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 우주항공청 기피하는 인재들, 사천시에는 우주항공 ‘생태계’가 필요하다
"사천시까지 왜 가나" 외면받는 우주항공청, 인력 확보 난항 고임금·이주 비용 지원 등 미끼 내걸어도 '심드렁' 우주항공청, 맨땅에선 날아오를 수 없다? 민간 기업과 협력 필요
오는 5월 27일 개청을 앞둔 우주항공청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부족한 국내 우주항공 인력이 줄줄이 우주항공청 근무를 기피하는 가운데, 해외 인력 유인책 역시 뚜렷하게 확보되지 않아서다. 정부·지자체 차원의 인력 유인책이 사실상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가운데, 업계 일각에서는 사천시 내 민간 기업 유치를 통한 ‘우주항공 생태계’ 조성이 우주항공청 인력 유치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주항공청 근무 꺼리는 국내 인력들
정부는 우주항공청에 연구원 200명·행정 공무원 100명 등 약 300여 명의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최근 △미국 우주항공국(NASA) △유럽 우주항공국(ESA) △프랑스 국립우주센터(CNES) 등을 연달아 방문하며 해외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해외 인재 유치를 통해 근본적인 인력 공백을 메꾸고, 기존 우주항공 R&D 수행 기관인 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에서 국내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우주항공 업계는 국내 R&D 기관을 통한 인재 채용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우주항공 분야 인프라 대부분이 대전·세종 지역에 집중돼 있는 가운데, 이미 인근에 생활 거점을 마련한 인력들이 사천시로 이주하는 것을 꺼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장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항공우주연구원 등에서도 청년층 인재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며 “교육·의료·교통 등 정주 여건이 부족한 사천시로 이동을 자처하는 연구원은 사실상 극소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우주 분야 전문 인력의 수 자체가 적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3 우주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생산직과 사무직을 포함한 국내 우주분야 인력은 1만125명에 불과하다. 이 중 소위 ‘고급 인력’으로 꼽히는 박사 학위 소지자(교수, 박사 후 과정, 박사 과정 포함)는 1,853명(18.3%)명에 그치며, 우주항공청의 핵심 업무인 우주 프로젝트 기획·개념 연구 등을 진행할 과학 연구와 우주 탐사 분야 인력은 각각 768명(7.6%)·204명(2%)뿐이다.
정부·지자체, 인재 유인 위한 ‘미끼’ 제시
정부는 높은 임금 등 인재 확보를 위한 유인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우주항공청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자들은 직급과 관계없이 기존 보수 체계의 150%를 초과하는 연봉을 받을 수 있으며, 직원들 역시 청장이 정한 기준에 따라 ‘공무원보수규정’을 넘는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예산 범위 내). 기술 이전 시 인센티브를 지급받을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파견이나 겸직도 가능하다. 일반 공무원과 달리 주식백지신탁도 예외로 하며, 퇴직 이후 유관 분야 취업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전문인력의 정주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이주비 지원 방안도 검토 단계에 있다. 차후 과기정통부는 우주항공청 임시청사 리모델링 등 사무 환경 조성과 직원 이주비 지원 등에, 지자체는 주거(전월세)·교통 여건 개선 등 정주 여건 개선에 중점을 두고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역할을 분담해 인프라 조성을 위한 단기·중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인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밑그림’이 일부분 공개됐음에도 관련 분야 인력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외곽 지역으로의 이주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기에는 정부의 미끼가 충분치 않았던 셈이다. 일각에서는 대다수의 유인책이 ‘검토 단계’에서 정체돼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보다 확실한 지원 의지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간 기업과 우주항공청의 ‘시너지’
한편 민간 우주항공 업계에서는 경상남도 사천시를 우주항공청이 날아오를 수 있는 땅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천시 내에 민간 우주항공 기업을 유치, 우주항공청과의 ‘시너지 창출’을 본격적으로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항공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사천시 내에 우주산업 생태계가 형성될 경우, 정주 여건 개선에도 한층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사천시 등 관련 지자체는 우주항공 분야 민간기업 유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지난 26일 사천시가 대전·세종 지역에 위치한 우주항공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대전에서 투자유치 설명회를 개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사천시는 차후 대한민국의 우주항공 수도로 발전하기 위해 ‘우주항공 육성 사업’을 본격 추진, 올해 236억원을 투입해 11개 분야의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정부 및 지자체에서 민간 기업에 충분한 혜택을 제공할 경우, 일부 우주항공 기업이 사천시 내 지사 설립·기업 이전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단독으로 글로벌 시장 경쟁에 뛰어들 수 없는 매출 10억원 미만의 중소 스타트업들이 정부 지원을 노리고 거점 이동을 단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단, 대다수 우주항공 인력이 사천시로의 이주를 꺼리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 지원 혜택만으로 우주항공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