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짜리 시한부 스타트업’ 양산하는 규제샌드박스

4년동안 법 개정만 기다리는 신세 조건부 승인에 여전한 ‘포지티브 규제’라는 지적 모호한 관할 부처에 고통받는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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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과기부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 5주년을 맞았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수혜를 받았지만 반쪽짜리 규제 완화에 신음하는 업체들도 있다. 규제샌드박스에 승인받아 실증 특례 및 임시 허가를 받은 4년 간은 적법하게 사업을 할 수 있지만 기간 내에 관련 법률이 개정되지 못한 경우 사업을 계속 영위할 수 없다. 상임위원회별 안건심사 순서에서 후순위로 밀려 법령 정비 기간이 지연됨에 따라 해당 혁신 사업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새해 중점 입법과제로 국회 각 상임위에서 규제샌드박스와 관련해 우선 심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해 업계의 기대가 크다.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며 성장하듯, 신기술 기업들이 일정 조건 하에 규제 없이 사업을 영위할 기회를 주는 제도다. 2일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5년간 규제 샌드박스 혜택을 본 신기술 사업은 총 767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약 100건은 법령 개정 등 규제 개선으로 이어졌다. 샌드박스에 참여한 기업들은 약 4조 9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규제 샌드박스, 여전한 포지티브식 규제

이처럼 규제 샌드박스로 인해 일부 신기술 스타트업들에 투자 유치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법이 정해주는 사업만 해야 하는’ 포지티브식 규제는 여전하다. 국책 연구원도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공동 발간한 ‘디지털경제와 규제혁신’ 보고서에서 “한국형 규제샌드박스가 신산업 혁신성장 지원을 위한 유연한 규제 생태계 조성에 공헌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양적 확장에 집중해 적절한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등 실질적이고 체감 가능한 규제 불확실성 및 규제 공백 해소에 한계를 노출했다”고 평가했다. 현장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업계에선 “규제샌드박스가 진짜 필요한, 파급력 큰 신기술엔 더 보수적”이라고 말한다. 기존 법령에 없던 신기술들을 바탕으로 하는 기업들이 수년째 허가 보류 상태로 남아있다. 샌드박스 제도 중 ‘신속확인’(신사업 관련 규제가 있는지를 1개월 내 확인) 말고는 관계기관에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데 정해진 시한이 없다. 수년째 결과만 기다리는 스타트업도 있다. 

규제샌드박스 신청 1호 스타트업 ‘모인’은 2016년부터 블록체인 기반 해외 송금 기술을 개발했다. 모인에서 제공하는 해외송금 서비스는 기존 은행보다 해외송금 수수료가 90% 이상 저렴하고, 해외송금 속도는 4배 이상 빠른 것이 특징이다. 모인을 통해 송금하면 중개은행과 스위프트를 거치지 않아 비용은 줄이고, 최장 일주일이 소요되던 해외송금 시간을 지역에 따라 실시간 또는 만 하루 이내 송금이 가능하다. 시장에서 인정받아 누적 투자유치액도 270억을 기록했다. 모인 측은 ‘블록체인-암호화폐 송금’ 방식을 허용해달라고 규제샌드박스 도입 첫해부터 신청했다. 모인은 지난 19년 1월 17일 과기정통부의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규제샌드박스 시행일 첫날 가장 먼저 5건을 접수했다. △3만 달러(약 3300만원)로 제한된 해외송금액 완화 △외화 수취 시 고객 절차 간소화 △거래내역 보고절차 간소화 △외화송금 해외업체 국내 등록 △가상화폐의 해외송금 허용 등이다. 하지만 4년째 부결 상태다. 자금 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9월 암호화폐 거래의 투명성을 높일 목적으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이 시행된 후에도 모인에 대한 심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모호한 입장 탓으로 해석된다. 

‘운영 요건’과 ‘부가 조건’에 목매이는 스타트업

어렵게 승인이 나더라도 법령 개정 의무가 없는 ‘실증특례’인 경우가 많다. 관계기관에서 사업 근거가 되는 법령을 정비해야 하는 ‘임시허가’와 달리, ‘실증특례’ 승인 기간이 끝나면 폐업해야 할 수도 있다. 실증특례 승인을 받은 기업이 투자나 수익 모델 적용에 적극적일 수가 없는 이유다. 정부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승인한 과제 767건 중 실증특례는 624건, 임시허가는 100건이었다. 임시허가 건수는 실증특례의 6분의 1 수준이다. 스타트업들은 이 특례에 따라붙는 ‘운영 요건’과 ‘부가 조건’을 지키다 보면 사업성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스타트업 ‘위홈’은 2019년 규제샌드박스(실증 특례)를 통과했다. 관광객에게 일반 주택을 숙소로 빌려주는 공유숙박 플랫폼이다. 현재는 서울 지역 숙소만 제공 가능하다. ‘서울 지하철 1~9호선 역에서 1km 이내에 숙소가 위치해야’한다는 특례 부가 조건 때문이다. 사업을 확대할 여력이 있지만 정부는 규제 완화에 소극적이다. 조산구 위홈 대표는 “위홈에 방을 올리고 싶다는 지방 숙소 호스트가 많아,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수차례 정부에 부가 조건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뉴코애드윈드는 규제샌드박스에서 ‘실증특례 1호 기업’으로 선정됐던 기업이다. 하지만 ‘실증 특례의 벽’에 갇혀 수십억원 빚에 시달리다 기사회생했다. 창업자 장민우 대표는 배달 기사들의 오토바이 배달통 겉면에 디지털 광고판을 설치해 음식점 광고를 노출하는 사업 모델로 2019년 5월 실증 특례를 따냈다. 옥외광고물법 규제 대상에서 일단 제외됐다. 사업성을 검증할 기회였다. 특례의 효과는 거의 없었다. ‘광주 및 전남에서 오토바이 100대까지 적용할 수 있다’는 부가 조건이 원인이었다. 배달 기사 인건비와 보험료 등을 감안하면 오토바이 1대당 연간 5000만원 이상 투자해야 해 100대로도 수익을 내기는 어려웠다. 결국 장 대표는 17대로 테스트하며 부가 조건이 완화되기만을 기다렸다. 

과기부는 확대 허용에 힘을 실어주었다. 교통안전을 우려한 행정안전부의 반대가 심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뉴코애드윈드는 수익성 없는 사업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쌓인 은행 대출금 등 빚만 수십억원에 달했다. 장민우 대표는 “부처 간 핑퐁게임만 쳐다보다 죽어가는 신세다. 규제샌드박스는 기업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모래밭이 아니라 스타트업처럼 작은 기업들을 잡아먹는 개미지옥”이라며 규제가 없는 해외로 본사 이전을 예고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숨통이 트였다. 과기부가 뉴코애드윈드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행안부는 광주·전남으로 한정했던 운영 범위를 서울·경기 및 6대 광역시와 제주도로 대폭 확대했다. 운영 대수도 100대에서 최대 1만대로 무려 100배 늘렸다. 뉴코애드윈드는 2024년 2월까지. 서울·경기 및 6대 광역시와 제주도에서 디디박스의 사업성을 검증할 수 있다. 디디박스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1만대로 규모를 확장할 수 있다. 장 대표는 “과기부와 행안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들이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시장 상황에 맞는 적극 행정을 펼친 결과물”이라며 “혁신 벤처기업이 데스밸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결정”이라고 기뻐했다. 이어 “정말 고난의 길 그 자체였다. 디디박스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투입된 수십억원의 투자금과 인건비, 전시회 참가비용 등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대며 수차례 사업을 포기하려다 기적같이 살아남은 듯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모호한 관할 부처, 피해는 업체가

규제샌드박스 승인 현황을 살펴보면 사업 내용이 유사하고 쟁점도 동일한 ‘실외 자율주행 로봇’에 관하여 1건은 ICT  규제샌드박스,  1건은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를 통하여 각 실증특례를 받았다.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에서는 “정보통신융합 제품ᆞ서비스의 경우 ICT  규제샌드박스 또는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 중 사업자의 편의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업체 입장에서는 양쪽에 모두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하고 있다. 양쪽에 적용되는 관련 법령 규정이나 양식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동일한 신기술ᆞ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신청서 2건을 작성ᆞ제출해야 한다. 

일례로  ICT  규제샌드박스는 △기술ᆞ서비스 내용  △규제특례 신청 내용(법률) △세부 실증 계획,  △실증 운영 계획  △기대효과  △실증 이후 계획, △추진 체계 및 예산의 7개 항목을,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는 △신제품ᆞ서비스 설명서,  △사업실시계획서 △손해 발생 가능성 및 손해배상 방안의 적절성 △사전 검토 확인서의 4개 항목을 각각의 실증특례 신청서 양식에서 요구한다. 양쪽의 규제샌드박스를 모두 적용 가능한 사업의 경우, 어느 한쪽을 선택하였다는 우연한 사정으로 인해 향후 절차 진행 및 승인 여부가 달라지는 불합리를 겪게 된다.

“규제는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암”

지난 3월 7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스타트업 민간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에서 현행 규제샌드박스 개선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선 답변에서 “혁신 스타트업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동원해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책은 모호하다.

이에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규제샌드박스 제도 운영방식은 개별 사업자의 신청을 기반으로 하는 ‘Bottom-up’ 방식으로 운영된다. 제도의 확장성·지속성 측면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후속 법령 정비 활성화 방안 등을 통해 규제샌드박스 2.0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