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LG유플러스, ‘왓챠’ 인수 철회, CB 상환 490억이 걸림돌

LG유플러스, 왓챠 인수 포기, 490억 전환사채 상환 부담 기존 투자자에게도 독(毒)으로 작용, 투자업계에서 불만도 많아 구조조정으로 버티기 전략이 답이 아닐지도, 박 대표 해법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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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출신 토종OTT ‘왓챠’가 대기업 산하에 들어가는 스타트업 사례가 될 뻔 했다가 결국 유야무야되는 분위기다. LG유플러스에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200억원으로 책정하고, 신주 인수 방식으로 400억원을 투입해 전체 지분의 2/3를 확보하겠다는 접근으로 인수 논의를 진행했으나, 왓챠가 지난해 말에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조달했던 490억원이 걸림돌이 됐다.

왓챠는 올해 상장을 목표로 지난해 연말에 프리IPO(유가증권 시장 상장 전 시장에 신호효과를 주는 벤처투자) 라운드를 진행했다. 당시 3,38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으면서 주식 대신 전환사채를 발행해 490억원을 조달했다. 투자금은 두나무와 인라이트벤처스 등이 댔다.

/출처=왓챠피디아

통신-OTT 삼국지 어렵나, LG유플러스 인수는 기존 투자자들에게 독(毒)

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전환사채 보유사들 입장에서는 회사 가치가 지나치게 낮아진만큼 굳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기 보다 채권에 대한 상환을 요구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당시 3,380억원이었던 기업가치가 200억원으로 축소되는만큼,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채권을 굳이 주식으로 전환해 30억원 가치도 되지 않는 지분을 받으면서 LG유플러스의 인수를 승인해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LG유플러스 인수 후에는 재매각도 없을 확률이 높아 향후 지분 가치의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당초 LG유플러스는 왓챠 인수를 통해 SK텔레콤이 키우고 있는 웨이브, KT가 CJ미디어그룹과 연계해 영역 확대에 힘쓰고 있는 티빙의 경쟁마를 키우겠다는 입장이었다. 통신사의 역량을 강화해 SK텔레콤, KT와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400억원을 투입해 왓챠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더 이상의 자금을 투입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매각 건에 정통한 관계자의 해석이다. 왓챠가 보유한 OTT업계 역량과 LG유플러스의 통신망 및 가입자 네트워크 간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데 상당한 금액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도 알려졌다.

왓챠, 경영권 매각보다 투자 유치

지난 20일, 왓챠 박태훈 대표는 LG유플러스에 매각보다 추가 투자 유치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왓챠의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경영 악화가 외부에 알려진 지난 7월부터 개인투자자들을 통해 38억원 상당의 자금을 모았고, 여전히 기업 회생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알렸다. 10년 이상 자신의 젊음을 모두 쏟아부어 키운 회사인만큼 왓챠 경영진 전체에 매각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반면, 투자업계 관계자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은 물론 콘텐츠 확보에도 거대 자본이 필요해 OTT 업계는 이미 자본력 싸움이 돼버렸다”며 “코로나-19로 인한 OTT 특수가 끝난 상황에서 왓챠가 새로운 매수자와 논의를 끝까지 이어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왓챠 경영진이 어떻게 자금 위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투자를 받지 못한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폐업을 헀거나 폐업을 고려 중이다. 지금처럼 구조조정을 통한 버티기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반드시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월간활성이용자수도 지난 8월 60만명이었다가 10월에 54만명으로 줄어들었다. 6월에 100만명이었다가 경영 악화 소식으로 대규모 이탈했던 것을 감안하면, 계속 기업을 끌고 가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상 투자금은 헛물켠 상황,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OTT업계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계에서도 왓챠가 OTT 사업을 계속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돈다.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과 더불어 시작했던 OTT 사업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상황인만큼, 기존의 영화 평점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왓챠의 초기 영화 평점 서비스인 왓챠피디아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OTT로의 사업 확대 뿐만 아니라 기술 기반의 플랫폼 개발, 영화사업 투자업 등등의 다양한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OTT로 업력을 더 쌓은데다, 정부에서 OTT업계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하고 있는만큼, 투자금이 대규모로 투입되어야할 자체 콘텐츠 확보 사업에 집착하기보다 업력과 급변하는 OTT환경을 활용하는 사업 구상을 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광고 스타트업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광고 삽입을 통해 OTT업계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데다, 왓챠가 기술력을 갖춘 카이스트 출신들의 집단인만큼, 광고 타깃팅과 OTT를 엮은 서비스로 ‘피봇(Pivot, 스타트업이 사업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