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 걷는 삼성전자 주가, 파업·HBM 부진 등 악재 겹쳤다
삼성전자 주가 횡보 거듭, 7만4,000원 벽 깨져
노조 파업, HBM 부진 등 대내외 악재 겹친 결과
삼성 일가의 대규모 지분 매각도 주가에 악영향
외국인 투자자들이 줄줄이 삼성전자 ‘손절매’에 나서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의 창사 이래 최초 파업 및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부진 등 악재가 누적되며 주가가 미끄러진 결과다. 올해 들어 이어진 삼성 일가의 대규모 지분 매각 움직임 역시 주가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끄러지는 삼성전자 주가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삼성전자는 전일 대비 1,700원(2.26%) 하락한 7만3,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 주가가 종가 기준 7만4,000원을 밑돈 것은 지난 3월 19일 이후 72일 만이다. 하락세를 견인한 것은 외국인의 매도세였다. 외국인은 지난 29일부터 전날까지 9,235억원을 팔았다. 기관도 같은 기간 1,232억원을 순매도했다.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는 삼성전자 노조의 유례 없는 파업 선언이 꼽힌다. 전삼노는 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이 교섭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아 즉각 파업에 임한다”고 발표, 파업 움직임을 공식화했다. 노조 측은 조합원들에게 오는 6월 7일 단체 연차 사용을 요청해 본격적인 연가 투쟁에 돌입할 예정이다.
한편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아직은 소극적인 파업으로 볼 수 있지만 단계를 밟을 것”이라며 “총파업까지도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22%(약 2만8,400명 추산)가 몸담고 있는 전삼노가 대대적 파업에 착수할 경우, 삼성전자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전삼노 조합원의 대부분이 주력 사업인 DS(반도체) 부문 종사자라는 점도 큰 악재다.
HBM 시장 영향력 상실
삼성전자의 HBM 부진 역시 주가 하락을 견인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38%에 그쳤다. 이는 1위인 SK하이닉스(53%)의 점유율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HBM 시장의 큰손 ‘엔비디아’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사실상 시장 영향력을 잃었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HBM 샘플 테스트를 계속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10년 전부터 적극적인 HBM 투자를 진행한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부터 엔비디아에 HBM3E 8단 제품을 출하하기 시작했고, 12단 제품 역시 인증 과정을 거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주요 공급사’ 자리를 굳히며 삼성전자의 시장 입지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위기를 감지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수장을 전격 교체하며 경영 쇄신에 나섰다. 지난 21일 삼성전자는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을 DS부문장으로, 경계현 DS부문장을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반도체 부문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인사 조치를 취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회사 측이 강력한 쇄신 의지를 내비친 이후에도 주가는 ‘횡보’를 거듭했다.
“자꾸 물량 쏟아져” 삼성 일가 리스크
삼성 일가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삼성전자 지분을 꾸준히 처분하고 있다는 점 역시 악재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남긴 유산에 부과된 상속세는 자그마치 12조원에 달한다. 이에 삼성 일가 3모녀(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는 꾸준히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며 재원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보통주 2,982만9,183주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처분했다. 당시 이들이 매각한 삼성전자 지분은 홍 관장 0.32%(1,932만4,106주), 이 사장 0.04%(240만1,223주), 이 이사장 0.14%(810만3,854주)다. 해당 거래를 통해 이들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홍 전 관장 1.45%, 이 사장 0.78%, 이 이사장 0.70%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 4월에는 이 사장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약 520만 주를 블록딜로 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는 삼성전자 지분 약 0.09%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주당 매각 가격은 8만3,700~8만4,500원으로, 매각 규모만 자그마치 4,460억원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업계 종사자는 “삼성 일가가 계속해서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며 “대내외적 악재까지 고려하면 (삼성전자) 주가가 유지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