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DS] 美 아시아·태평양계 의료 데이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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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된 'AANHPI' 데이터, 각 커뮤니티의 고유 건강 위험 요소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모범 소수자' 고정관념과 연구 자금 부족이 데이터 세분화의 걸림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커뮤니티별 건강 위험 분석 필요성 대두

[해외DS]는 해외 유수의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 하와이 원주민, 태평양 제도 주민으로 구성된 ‘AANHPI'(Asian American, Native Hawaiian and Pacific Islanders) 커뮤니티는 서로 다른 배경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들이 하나의 범주로 묶여 의료 데이터가 수집되면서, 각 커뮤니티의 고유한 건강 위험 요소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알리시아 주(Alicia L. Zhu)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 보건의료 연구·교육 센터 연구원을 비롯한 연구팀은 AANHPI 커뮤니티 내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과 심장 건강 간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동일한 스트레스 요인이 중국계에서는 당뇨병, 필리핀계에서는 고혈압, 인도계에서는 수면의 질 저하와 더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각 커뮤니티의 특성에 맞춘 세부적인 의료 데이터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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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cientific American

통합 데이터가 가린 AANHPI 건강 격차

1997년 미국 인구조사에서 정의된 AANHPI 카테고리는 현재까지 병원, 주, 국가 건강 데이터베이스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질병 발생률을 평가하고 건강 요구를 분석해 자원을 배분한다. 그러나 AANHPI 범주는 다양한 인구 집단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50개국 이상의 출신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10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다른 생활 방식과 유전적 배경을 지녀 건강 위험 요인도 크게 다르다. 게다가 이들은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소수 집단 중 하나에 속한다.

현재 AANHPI 커뮤니티 출신의 옹호자, 연구자, 현장 활동가들이 데이터 형평성을 개선하고 건강 증진을 위한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통합된 데이터가 각 커뮤니티의 건강 격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드러나면서, 연구자들은 태평양 제도, 남아시아, 베트남 등 특정 AANHPI 집단의 질병 위험을 개별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커뮤니티별 데이터가 세분돼 인종 정보가 생물학적 요인과 혼동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데이터는 정책 입안자들이 각 커뮤니티의 특성에 맞춰 자원을 배분하고, 보다 효과적인 소통 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AANHPI 데이터를 세분화한 결과, 보건 전문가들은 B형 간염 예방 접종률을 높이고, 코로나와 산불로 인한 하와이 지역사회의 피해를 줄이며, 남아시아 커뮤니티의 심장 질환 위험을 낮추기 위한 식단 전략을 마련하는 등 큰 진전을 이뤘다. 이에 대해 스텔라 이(Stella Yi) 뉴욕대 랑곤헬스(NYU Langone Health) 메디컬센터 전염병학자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자금 지원 불균형과 고정관념이 원인

과도하게 통합된 데이터는 각 커뮤니티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계 미국인의 암 사망 위험이 백인보다 약 40% 낮다고 알려졌지만, 데이터를 세분화하면 의미 있는 차이가 드러난다. AANHPI 그룹 내에서 베트남, 라오스, 차모로(마리아나 제도 출신) 남성에게서는 폐암이 가장 흔한 암으로 진단되며, 라오스, 몽, 캄보디아 남성에게서는 대장암 발생률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통합된 데이터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감춰지기 쉽다. “한 그룹은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다른 그룹은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며,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라고 조셉 카홀로쿨라(Joseph Kaholokula) 하와이대학교 마노아캠퍼스 존 번스 의과대학 하와이 원주민 보건학과 교수는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건 무의미하다. 좋은 과학이 아니며,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이렇게 해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연방과 주에서 관리하는 의료 데이터베이스가 오랫동안 연구자들에게 인구 집단에 대한 제한된 정보만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데이터 분류를 위한 초기 시도는 인구 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산됐으며, 특히 소수 인구 집단의 경우 익명성을 유지하면서도 식별될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있었다. 더불어 AANHPI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건강 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미국 국립보건원(NIH) 임상 연구 지원금 중 AANHPI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젝트에 할당된 비율은 단 0.17%에 불과했다.

한편 이러한 데이터 통합의 배경에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모범 소수자'(model minority)로 보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 아시아계가 전반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며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티나 카우(Tina Kauh) 미국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의 프로그램 매니저는 “데이터를 세분화하지 않는 배경에는 체계적인 인종차별이 자리 잡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의 한정된 지원 속에서 과학자들은 모범 소수자 신화를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카우는 이를 “마치 다람쥐 쳇바퀴에 갇힌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MASALA 연구로 본 맞춤형 치료의 가능성

사회적 요인과 건강의 관계를 깊이 이해할수록, 각 커뮤니티에 맞춘 맞춤형 치료 설계가 가능해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식습관이다. 미국 내 남아시아 커뮤니티의 심장병 비율이 특히 높은데, 이는 주로 전통적인 식단과 연관이 있다. 당뇨병을 연구하는 알카 카나야(Alka Kanaya)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 의학, 역학 및 생물통계학 교수는 대부분의 연구가 서양식 식단을 기준으로 한 표준 질문을 사용해 식습관을 조사하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권의 식생활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건강한 음식에 대한 권고 역시 서양식 식단에 기반한 연구에서 비롯된다. 사람마다 먹는 음식과 요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측정 방법은 결국 의미 없는 데이터를 만들어낼 뿐이다”고 카나야 교수는 설명했다.

지난 10년간 카나야 교수와 다른 연구자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남아시아인의 심장 건강을 조사하는 ‘미국 거주 남아시아인의 죽상동맥경화증 매개변수 연구(Mediators of Atherosclerosis in South Asians Living in America, MASALA)’를 진행해 왔다. 이 연구는 남아시아 전통 음식, 예를 들어 도클라(dhokla, 짭짤한 케이크), 삼바르(sambar, 렌틸 스튜), 찐 생선, 양고기 커리, 그리고 인기 있는 간식을 포함한 식단 빈도 질문서를 통해 식습관을 조사한다. 지난해 연구자들은 약 900명의 식단을 분석해 신선한 채소, 과일, 생선, 콩류가 풍부한 ‘남아시아식 지중해 식단’을 식별했다. 이러한 식단을 섭취한 사람들은 같은 그룹 내 다른 사람들보다 심장병과 당뇨병의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데이터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더 효과적으로 조언할 수 있도록 돕고, 서구식 생활 방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환자들이 쉽게 따를 수 있는 식이 요법을 제안하는 데 유용하다”고 카나야 교수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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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저자는 조티 마두수다난(Jyoti Madhusoodanan) 건강, 의학 그리고 생명 분야 과학 저널리스트입니다. 영어 원문은 How to Fix Health Data for People with Asian and Pacific Islander Heritage | Scientific American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