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미로’ 아래 ‘규제 유예’ 외치는 정부, “‘유예’로는 한계점 명확해”

규제의 벽에 가로막힌 스타트업, “혁신이 없다” “과도한 규제, 산업 발전 저해할 우려 있어” 규제 개선하겠다는 정부, “‘유예’는 한계 짙을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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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혁신을 꿈꾸는 스타트업이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의 벽에 가로막혔다. 시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스타트업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과한 규제로 인해 혁신의 기회가 위축되면서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앓는 소리는 커져만 간다.

중기부, 스타트업 규제 모의재판 진행

중소벤처기업부가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현행법이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 사례에 대한 모의재판을 진행했다. 모의재판에서 자율주행로봇 스타트업 뉴빌리티는 인공지능(AI)의 학습을 위해 이동형 로봇 카메라로 행인의 표정을 촬영하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으로 가정했다. 이외 전기차 폐배터리 재사용 스타트업 에임스는 공급망 차질로 폐배터리를 30일 넘게 보관하다가 폐기물관리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으로, 수소선박 개발 스타트업 빈센은 수소연료에 대한 기준이 없는데 수소선박을 만들어 운행해 선박안전법을 위반해 기소된 것으로 각각 설정했다.

해당 시나리오는 모두 가상이지만, 기업들이 실제 진행하는 사업들로 인해 언제든 기소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들이다. 이와 관련해 이상민 뉴빌리티 대표는 얼굴을 민감정보로 해석해 AI 학습을 금지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규제의 완화를 요청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미국, 중국 등의 자율주행차 기업이나 배달로봇 기업은 이미 행인의 얼굴과 표정을 AI로 학습해 행인의 의도를 학습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은 촬영 및 정보 수집을 금하고 있어, 뉴빌리티는 현재 수집된 사람 얼굴을 일일이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뉴빌리티 변호인 측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배달로봇이 촬영한 얼굴 정보는 개인정보라고 볼 수 없다”며 “얼굴 정보의 AI 학습 금지는 관련 기업의 혁신을 저해할 뿐 아니라 국민 안전도 위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성훈 에임스 대표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폐기물로 규정하는 규제를 개선해 달라고 했다. 전기차 폐배터리를 쓰레기, 동물사체 등과 같은 범주의 폐기물로 분류해 최장 30일까지만 보관하도록 한 폐기물관리법이 사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설명이다. 최 대표는 “폐기물관리법의 규제는 사회적 비용 발생과 환경오염 방지 취지”라며 “회사 내에 배터리를 보관하는 것은 비용 발생과 무관하고 환경에도 아무 영향이 없다”고 역설했다. 에임스 변호인 측으로 나선 김후곤 로백스 대표변호사도 “개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폐배터리를 폐기물관리법에서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며 “순환자원 또는 사용 가능한 중고 제품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칠환 빈센 대표는 소형 수소연료전지 추진 선박에 대한 건조검사 기준이 불명확하다며 규제 정비를 촉구했다. 올해 4월 ‘선박수소연료전지 잠정기준’이 마련됐는데, 이는 세부적으로 ‘기준을 적절히 경감해 적용 가능’ 등 합격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아 문제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경기동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선박 수소연료전지 잠정기준은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져 있고, 현실적으로 도저히 갖출 수 없는 요건들을 규정하고 있다”며 “잠정기준에 따라서 소형 수소연료전지 추진 선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혁파 목소리 높았지만

규제 혁파에 대한 목소리는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5월 “AI,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이 결합된 모빌리티는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산업”이라며 “특히 급격하게 빠른 발전 속도로 인해 법만으로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유연한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정보위 차원에서 모빌리티 분야의 개인정보보호 방향성을 시사한 셈이다.

당시 고 위원장은 모빌리티 분야 산업계의 건의 사항을 반영해 드론, 로봇, 자율주행자동차 등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영상 촬영에 대한 근거 규정을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에 추가하겠다고도 밝혔다. 당초 모빌리티 분야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갖추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고 위원장은 “국민의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처리하는 1,500여 개 공공 시스템에 대한 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등 공공부문 개인정보 관리 체계를 정비하고, 아동 청소년 관련 개인정보 보호 기본 계획을 시행하는 등 데이터 기반 기술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에 모빌리티 산업계는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혁신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 장애물이 사라지면 모빌리티 분야의 혁신적 발전이 강화될 수 있으리란 게 업계의 전망이었다. 다만 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빠른 데이터 처리를 위해 원본 데이터를 사용하는 방안과 데이터가 중요해졌는데, 이와 관련한 법안이 명확지 않은 상황”이라며 토로했다. 그러면서 “모빌리티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차원에서 규제 혁파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실질적인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말뿐인 혁신’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규제샌드박스 도입하겠단 정부, 그러나 해제 아닌 유예?

이런 가운데 정부는 올 하반기 모빌리티에 특화한 규제샌드박스 도입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첫 도입된 규제샌드박스는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지역 내에서 기존의 규제를 면제·유예해 주는 특례제도다. 현행법상 기준·규격·요건 등이 미비하거나 적용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에도 실증 사업이 가능하다. 부처·분야별 △산업융합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규제자유특구 △스마트시티 등 6개 규제샌드박스가 가동 중이다. 이와 연계해 ‘모빌리티 특화도시’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 스마트시티는 특정 지역, 도시 내에서 연계한 모빌리티에 한정됐다면 앞으로는 민간 사업자가 사업 형태에 맞춰 모빌리티 특화형·특화도시 등 적합한 유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샌드박스 제도는 기업들이 실증 특례 중 축적한 데이터를 토대로 규제를 개선하겠단 취지다. 그러나 규제를 완전히 ‘해제’하는 것이 아닌 ‘유예’를 둔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의 ‘기술혁신 규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4.1%는 기술·제품 개발, 제품 생산, 판매·마케팅 등 기술 혁신 3단계 과정에서 규제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단순 규제 ‘유예’가 제대로 된 효용성을 낼 수 있을지 여부에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