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최대 과징금’ 쿠팡, 美에 “공정위가 업계 관행 제재” 공시
쿠팡, 공정위 결정 두고 이례적 '장외 공방'
美 증권거래위에 ‘한국 공정위 부당함’ 공시
'전국 100% 로켓배송' 계획 철회 등 초강수
쿠팡이 업계 최대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처를 두고 연일 반박 자료를 내놓으며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전 세계 모든 온라인쇼핑몰이 따르는 관행(practice)을 법 위반으로 결론 내렸다’고 공시했다. 겉으로는 쿠팡의 모회사인 쿠팡Inc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어 미국 주주들에게 쿠팡의 입장과 대응 계획을 밝힌 것이지만 속내는 공정위의 판단이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쿠팡 “법정에서 공정위 조처 놓고 치열하게 다툴 것”
16일(현지시각) SEC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 14일 “한국 공정위가 쿠팡의 검색 순위를 기만적인 행위로 정의하고 법을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공시했다. 그러면서 “검색 순위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모든 온라인 쇼핑몰이 따르는 관행”이라며 “법정에서 공정위 조처를 놓고 치열하게 다툴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가 모든 쇼핑몰이 하는 관행에 대해 위법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취지로 읽힌다.
앞서 지난 13일 공정위는 “쿠팡이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임직원을 동원해 자체브랜드(PB) 등 자사 상품을 쇼핑몰 검색 상단에 배치한 행위는 기만적인 고객 유인행위에 해당한다”며 유통업계 최고액인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쿠팡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쿠팡은 공정위의 결정에 불복 방침을 밝히며 행정 소송을 예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17일 쿠팡은 보도자료를 통해 “고물가 시대에 PB 상품은 유통업체 중요한 차별화 전략”이라며 “모든 유통업체는 각자의 PB 상품을 우선으로 추천 진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PB 상품을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골든존에 우선 진열하는 것처럼 온라인 유통업체의 PB 상품 추천도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온오프라인 유통업체의 PB 상품 노출 사진을 공개했다.
쿠팡은 또 “소비자들은 PB 상품이 우선 노출됐다고 무조건 구매하지 않고 같은 쇼핑몰은 물론 다른 온라인몰과 가격비교 사이트까지 검색하는 등 제품 가격을 꼼꼼히 비교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며 “쿠팡 PB 상품 매출 비중이 5%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통업체는 차별화된 상품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디스플레이 전략까지 일률적 기준을 따르라고 강제한다면 기업 간 경쟁은 위축되고 소비자 편익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 “쿠팡은 이중적 지위, 다른 이커머스와 달라”
하지만 공정위는 오프라인 유통업체와 다르지 않다는 쿠팡의 주장에 대해 ‘이중적 지위’를 근거로 제시했다. 쿠팡은 검색 순위 산정 기준을 정하고 상품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인 동시에 자사의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매대 진열과 온라인 검색 순위 노출은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소비자가 매장 전반을 둘러보고 상품을 구매하는 반면, 온라인에서는 검색 순위 20위 내에서 대부분의 상품 판매가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임직원 후기도 소비자의 선호와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일례로 한 PB 상품에 대한 임직원 3명의 구매 후기 평균 별점은 4.3점이었는데, 이후 일반 소비자 10명이 준 평균 별점은 2.8점으로 뚝 떨어졌다. 아울러 이커머스 업계의 관행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이 아마존이 자사 제품을 우선 노출한 행위를 제재한 사례를 들며 해외 경쟁 당국도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상품 노출 관련한 불공정 행위를 제재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쿠팡은 공정위가 이커머스의 불공정 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2021년 공정위는 쿠팡이 LG생활건강 등 101개 납품업체를 상대로 할인 비용을 전가하는 등 ‘갑질’을 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약 33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쿠팡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2월 서울고법은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모두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거래 당사자 사이에 거래 조건에 관해 여러 가지 사항을 요청·교섭·협의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쿠팡 행위가 정상적인 거래 관행을 벗어났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배수의 진’ 쿠팡, 3조원 규모 물류센터 건립도 보류
쿠팡과 공정위 간의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쿠팡은 20일 개최 예정이던 부산 첨단물류센터 기공식을 전격 취소했다. 이어 ‘전 국민 100% 무료배송’을 위한 3조원 물류 투자와 상품 구매를 위한 22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도 중단을 시사했다. 올해 착공 예정이던 이천·김천·제천 물류센터 건립 일정도 무기한 보류하는 분위기다. 앞서 쿠팡은 지난 3월 오는 2027년까지 전 국민이 무료 로켓배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총 3조원 규모의 물류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쿠팡은 “다른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달리 매년 수십조 원을 들여 로켓배송 상품을 직접 구매해 빠르게 배송하고 무료 반품까지 보장해 왔다”며 “로켓배송 상품을 자유롭게 추천하고 판매할 수 없다면 모든 재고를 부담하는 쿠팡으로서는 더 이상 지금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공정위와의 분쟁이 해결돼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신규 물류센터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쿠팡은 공정위의 이번 제재로 자사가 보유한 직매입·PB 상품 우선 노출 관행이 타격을 입으면 그동안 회사 성장을 견인한 로켓배송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우려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쿠팡에서 판매하는 직매입 상품 수는 600만개, PB 상품 수는 1만5,000여 개에 달한다. 지난해 31조원대 매출을 거둔 쿠팡은 전체 매출 중 90%가 직매입이고, 나머지 10%가 오픈마켓 관련 매출로 알려져 있다.
美·유럽서 연이은 소송전, 글로벌 사업 악재 이어져
일각에서는 쿠팡의 강경 대응을 두고 ‘아시아의 아마존’을 표방하며 글로벌 사업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공정위 제재가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크고 작은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쿠팡은 일본 진출 2년 만에 시범 서비스를 종료하고 현지 이커머스 사업에서 철수했다. 온라인 채널의 침투율이 낮은 데다 현지 1위 플랫폼 아마존 재팬이 이미 당일배송, 수령일 지정 서비스 등 배송 관련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주주대표소송이 진행 중이다. 2021년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 lnc는 1년 만에 주가가 10달러 밑으로 주저앉았고 이후 지금까지 20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상장 당일 장중 기록한 최고가 69달러와 비교하면 70% 넘게 하락한 수치다. 이에 한인 투자자와 뉴욕시공무원연금 등 주주들은 “기업공개 신고서에 허위 또는 사실을 오인할 내용을 담았고, 상장 이후 불공정 행위로 인한 주가 폭락 손실을 보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은 소송을 제기한 이유 중 하나로 쿠팡의 알고리즘 조작 혐의에 대한 공정위 조사를 언급했다. 2022년 제기된 해당 소송은 올해 3월부터 미 뉴욕남부연방법원이 유사한 건을 병합해 진행하고 있다.
파페치(Farfetch) 인수와 관련한 소송전도 확대 조짐을 보인다. 지난 12월 쿠팡은 세계 1위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 파페치를 인수했지만, 쿠팡 인수에 불만을 품은 투자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파페치가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주주를 상대로 기업 실적 등을 호도해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파페치가 쿠팡 인수 과정에서 주식 상장을 철회하기로 한 점에 대해서도 주주들의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파페치와 돈독한 유대관계를 보였던 유력 파트너마저 하나둘씩 파페치에서 손을 빼기 시작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케어링, 리치몬트, 니먼 마커스 등 명품 기업들이 계약을 해지하거나 중단하는 등 파페치와 결별 절차를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