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9년래 최저가 찍은 월트디즈니, 거인의 몰락 시작됐나

ESPN 채널 둘러싸고 케이블 사업자와 갈등 빚은 디즈니 다만 테마파크 사업은 여전히 효자 스트리밍 중심으로 전환하려 하지만 수익성이 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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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아이거 디즈니 CEO/사진=DIS 홈페이지

몇 해 전부터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으로 위기를 겪던 월트디즈니는 지난해 11월 구원 투수로 다시 불려 온 밥 아이거 최고경영자(CEO)의 복귀 이후에도 주가가 17% 이상 하락했다. 격화하는 OTT 경쟁 속에 올해 3분기 디즈니+의 가입자가 감소하는 등 디즈니 주가는 여전히 하락세다. 지난 한 해 동안 주가가 30% 하락한 데다 지난 10년간 총수익률은 46%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가 무려 220%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디즈니의 전략과 미래 전망에 대한 회의론이 월가에 팽배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디즈니 제국의 쇠퇴기 시작했나

디즈니 주가는 올해 들어 2014년 이후 9년 만에 최저가로 추락했다. 2021년 3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197.16달러)보다 58.6% 떨어진 수준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여러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디즈니+ 가입자 수도 올해 2분기 1억4,610만 명으로 전 분기보다 7.4% 감소했다. 지난달 9일 발표한 2분기 실적도 4억6,000만 달러(약 6,116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실망감을 더했다. 매출은 223억3,000만 달러(약 29조6,945억원)로 시장 추정치인 225억 달러를 밑돌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6억 달러(약 4조7,873억원)로 전년 동기와 비슷했다.

디즈니의 효자 사업으로 꼽히는 디즈니랜드 등 테마파크 사업은 2분기 영업이익이 20% 증가했지만, 미디어와 콘텐츠 사업에서 영업이익이 46% 급감했다는 점도 충격으로 작용했다. 다만 OTT 사업 손실은 5억1,200만 달러(약 6,809억원)로 전년 동기의 10억6,000만 달러(약 1조4,096억원) 대비 크게 개선됐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한편 디즈니+는 올해 초부터 7,000명 감원을 목표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비용을 줄이고 있다. 다음 달 12일(현지 시간)부터는 광고 없는 요금제를 월 10.99달러에서 13.99달러(약 1만8,700원)로 인상할 계획이다.

사진=각 사 로고

ESPN 딜레마

디즈니가 직면한 난관의 핵심은 미국 최고의 스포츠 TV 네트워크인 ESPN의 소유권이다. 전성기 시절, 독점 스포츠 판권과 열성적인 팬층을 보유한 ESPN은 막강한 가격 책정력을 자랑했다. 미국 내 1억 가구 이상의 시청자를 보유한 ESPN은 디즈니의 중요한 캐시카우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역학 관계가 바뀌었다. ESPN의 수익은 대부분 TV 번들보다는 광대역 인터넷에서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갑’과 ‘을’의 구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디즈니와 차터 커뮤니케이션의 갈등은 디즈니가 운영하는 ESPN, ABC 등의 채널을 차터에 제공하고 지급받는 요금을 인상하려 한 가운데, 차터 측이 디즈니 채널의 방송 중단으로 대응하면서 고조됐다. 결국 합의로 끝났지만 업계의 역학 관계가 과거와 달라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차터와의 합의를 위해 디즈니는 스펙트럼 비디오 가입자에게 ESPN+ 및 디즈니+의 광고 버전과 곧 출시될 ESPN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해당 조치로 차터와 차터의 가입자를 달래기는 했지만, 디즈니 입장에서는 상당한 양보였다. 디즈니의 사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애플, 아마존, 알파벳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진 이들은 스포츠 콘텐츠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향후 판권 협상에서 디즈니를 제칠 가능성이 크다.

디즈니의 ‘동아줄’은 스트리밍?

여러 외신은 ESPN의 인기가 예전과 같지 않을 수 있지만 디즈니의 미디어 비즈니스가 어렵게나마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ESPN을 포함한 자체 콘텐츠 번들을 더욱 확실히 구축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디즈니+는 이미 북미에서 4,6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픽사, 스타워즈, 마블을 비롯한 디즈니의 기존 브랜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디즈니는 Hulu(가입자 수 4,400만 명)의 과반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ESPN+(가입자 수 2,520만 명)도 소유하고 있다.

다만 수익성 문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디즈니의 초기 전략은 수익성을 희생하는 대신 구독자를 확보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낮은 수익성은 계속해서 발목을 잡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트리밍 서비스 가격을 인상하고 광고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현재 미국 디즈니+는 월 14달러며, 세 가지 서비스를 모두 묶은 번들 패키지의 가격은 월 25달러다.

지난 9개월 동안 디즈니의 소비자 직접 판매 매출은 16% 성장한 160억 달러(약 21조2,768억원)에 그쳤으며, 영업이익은 22억 달러(약 2조9,252억원) 감소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 경영진은 가격을 인상하고 광고 수익을 늘려야 하는데, 그렇다고 구독자들이 구독을 취소할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 디즈니 번들을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다면 ESPN과 미디어 사업의 반등도 기대해 볼만 하다. 그러나 이는 아직 수익성 확보와는 거리가 멀어 디즈니 경영진의 고난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