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대면 진료 제도화’ 드라이브, 플랫폼 투자사들 ‘방긋’

정부의 비대면 진료 합법화 시도, 플랫폼·투자사 기대감 부풀어 투자 혹한기에도 비대면 진료 분야는 투자 폭증, 후발주자 대거 등장 정부 제도화에 속도 내는 반면 의료계는 ‘지지부진’, 이해관계 충돌로 갈등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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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향후 다시 발생할 전염병 팬데믹에 대비해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들은 물론, 투자사들도 차후 성장 및 수익 창출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싣고 있다.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는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2월부터 한시적으로 허용된 바 있다. 이 시기 관련 플랫폼은 30여 개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시장의 의구심을 사며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이 수익 모델을 만드는 데 실패한 가운데,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 추진으로 관련 스타트업과 투자사들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투자사들은 투자 혹한기 상황 속에서도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에 꾸준히 자금을 제공, 이들의 미래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투자 폭증

비대면 진료 사업은 투자금을 기반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선두 주자인 닥터나우, 똑닥, 굿닥 등은 이미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한 바 있다. 닥터나우는 지난해 6월 4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 누적 52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닥터나우의 투자에는 네이버, 미래에셋벤처투자, 소프트뱅크벤처스, 새한창업투자, 해시드, 크릿벤처스, 미래에셋캐피탈, 앤파트너스, 스프링벤처스,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굿워터캐피털,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등이 참여했다.

굿닥은 지난해 5월 21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2020년 7월 기업가치 극대화 및 기업공개(IPO)를 위해 모회사 케어랩스에서 물적 분할된 이후 최초로 외부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투자에는 삼성벤처투자를 비롯해 마젤란기술투자, KB인베스트먼트, IBK기업은행, 디티앤인베스트먼트, 보광인베스트먼트, 이앤벤처파트너스, 티인베스트먼트, 케어랩스 등이 참여했다. 병의원 모바일 접수 플랫폼 ‘똑닥’을 출시한 비브로스는 2020년까지 누적 388억원을 조달한 이후 비대면 진료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한편, 최근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며 이들 기업을 추격하는 신생 플랫폼들도 있다. 인티그레이션, 메듭, 메라키플레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메듭(MEDB)’을 운영하는 메디르는 이달 초 후속 투자를 유치하며 66억원 규모로 프리 시리즈A 라운드를 마무리했다. 지난해 3월 카카오벤처스와 두나무앤파트너스 등으로부터 21억원의 프리 시리즈A 투자를 받은 이후 9개월 만의 후속 투자다. 투자는 IMM인베스트먼트가 주도했으며, KT인베스트먼트와 시드 투자에 참여했던 500글로벌이 후속 투자를 이어갔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나만의닥터’를 운영하는 메라키플레이스는 지난해 1월 10억원 규모 시드 투자를 유치한 뒤, 지난달 62억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투자는 시드 투자를 리드했던 베이스인베스트먼트가 이끌었으며, KB인베스트먼트, 라구나인베스트먼트, 코웰인베스트먼트, 테일, 굿워터캐피탈 등 국내외 벤처캐피탈(VC)이 신규 투자로 참여했다. 기존 투자사인 스프링캠프와 패스트벤처스는 후속 투자에 착수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속도 내는 정부

OECD 회원국 38개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37개국에서 비대면 진료는 합법적인 의료 행위다. 미국의 경우 기존 농촌 거주자와 말기 신장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으나, 현재는 장소나 질환 제한 없이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재진과 만성질환에 한정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지만, 현재는 초진 환자에게도 허용한다.

국내에서도 비대면 진료 합법화를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해 의료계·시민단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지난 5월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도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일차 의료 중심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국정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실제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 시점을 내년 6월로 잠정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국회에서도 속속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이어 11월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최혜영 의원은 비대면 진료를 대리처방자, 도서·벽지, 교정시설 수용자·군인 등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봤다. 일종의 의료 사각지대 보완책인 셈이다. 최 의원 법안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 의사의 판단에 따라 선택적으로 제공하게 된다. 단 대리처방환자, 수술 후 관리 환자, 중증·희귀난치질환자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병원급 의료기관도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 또 의료인 책임의 경우 대면 진료와 동일하되 ‘면제 사례’를 명시하고, 불가항력적 발생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국가의 보상 지원을 포함했다.

이종성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섬·벽지 등 거주자, 국외 거주자, 장애인, 교정시설 수용자, 현역 복무 군인, 감염병 환자 및 재진에 한정해 만성질환자·정신질환자 등을 비대면 진료 대상으로 정했다. 비대면 진료 기관에는 의원급 의료기관과 복지부 장관이 필요성을 인정해 지정한 병원급 의료기관이 포함됐다. 단 주기적으로 대면 진료를 실시해야 하며, 마약류 등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의약품은 처방할 수 없다. 책임 소재의 경우 대면 진료와 같으나, 과실을 인정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다면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제도화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비대면 진료 시장 역시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게 스타트업 및 투자사들의 전망이다. 제도적 정착과 함께 시장이 커지면 스타트업은 다양한 수익모델을 고안해낼 수 있으며, 투자사는 성공적인 엑싯(Exit, 투자금 회수)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의료계 합의 부족, 제도화 이후에도 ‘산 넘어 산’

하지만, 현재 의료계에서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과 관련한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해관계가 부딪히며 좀처럼 의견이 합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에서 준비한 관련 협의체에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가 불참해 사실상 논의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으며, 향후 발표될 의료정책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내부적인 검토 절차를 거쳐 총의를 모으겠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진료 대상이다. 복지부와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 대상을 경증·만성질환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봤지만, 환자·소비자 단체는 중증 질환 및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도 비대면 진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도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 가능 여부, 의사 책임 수준, 의료 정보 보호 방안 등 다방면에서 각자의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신속한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정작 의료계는 아직 내부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제도 미비로 인한 곤경에 처해 있다. 서울시의사회에서는 지난 6월 대표적 비대면 플랫폼인 ‘닥터나우’를 불법행위에 따라 고발했으며,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고자 정부에서는 지난 8월 병원·약국 담합 금지 등 ‘비대면 진료 플랫폼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비대면 플랫폼 ‘닥터나우’가 배달약국 운영 의혹 및 전문의약품 불법 광고 등을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의료계 의견 합일, 사회적 인식 개선 등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이처럼 불안정한 상황에서 투자사들이 시장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투입할 경우, 오히려 시장 성장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중재자가 되어 이해관계를 정리하고, 속도감 있게 제도화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