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가을 성적표 ‘빈약’, 갤러리아는 재단장 미루고 비용 감축에 초점
압구정갤러리아 식품관 리뉴얼 중단
명품 의존도만큼 큰 경기 침체 타격
가을 패션 매출 부진이 날씨 탓?
팬데믹 이후 이어져 온 내수 시장 침체가 백화점 업계에도 영향을 미친 모습이다. 한화갤러리아의 대표 매장인 압구정갤러리아가 올 상반기부터 추진해 온 식품관 리뉴얼 계획을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갤러리아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계 전반이 매서운 겨울을 맞을 전망이다.
상반기 영업이익 6억원, 1년 사이 82% 증발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화갤러리아는 연내 계획했던 압구정갤러리아 지하 식품관과 층별로 위치한 카페 리뉴얼 작업을 전면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리뉴얼을 통해 소비 트렌드를 이끄는 VIP와 젊은 소비자를 집중 공략, 실적 반등을 꾀하겠다던 갤러리아의 계획도 무기한 연기됐다.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의 리뉴얼은 지난 6월부터 본격 추진됐다. 당시 한화갤러리아는 압구정점 지하 1층에 위치한 식품관 고메이494와 전체 건물 층별로 위치한 델리·디저트 카페 및 명품관을 리뉴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후 재건축을 앞둔 만큼 대대적인 리뉴얼 대신 식품관, 명품관 위주로 재단장에 들어간다는 것이 백화점 측의 설명이었다. 이후 한화갤러리아는 리뉴얼을 위해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미래비전총괄(부사장)를 비롯한 임원들이 일본을 방문해 현지 백화점 매장 배치와 인테리어 등을 살피며 현실화에 돌입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구매심리 침체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비용 감축에 중점을 둔 것으로 파악된다. 명품 의존도가 높은 갤러리아는 경기 침체의 영향을 더 크게 받으면서 전국 5개 점포가 일제히 매출 하락을 맞았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갤러리아 백화점의 영업이익은 불과 6억원에 그치면서 이는 전년 동기(35억원) 대비 82.9% 급감했다. 특히 지난 2분기에는 5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상장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김 부사장이 신사업 확대에 주력하면서 기존 주력 사업인 백화점에 맞춰져 있던 무게중심 또한 옮겨갔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김 부사장이 시장 경쟁이 치열한 백화점에 집중하기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화갤러리아는 지난 9월 음료 제조업체인 퓨어플러스를 인수하며 식음료 사업을 확대하고 나서는 등 신사업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나타내고 있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가 식품관을 전면 재개장한 덕을 톡톡히 봤는데, 이를 따라라기보다는 비용 감축으로 노선을 튼 것”이라고 말했다.
식음료 사업 비중 0.1%→6.6%
애초 한화갤러리아가 압구정점의 식품관 리뉴얼을 추진한 데는 신사업인 식음료 사업의 성장에서 거둔 자신감이 짙게 작용했다. 김 부사장이 직접 추진한 미국 수제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의 성공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강남점을 시작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공격적인 출점 전략을 펼친 파이브가이즈는 현재 4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며, 운영사인 에프지코리아는 지난 한 해에만 100억원의 매출고를 올렸다.
이렇다 보니 한화갤러리아의 전체 매출에서 식음료 사업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커졌다. 본격적으로 식음료 사업을 시작한 지난해 2분기만 해도 전체 매출 중 식음료 사업 비중은 0.1%에 불과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6.6%로 뛰었다. 매출액 또한 1억7,000만원에서 87억8,000만원으로 5,058.2%가 확대됐다. 역성장에 빠진 백화점의 실적을 끌어올릴 구원투수로 식음료를 택한 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갤러리아의 명품 매출 비중이 높은 만큼 상대적으로 객단가가 저렴한 식음료로 소비자를 되찾아오기엔 무리일 거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실제로 한화갤러리아의 매출 중 약 40%는 명품 매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식품관 리뉴얼로 유인할 수 있는 소비자는 기존 ‘큰손’ VIP들이 아니라는 의미다. 시장 한 관계자는 “갤러리아는 전국 점포 수가 5개로 다른 백화점들에 비해 적지만, ‘명품 백화점’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최근 내수시장 위축으로 명품 소비가 급감해 갤러리아는 여타 백화점들보다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겨울 패션으로 반등 나서는 4분기
국내 백화점 매출 부진은 비단 한화갤러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등 국내 대형 백화점 대부분이 일제히 가을 의류 판매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롯데쇼핑은 올해 3분기 백화점 매출(별도 기준)이 7,553억원으로 전년 동기(7,615억원) 대비 0.8% 감소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도 769억원에서 707억원으로 1년 새 8% 줄었다. 비슷한 시기 발표된 현대백화점의 매출과 영업이익도 모두 감소했다. 매출은 5,683억원, 영업이익은 71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1%와 11% 줄었다.
유통가는 이같은 부진을 날씨의 영향으로 풀이했다. 이상 고온으로 유난히 여름이 길어지면서 소비자들의 가을 패션 수요가 쪼그라든 것이다. 백화점 매출의 절반가량을 지탱하는 패션 부문이 타격을 입으며 전체 실적까지 끌어내렸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소비 심리를 한껏 위축시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9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여성 정장(-9%), 여성 캐주얼(-3.4%), 남성 의류(-8.2%), 아동 스포츠(-1.8%) 등 전반적인 패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크게 줄었다.
백화점들은 4분기를 반등의 기회로 보고 있다. 외투와 니트 등 단가가 높은 패션 제품의 판매량이 느는 4분기는 백화점업계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데, 올겨울 역대급 한파가 예고된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180개 브랜드가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 행사를 진행 중인 롯데백화점이 대표적 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11월 초부터 이른 추위가 찾아오면서 이달 1~5일 패션 부문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가량 늘었다”며 “겨울 패션 수요 증가세에 발맞춰 마케팅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