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말고 지방에 지어라” 데이터센터 분산 독려하는 정부, 시장은 ‘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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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수도권 데이터센터 신설 규제에 신규 공급 줄어
입지 분산 촉진하려면 관련 규제·혜택 구체화해야
"데이터센터 신설 반대한다" 부정적 주민 여론도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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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공급이 급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력·인프라 등이 집중된 수도권 지역에 데이터센터 건립 수요가 몰리는 가운데, 정부가 전력 부담을 분산하기 위해 수도권 데이터센터 신설에 제동을 건 결과다. 업계에서는 데이터센터 입지 분산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닌 시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 데이터센터 공급 급감

10일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에 준공된 데이터센터 용량은 36㎿(메가와트) 수준에 그쳤다. 이는 작년 하반기(100㎿)의 3분의 1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 신규 허가를 취득한 사업도 경기 시흥시에 위치한 메이플클라우드 데이터센터 1건뿐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신규 인허가를 받은 데이터센터가 7곳에 달한 것에 비해 저조한 수치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수도권 데이터센터 설립 움직임을 옥죄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그동안 데이터센터 구축은 수도권에 집중돼 왔다. 한전경영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총 데이터센터의 약 60%(88개소)가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9년까지 설립 의사를 밝힌 신규 데이터센터(총 732개) 중 82%(601개)가 서울·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 들어설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특정 지역에 밀집할 경우 해당 지역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인프라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데이터센터의 지방 분산을 독려하기 위해 법률 개정에 나섰다. 지난해 3월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개정, 5메가와트(㎿) 이상의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센터가 전력 계통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경우 한국전력공사가 전기 공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 역시 데이터센터 지역 분산을 위한 법률이다. 분산법 시행 이후 10MW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 설립을 원하는 기업은 ‘전력 계통 영향 평가’ 제도에 따라 시설의 경우 일정 평가 항목을 통과해야 한다. 산업부와 한국전력공사는 분산법 시행에 따라 2026년 5월까지 비수도권에서 22.9kV 전력을 공급받는 데이터센터에 전기 설비 부담금 할인 혜택(50%)을 제공하기로 했다.

“무조건 막아서는 안 된다” 실질적 해결책은?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의 수도권 데이터센터 신설 규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도권에 각종 인력과 서비스 등 자원이 집중돼 있는 이상, 데이터센터 신설을 원하는 기업들도 수도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데이터센터와 고객 간의 물리적 거리가 멀수록 전송 지연(latency)과 비용이 증가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짚었다. 데이터센터 입지를 분산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에게 입지 악화로 인한 손실을 상쇄할 만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데이터센터 분산 정책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전경영연구원에 따르면 다수의 주요국은 데이터센터의 특정 지역 집중을 완화하는 방안과 특정 지역으로 유인하는 방안을 함께 적용해 입지 분산을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일부 주와 유럽 국가들은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도입하고, 에너지 소비 효율 및 재생에너지 설치 의무를 규정해 특정 기준을 만족하는 데이터센터에만 건설 허가를 내주고 있다. 일본, 중국은 특정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전기 요금 지원, 통신 인프라 구축, 운영 비용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연구원은 이 같은 사례를 살펴 에너지 소비 효율, 재생에너지 설치, 환경 영향 등에 대한 명확한 입지 기준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규제 및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수도권과 같은 부하 밀집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입지할 경우 고효율 설비 및 재생에너지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비수도권 지역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 에너지 소비 효율과 재생에너지 거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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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반발도 풀어야 할 숙제

지역 주민들의 데이터센터 설립 반대 여론 역시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한 시장 관계자는 “이미 수도권 지역에서는 주민 반대로 인해 데이터센터 건립이 차질을 빚거나, 아예 취소되는 사례도 많이 등장했다”며 “지방에 데이터센터를 신설할 경우 송전탑 등 혐오 시설 설치가 동반될 가능성이 큰데, 주민 반대 역시 거세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설립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지 못하면 정부 입지 분산 정책의 실효성 역시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수도권 곳곳에서는 주민들의 데이터센터 신설 반대로 인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효성그룹은 계열사가 보유한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창고 부지에 지하 2층∼지상 8층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지으려 했지만, 주민 반대로 지난해 9월 사업 철회서를 제출했다. 지난 6월에는 경기 김포시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김포시청 앞에서 미국계 데이터센터 업체인 디지털리얼티(DLR)의 센터 착공을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네이버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데이터센터 설립을 추진하다 주민 반발에 부딪히며 입지를 세종으로 옮기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고양시가 GS건설의 덕이동 데이터센터 사업 착공 허가 신청서를 반려하기도 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이 전자파, 소음, 백연현상 등을 우려하며 강력한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결과다. 해당 지역에는 2,5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 등 거주 시설을 비롯해 초·중학교 등 교육 시설이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