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삼성전자, 사상 첫 파업 선언에 ‘노조 리스크’ 우려
사내 최대 노조 전삼노, 6월 7일 연차 파업 선언
지난 3월 쟁의권 확보, 최근 대규모 집회도 개최
전삼노 민주노총 가입 시도에 勞·勞 갈등 조짐도
삼성전자 사내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가 창립 이후 55년 만에 첫 파업을 선언했다. 임금협상 결렬로 노사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쟁의행위에 돌입한 것이다. 최근 SK하이닉스와 TSMC에 밀리며 반도체 초격차 전략이 위기를 맞은 삼성전자가 ‘노조 리스크’라는 또 다른 악재를 만나며 회사 안팎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전삼노 “사측 교섭안 제시하지 않고 노조 무시해”
29일 전삼노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회사가 노조를 무시하면서 임금 교섭에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즉각 파업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측과 교섭을 벌여왔는데, 접점을 찾기는커녕 회사가 교섭안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모든 책임은 사측에 있다”고 강조했다.
전삼노는 우선 징검다리 휴일인 다음 달 7일 조합원들이 단체 연차휴가를 사용해 ‘파업’을 진행하고 이후 상황에 따라 수위를 높일 것인지 검토할 방침이다. 이날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24시간 버스 농성도 시작했다. 앞서 전삼노는 올해 3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이 결렬된 이후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74%의 찬성을 얻어 쟁의권을 확보한 바 있다.
지난해 노사 간 임금 교섭이 결렬되면서 올해 양측은 2023년과 2024년 임금 교섭을 병합해 지난 1월부터 △임금 인상 △임금 제도의 투명성 강화 △노동 조건 개선 등을 안건으로 협상을 이어왔다. 지난 28일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측은 교섭에 관한 안건을 제출하지 않았고 이에 전삼노가 사측 교섭위원의 교체를 요구하면서 공방을 펼친 끝에 결렬됐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교섭에 아무런 의지가 없는 회사를 두고 볼 수 없다”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단순히 임금을 1~2% 인상해 달라거나 성과급을 많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임금 제도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실적 악화, ‘성과급 0원’에 1만 명 노조 가입
전삼노가 집계한 조합원 수는 약 2만8,400명으로 전체 직원 12만4,804명 가운데 22.8%의 비중을 차지한다. 삼성전자 내 최대 노조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부문 실적 악화로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성과급이 ‘0원’이 되면서, 올해 초 1만 명 이상이 새로 가입했다.
앞서 지난달 17일 2,000여 명에 달하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전삼노 주최 집회에 참석했다.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무노조 경영’의 전통을 고수해 왔지만 지난해 대규모 적자로 촉발된 성과급 불만에 더해 경쟁사에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겹치자 노조가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노조 임원들이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벌인 적은 있지만 조합원 수천 명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날이 첫 사례다.
지난 24일에는 두 번째 단체행동에 나섰다. 당시 집회에는 전삼노의 상급단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아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조합원 200여 명이 이례적으로 동참했다. 하지만 위기 경영으로 긴장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연예인 공연이 동반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천만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행사 비용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실적 부진 위기 넘기니 안전사고에 노조 리스크까지
최근 삼성전자에 있어 악재는 노조 리스크 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만 14조8,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 1분기에 1조9,1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5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처졌고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대만의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의 HBM 납품 테스트를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
안전사고도 이어졌다. 지난 24일 기흥사업장 어린이집 신축공사 현장에서 5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3일 후인 27일에는 기흥사업장 생산라인 근무자 2명이 방사선에 피폭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올해 초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신축 현장의 안전관리 책임자들이 형사 입건됐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노조 리스크란 또 다른 악재를 만나면서 회사 안팎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사상 첫 파업 소식이 전해진 이후 삼성전자의 주가는 3.09% 떨어졌다. 여기에 노·노(勞·勞) 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전삼노 사무실에 민주노총 담당자와 소속 변호사가 상주한다는 내용이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알려지자 전삼노 집행부가 상급 단체 변경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삼성 5개 계열사의 노동조합을 아우르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전삼노의 쟁의행위가 직원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상급단체 가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임원들이 주 6일을 근무하는 등 비상 경영 체제를 도입하고 DS부문의 수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감행했다. 전 부회장은 DS부문장을 맡은 지 9일 만인 30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 한마음으로 최고 반도체 기업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다시 힘차게 뛰어보자”며 “최근의 어려움은 지금까지 쌓아온 저력과 함께 고유의 소통과 토론의 문화를 이어간다면 얼마든지 이른 시간에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