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달랐다, ‘고무고무 실사화’ 전 세계 강타
5억2,000만 부 이상 판매된 ‘원피스’ 실사화도 성공적, 넷플릭스 신기록 갱신 만화 강국 일본의 IP 파워
일본 최다 판매량을 자랑하는 만화·애니메이션 시리즈 『원피스』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실사화돼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번 실사판은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수많은 국가에서 스트리밍 차트 1위를 차지했다.
84개국 차트 1위를 차지한 원피스
『원피스』는 단순히 ‘인기 있는 만화’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에 가깝다. 이 시리즈는 1997년 7월 주간 소년 점프에 처음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 판매 1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5억2,000만 부 이상 판매됐을 만큼 굳건한 팬층을 자랑한다.
이번 실사화는 원작자인 오다 에이치로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는 등 제작 환경도 인상적이다. 실사판 <원피스>는 8부작 시리즈에 1억4,400만 달러(약 1,905억원)가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회당 1,800만 달러, 한화로 약 238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지난달 31일 넷플릭스에서 첫선을 보인 실사판 <원피스>는 오랜 팬과 새로운 팬 모두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OTT 통계 업체 플릭스패트롤의 데이터에 따르면 <원피스>는 미국, 일본, 영국, 인도, 태국, 브라질, 나이지리아, 터키, 스페인 등 전 세계 84개국에서 단숨에 1위 콘텐츠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국가별 흥행도 기준 역대 1위인 <웬즈데이>(83개국 1위)를 넘어서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한 미디어 전문가는 “그간 일본에서 실사화했던 작품들이 하나같이 흥행에 실패했던 원인이 IP의 품질이 아니라 일본 특유의 과장된 연기법 때문이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실사판 원피스는 만화 강국 일본의 IP 파워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라며 “그간 게임 등에 치우쳤던 만화 IP가 실사화까지 영역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IP 강국을 낳은 스토리 산업
일본 애니메이션과 캐릭터는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에서 스토리 산업은 고립된 분야가 아니라 다른 콘텐츠 관련 분야의 성장을 촉진하는 인프라 산업으로서 기능한다. 이렇다 보니 일본 정부는 기업이 문화 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콘텐츠 제공업체가 독립적으로 시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이는 자연히 전체 콘텐츠 산업의 성장과 경쟁력 있는 지식재산권(IP) 창출을 뒷받침하게 됐다.
스토리 산업을 문화 콘텐츠 부문의 인프라 기둥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토리 산업은 다양한 스토리 IP의 원천이 되고 이는 게임, 영화, 소설, 만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활용된다. 스토리 산업은 궁극적으로 글로벌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서 일본의 위상을 드높이는 원동력이 된다.
그 결과 일본의 미디어 산업 중 상당수가 기존 인기에 힘입어 탄생한 유명 IP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글로벌 만화 허브로서의 영향력 덕분에 유명 캐릭터가 풍부해졌고, 이는 일본의 미디어 및 게임 산업이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이어 “대표적으로 『포켓몬』, 『드래곤볼』, 그리고 『원피스』는 차라리 상식에 가깝다”며 “한국에는 이에 비견될 IP가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민,관 모두 무르익은 IP 산업
일본 IP 중에서도 『포켓몬』은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증강현실(AR) 게임을 대표하는 ‘포켓몬 고’는 지난해에만 무려 약 5억7,000만 달러(약 7,700억원)의 해외 매출을 기록했으며, 이는 전체 일본 IP 모바일 게임 해외 매출의 23%를 차지한다.
인기 만화 『드래곤볼』을 소재로 한 모바일 게임도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드래곤볼』 IP를 활용한 각종 게임은 지난해 51억4,000만 달러(약 6조6,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 중 50%가 해외 매출이다. 이렇듯 글로벌 시장에서 꾸준히 높은 매출을 달성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 IP는 일본 스토리 산업의 해외 진출에 있어 중요한 전략적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이 이같은 IP 역량을 자랑하는 배경에는 자국 콘텐츠의 전반적인 매력도 및 브랜드 경쟁력을 제고하고 해외 시장 확대 기회를 도모하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있다. 이른바 ‘쿨재팬 전략’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전후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과 디지털 전환 지원을 제공하는 정책이 제힘을 발휘한 것이다. 부처 단위로는 경제산업성이 콘텐츠 산업 진흥 정책을, 총무성이 방송 콘텐츠 유통 기반 환경 조성 및 진흥 정책을 맡고 있으며, 문화청과 관광청을 산하에 두고 있는 문부과학성은 문화 콘텐츠 분야의 산업 진흥과 해외 전파와 관련된 업무를 직접 담당 중이다.
민간 산업 자체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 일본은 미디어 믹스 및 크로스 미디어 전략이 업계 전반에 뿌리내려 있다. IP 응용 역량이 높은 건 제작위원회 기반의 작업 방식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덕분이다. 다중 수익모델을 지닌 콘텐츠 제작을 위한 제작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원천 콘텐츠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콘텐츠 개발 단계에서부터 2차적 활용 단계를 염두에 둘 수 있으니 활용 역량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 미디어 전문가는 “일본은 이미 IP 제작 역량뿐만 아니라 활용 역량 자체가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며 “한국도 이제 IP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민간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역량을 집중해 사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