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웹소설 ‘도서정가제’ 제외, “환영” vs “정책 역행” 갑론을박
정부 민생토론회 개최 "도서·웹콘텐츠, 국민 부담 줄인다" 웹콘텐츠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키로, 창작자 보호 마련도 도서정가제 완화 두고 출판계 반발 “유통 질서 무너질 것”
정부가 웹콘텐츠 활성화를 위해 도서정가제를 개편하기로 결정하면서 전자출판물에 해당하는 웹툰·웹소설이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그간 도서정가제로 인해 ‘기다리면 무료’ 등 프로모션에 대한 일부 제약이 존재했던 만큼, 웹콘텐츠를 위한 별도 제도 마련 요구가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출판계와 웹콘텐츠계에서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 ‘전자출판물 제외’ 법개정 추진
정부는 22일 서울 홍릉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를 개최하고 웹콘텐츠의 도서정가제 제외를 비롯한 개선안을 내놨다. 지난 2003년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도서를 할인 판매토록 하는 제도로, 판매 경쟁력에서 우위에 선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과도한 가격 할인을 막아 중·소규모 서점과 출판사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몇 차례 개정을 거친 현행 도서정가제는 신·구간, 온·오프라인, 서점 규모 등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정가의 최대 15% 이내 가격 할인율이 적용된다. 현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도서정가제 유지 타당성을 3년마다 검토해 폐지, 강화, 완화 또는 유지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 산업의 지형도가 급속도로 변하면서 도시정가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쟁점이 된 부분은 전자출판물에 해당하는 웹툰·웹소설이다. 현행법상 웹툰·웹소설은 일반 도서와 같이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발급받기 때문에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이렇다 보니 산업 구조 등에서 일반 도서와 다른 신생 콘텐츠가 도서정가제 적용 범위에 포함되는 것이 맞는가를 두고 업계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최근 국내 웹툰과 웹소설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빠른 산업 성장을 위해서라도 도서정가제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업계 주장에도 더욱 힘이 실렸다.
이에 정부는 도서정가제의 효과성을 고려해 유지하는 한편, 웹툰·웹소설은 별도의 적용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웹툰·웹소설과 같은 신산업에 걸맞은 규제 혁신으로 소비자들의 혜택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출판계 등의 우려를 감안해 창작자 보호 방안도 함께 마련하는 동시에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국회와 긴밀히 협조해 나갈 예정이다. 다만 정부는 도서정가제가 출판 생태계를 보호하는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만큼 제도의 큰 틀은 유지할 방침이다. 또한 최근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과 더불어 책 수요도 감소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위기에 처한 영세 서점 활성화 및 소비자 혜택 증대를 위한 할인율 유연화 방안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웹콘텐츠계 “다행”, 출판계 “신인 작가에게 불리”
이에 웹툰·웹소설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자출판물이 일반 도서와 산업구조 등의 측면에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음에도 일반 도서와 같이 획일적으로 규제를 받는 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웹툰 업계 관계자는 “소장용이 아닌 킬링타임용으로 제작된 콘텐츠가 종이책 시장보다 전자책 시장에 많으므로, 할인 규제는 독자 유입을 저해하는 요소”라며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되던 시점에 전자책이 도서정가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연재 형식이 주를 이뤘다. 단행본 형태의 전자책 출간을 늘리고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전자책이 도서정가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도 “기나긴 과정을 통해 도서정가제가 웹툰 산업과는 맞지 않는다는 본질이 이해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출판계는 개편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웹콘텐츠의 경우 1화에 100원 정도 하기 때문에 가격 부담으로 생태계가 확대되지 않는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며 “도서정가제를 규제의 측면에서 보는 것인데 과연 이것을 규제의 측면에서 봐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웹 콘텐츠에만 도서정가제 예외 적용을 둘 경우 할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통 질서가 무너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박용수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는 “도서정가제에서 웹콘텐츠를 제외하게 되면 할인 경쟁이 시작돼 소비자는 할인하는 콘텐츠만 보고 신간은 절대 안 보게 되고, 결국 검증 안 된 신인 작가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게 된다”며 “신간 종수는 확 줄고 가격은 더 오를 것이며 다양성은 더 줄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서정가제의 기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웹콘텐츠를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해 할인율을 높이도록 허용하는 건 콘텐츠 플랫폼 홍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국 창작자들은 경쟁을 강요받고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며 “영세 서점에 도서정가제 적용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1인 출판사 등 작은 출판사들에게 타격을 주게 되는 것이므로 창작자를 보호하고 출판의 종 다양성을 지키자는 입장에서 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