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승부수 띄운 삼성전자 ‘이직 러시’, 원인은 성과급?
반도체연구소 최정예 인력, 시스템LSI·파운드리 사업부로 파견
일부 석·박사급을 포함한 임직원들, 성과급 하향 조정 가능성
내부서 불만 고조, 정예 인력 이탈 우려도↑
삼성전자가 반도체연구소의 최정예 연구 인력을 메모리사업부를 비롯해 시스템LSI, 파운드리 사업부 등으로 재배치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석·박사급을 포함한 임직원들의 성과급 하향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인력 이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인력의 경우 개별 사업부 실적과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과급을 수령해 왔지만, 시스템LSI 사업부 등 실적이 부진한 사업부로 배치된 직원들의 경우 내년부터는 성과급이 거의 제로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DS 인력 재배치 박차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DS부문은 각 사업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올 하반기부터 반도체연구소 인력을 사업부로 배치하고 있다. 연구소의 전문 연구인력을 사업부로 투입해 흔들리고 있는 연구개발(R&D)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삼성전자 DS부문이 쇄신의 칼을 빼 든 건 올해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하며 ‘반도체 겨울’을 맞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DS부문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 3조8,600억원은 당초 시장 추정치였던 5조원을 훨씬 밑돈다. 메모리사업부는 5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사업부가 1조6,000억원 영업적자를 낸 데다 올해 임직원 성과급 지급분 선반영 등 2조원 이상의 일회성 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3분기 7조3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SK하이닉스와 비교하면 삼성전자 DS부문 영업이익은 55% 수준이다. HBM 외에도 D램 제품에서 SK하이닉스의 선전이 이어진 점도 삼성전자 DS부문의 인력 재편 가속화에 영향을 미쳤다. SK하이닉스가 지난 8월 삼성전자보다 먼저 10나노미터급 6세대(1c) D램 최초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HBM에 이어 D램마저 위기론에 휩싸였다.
비메모리 사업부서로 간 인력은 성과급 ‘뚝’
이에 삼성전자는 ‘메모리 초격차’ 회복을 위해 조직 개편부터 반도체 개발과 양산 전략, HBM 설계 등을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대대적 혁신에 나선 상태다. 현재 상당수 인력은 D램, 낸드플래시 개발 역량을 복구하기 위해 메모리 사업부에 투입됐으나,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에도 연구소 인력이 대거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이로 인해 기존 반도체연구소 임직원들의 상·하반기 목표달성장려금(TAI) 지급률과 연말에 지급하는 초과이익성과급(OPI)의 하향 조정이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통상 반도체연구소의 경우 메모리, 시스템LSI, 파운드리 사업부와는 별도로 평균 이상의 TAI, OPI를 받았다. 메모리 기술, 시스템 반도체 설계, 공정, 검증 등과 관련한 수석급 연구원을 비롯해 석·박사급 엔지니어와 고급 R&D 인력들이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하반기의 TAI 지급률을 살펴보면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가 0%, 메모리 사업부가 12.5%를 수령한 반면, 반도체연구소와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는 25%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과급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OPI의 경우 그동안의 대규모 적자로 모든 반도체 사업부가 0원이었으나, 올해는 메모리 사업부가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메모리 사업부에만 일정 수준의 OPI가 지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반해 시스템LSI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는 1년 내내 적자였으며 내년 역시 반도체연구소 수준의 성과급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시스템LSI로 재배치된 한 직원은 “올해는 반도체연구소 소속으로 OPI를 지급받지만, 내년부터는 사업부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받게 되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성과급이 대폭 감소하거나 아예 못 받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연구기관으로 이직 움직임
이는 가뜩이나 인력 이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삼성전자 경영진에도 리스크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 이윤우 전 부회장 체제에서 반도체연구소에 조직관리나 실적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R&D에 전념하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마스터 제도가 대표적이다. 마스터 제도는 사업부 실적과 무관하게 차세대 기술 개발에만 매진해 온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는 전사적 기술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R&D에만 몰두하던 고급 인력들이 사업부로 배치되면서 반도체연구소의 본원적인 경쟁력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인재들의 이직 움직임도 가파른 추세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SK하이닉스의 경력직 식각 엔지니어 공고(3명)에 200명에 달하는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사실이라면 삼성 반도체 라인 내 조건이 맞는 사람은 대부분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입사 지원 관련 내용은 인사 담당자나 당사자 본인 아니면 알기 어렵지만, ‘이례적’으로 SK하이닉스의 여러 부문으로 지원자가 몰리자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저연차 삼성 반도체맨의 SK하이닉스행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5년차 미만 경력직을 채용하기 위해 주니어탤런트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최근 기준을 경력 3년 미만에서 5년 미만으로 완화하고 석박사 학위 기간도 인정해 주는 등 채용 범위를 확대했다. 그러자 삼성전자 출신의 지원이 크게 늘어났다는 전언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실무에 쓸 수 있게끔 키워놨더니 나간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정부 산하 전문 연구기관으로도 삼성 반도체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최근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이 반도체 연구인력 3명을 뽑는 데 삼성 반도체 연구소 등 박사급 인력 50명이 지원했다”고 전했다. KETI는 앞서도 반도체 패키지연구센터에 신규 경력 직원을 채용했는데, 근래 이 센터에 새로 입사한 인력 8명도 전원 삼성전자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삼성 반도체 근무자는 “과거에는 삼성전자 연봉이 단연코 업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성과급(PS)을 받아야만 조금 나은 수준”이라며 “회사 위기론이 겹치면서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