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무덤’된 韓, 글로벌 혁신특구로 형세 역전 가능할까
중기부, ‘글로벌 규제 특구’로 지나친 규제 풀어헤친다 2021년 100대 유니콘 기업에 韓 기업 하나도 없어 지금은 경제 비상 상황, 새로운 성장 동력 찾아야 할 타이밍
지난달 3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오는 2024년부터 2027년까지 특정 산업에 대한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는 ‘글로벌 혁신특구’를 올해 2곳 선정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혁신특구는 기존 규제자유특구를 고도화해 특정 산업에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는 지역단위 규제샌드박스 제도다. 정부는 해외실증, 안전성 입증 즉시 제도화 등 지원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글로벌 혁신특구, 1~6차 규제자유특구보다 경쟁률 높을 듯
우선 중기부는 올해 10월까지 서울, 경기, 인천을 제외한 비수도권 광역지방자치단체 2곳에 글로벌 혁신특구 지정을 완료하고 2027년까지 권역별로 10개의 특구를 추가 조성할 방침이다. 사업 기간은 2024년부터 2027년까지 총 4년이며, 2029년까지 2년 연장도 가능토록 했다. 특구는 오는 9월부터 지자체의 사업계획서를 접수받아 △경제적 파급효과 기대 △역량 있는 다수의 중소벤처기업 존재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첨단 분야 여부를 심사해 결정될 예정이다.
글로벌 혁신특구에선 국내 최초로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가 적용된다. 명시적으로 열거된 제한 또는 금지사항을 제외한 신기술을 활용한 모든 실증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신제품의 기준, 규격, 요건 등이 없거나 현행 법령의 적용이 부적합해도 실증이 허용된다. 다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안전성과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규제 수준은 선진국 중심의 해외 기준이 우선 적용된다.
정부는 특구 지정을 통해 국경과 공간을 초월하는 실증 환경을 구축하겠다고도 밝혔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품질을 꼼꼼히 검증하는 객관적이고 충분한 실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기부는 외국에서 활발한 기술개발이 이뤄짐에도 국내에선 실증조차 허용되지 않는 첨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실증 거점을 조성해 제품 개발 및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미국의 글로벌 인증기관인 UL Solutions와 협력해 첨단 분야 스타트업의 미국 실증 및 기술혁신을 지원한다. 이외에도 △가상물리시스템(CPS) 기반의 무제한 테스트 도입 △가상현실 기반 정밀 실증체계 도입 △보안성·연결성·사용성 중심의 실증 기준 마련 등도 함께 추진한다.
이와 비슷한 규제자유특구는 지난 2019년부터 지정해 왔다. 1차 규제자유특구는 강원·대구·전남·충북·경북·부산·세종 등이었으며, 2차는 광주·대전·울산·전북·전남·경남·제주 등이었다. 이후 3차 규제자유특구는 부산·대구·울산·강원·충남·전북·경북 등으로 지정됐으며, 이번 글로벌 혁신특구 바로 이전엔 부산이 6차 규제자유특구로 규정된 바 있다. 각 차수별 규제자유특구마다 규제 특례가 허용되는 산업이 지정됐는데, 1차 강원 디지털헬스케어, 2차 울산 수소그린모빌리티 등이 그 대표적 예시다. 글로벌 혁신특구 지정의 경우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가 적용되는 만큼 지역별 경쟁률이 앞선 1~6차 규제자유특구 지정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나친 규제는 기업 성장 막는 ‘장애물’
최근 업계 사이에선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가 미래 산업 분야의 유니콘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내에 모기업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해외에서 창업하는 ‘본 글로벌(Born Global)’과 국내에서 창업한 회사가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는 ‘플립(Flip)’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256개사를 대상으로 ‘지속 성장과 애로 해소를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기업의 25.4%가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답했다. 국내 규제로 기업 경영과 신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느냐는 질문에서도 ‘그렇다’는 답변이 44.1%에 달했다.
스타트업은 사업의 빠른 성장이 키 포인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규제 심의가 느리게 진행되다 보니 비즈니스 모델의 자유도가 매우 뒤떨어지는 형국이다. 특히 그간 우리나라는 사업이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하더라도 가이드라인 내에서만 사업을 진행하라고 강제해 왔다. 사업의 확장성이 그만큼 저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에선 신규 투자 유치가 어려워져 사실상 정부가 ‘물귀신’마냥 기업들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21년 기준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에 우리나라 기업은 단 한 곳도 오르지 못했다. 또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2년 국가별 유니콘기업 보유 순위에서 대한민국 유니콘 수는 11개로, 개발도상국인 브라질보다도 적었다. 우리나라가 ‘스타트업의 무덤’이 된 셈이다. 정부가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 카드를 꺼내든 건 이 때문이다. 네거티브 규제를 전면 도입함으로써 낡은 규제를 타파하고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해외 이민 현상을 바로잡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가 무조건 좋은 건 아냐
다만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 전환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애초 네거티브 규제가 모든 영역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 데다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피규제자 입장에서 항상 이익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법적으로 허용되던 것에 어떤 과학기술의 발전 등 특정 이유로 규제의 필요성이 발생할 경우 사후 규제를 해야 하는데, 이는 곧 규제 전 투자 자본을 보전하기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허용한다기에 투자했더니 갑자기 다시 규제를 걸어버리면 투자자 입장에선 돈만 날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출구전략을 따로 마련해 둬야 한다는 점도 주 지적 대상이다. 현재 중기부는 최소 4년 최대 6년까지 글로벌 혁신특구를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즉 4~6년이 지난 후엔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가 백지장으로 돌아간단 의미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강력한 규제 아래 들어가게 될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투자자들이 얼마나 될까. 마땅한 출구전략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시적 전면 네거티브 규제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이왕 하기로 했다면 과감하게
글로벌 혁신특구 지정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선 정부는 정확히 어느 분야에 대해 시범 사업을 허용할지 그 대상을 정해놓지 않았다. 대상이 정해지지 않으니 거기에 적용할 적당한 네거티브 기준 목록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으로선 이를 준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혁신특구에 들어갈 대상을 정부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해외 시장에서 성과 낼 수 있는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혔으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신기술이 등장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정부는 여전히 개발연대 시절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혁신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한계가 뚜렷하다.
혁신특구를 2027년까지 연차적으로 지정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시범특구 2~3곳은 연내에 지정한다고 하더라도 나머지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저히 모를 일이다. 모든 산업이 혁신을 위해 몸을 펄떡이고 있는 상황에서 몇몇 분야만 특구로 지정한다면 다른 분야는 2027년까지 손을 놓고만 있겠다는 의미밖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우물쭈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다 시간만 날리다 보면 정부는 또다시 실패의 쓴맛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비상 상황에 놓여 있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날로 떨어져만 가고, 무역수지는 수개월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도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조속히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 타이밍이다. 규제 혁신은 정부 차원에서도 기업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가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도입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좀 더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