비스 시장 규모가 7조~10조원인 반면 미국은 작년 기준 한화 약 412조원에 달한다”며 ‘미국에만 2,000여 개의 리걸테크 기업이 몰려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직 이익단체의 논리에 국내 혁신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뭘 하고 있는지, 정 부대표는 궁금하다고 말한다. 최근 정부는 AI 등 4차 산업 혁명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4차 산업 성장을 국정과제에 담는가 하면 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할 만한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교육부 차원의 국정과제를 새로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용하는 이가 없는데 어떻게 혁신이 있을 수 있겠는가? 죽어가는 리걸테크 기업들을 모른 체하며 손 놓고 있는 사이 4차 산업 혁명은 점차 우리나라를 비켜 나가고 있음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로톡 사태의 원인은 변협의 ‘의무 가입’
한편 로톡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변협의 ‘의무 가입’ 방식에 있다. 변호사는 변협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변협이 처벌로써 변호사들의 밥줄을 끊어버리면 변협이 독단적으로 로톡 등 스타트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다른 업계에선 이 같은 일이 드물다. 협회에 임의적으로 가입했다가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올 것 같을 때 나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숙박업계와 숙박앱 간의 갈등이다. 최근 숙박업계는 숙박앱이 갑질을 하고 있다며 정부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으며, 막대한 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숙박인들이 단합한 ‘숙박 협회’를 설립했다. 그러나 숙박 협회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숙박업주들이 협회와 관계 없이 숙박앱들과 거래를 이어가며 숙박앱들이 오히려 더 큰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동시에 숙박앱을 탈퇴하자는 결의가 숙박인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했으나, 비회원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숙박앱이 활용되는 바람에 이 같은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변협처럼 의무 가입이 아닌 임의 가입이기 때문에 협회의 말을 구태여 듣지 않아도 강제성이 없는 것이다. 반면 변협의 경우 변협에 가입하지 않은 변호사는 사무실 개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결국 특정기관이 인·허가를 내줘야 하는 시장은 무조건 막힐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각에선 그런 권한을 부여한 정부가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가를 감시하지 않은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또 혹자는 “만일 이 사태가 미국에서 발생했더라면 정부가 스타트업 투자자들에게 배상을 해줘야 할지도 모르는 법정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운명의 공은 다시금 정치권으로 넘어간 상황, 스타트업은 발만 동동 굴러야 할 처지다. 이번 문제는 스타트업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다. 이번 사태가 ‘제2의 타다 사태’로 이어질 경우 우리나라는 다시금 4차 산업 시대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질 것이다. 정부는 플랫폼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