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속도 내던 플랫폼법, 한미 무역 합의 위반 소지 지적에 ‘일보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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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DMA와 유사, 3년마다 ‘독점’ 여부 재검토
구글·애플 지정 유력에 美 경제단체 유감 표명
원활한 입법 위해선 규제 정당성 확보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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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업계의 극렬한 반대에도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이하 플랫폼법)’ 제정을 강행하겠단 의지를 내보인 가운데, 적용 대상 기업을 3년마다 검토 및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따라 플랫폼의 영향력도 달라지는 만큼 규제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시장에서는 이르면 내달 초 플랫폼법과 관련한 세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주기적 재검토로 규제 정당성 확보 나선다

31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플랫폼법에 따라 규제 대상이 된 사업자가 대상 요건을 충족하는지 등을 3년마다 재확인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이 특정 시점에 따라 늘거나 줄어들 수 있는 만큼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취지에서다. 나아가 규제 대상 플랫폼이 적극적인 구조적 조치 등을 통해 독점력을 해소할 경우 규제를 완화해 시장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 또한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대형 플랫폼의 불공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추진되는 플랫폼법은 정부가 사전 지정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자사우대 △끼워 팔기 △멀티 호밍(다수의 IP 주소를 사용해 다중 접속을 유지하는 기술) 제한 △최혜 대우 요구 등 4대 반칙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다.

독점 사업자 여부 검토 주기를 최대 3년으로 제시한 배경에는 거대 플랫폼들이 구축한 시장 지배력이 단기간 내 훼손되기 어렵다는 점과 해당 사업자들의 관련 서류 구비 부담에 대한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 회계장부 내 공정자산에 해당하는 내용을 제출하는 수준에 그치는 대기업집단 지정과 달리 플랫폼법 규제 대상 지정 및 해제는 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이용자 규모 등 각종 정량·정성 지표를 구비해야 하는 탓에 사업자의 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플랫폼법 제정 추진에 앞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참고했다는 점도 3년 주기 재지정설에 힘을 보탠다. 올해 3월 시행을 앞둔 EU의 DMA는 ‘게이트키퍼(Gate keeper)라 불리는 독점 사업자가 △월간 이용자 4,500만 명 △연 매출 75억 유로(약 10조8,200억원) △시가총액 750억 유로(약 108조원) 등 일정한 요건에 부합하는지를 최소 3년에 한 번 검토하도록 명시했다.

공정위는 이르면 2월 초 플랫폼법과 관련한 세부 내용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입법에 나설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플랫폼 옥죄기”라는 지적과 함께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실제 입법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현재 지정이 유력한 플랫폼으로는 구글과 애플, 네이버, 카카오 등 4개 기업이 거론되고 있다.

美 상공회의소 “시장 경쟁 저해는 물론, 무역 합의에도 어긋나”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이와 같은 움직임을 업계와 미국 경제단체의 거센 반발에 대응하는 일종의 완화책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29일(현지 시각) 미국 상공회의소가 한국이 플랫폼법을 추진하는 데 대한 깊은 유감을 표하며 해당 법안의 결함을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 상공회의소는 찰스 프리먼 아시아 담당 부회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플랫폼 규제를 서둘러 통과시키려는 듯 보이는 한국에 대해 깊은 우려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프리먼 부회장은 우리 정부의 플랫폼 규제가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것을 비롯해 정부 간 무역 합의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칫 정부 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공정위가 신중한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미 상공회의소는 한국 정부가 법안 전체 조문을 공개하고, 미국 정부 등 이해관계자와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에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경제단체가 국내 플랫폼법 제정에 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자국 빅테크 기업인 구글과 애플이 규제 대상인 지배적 사업자에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위는 관계 부처 간 협의를 마무리하는 대로 정부가 마련한 법안의 내용을 공개하고 미 정부 및 기업 등 외부 의견을 수렴해 입법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미국 상공회의소 측의 성명은 국내 플랫폼법 추진 자체에 반대하려는 취지가 아닌, 입법 추진 과정에 충분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입법 전 국내외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청취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