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인베스트먼트, 민간출자만으로 370억 벤처펀드 결성 성공

민간 출자만으로 370억원 규모 펀드 조성, 주요 출자금은 삼성증권으로부터 민간 주도 벤처 생태계 위해 움직이는 정부, 섣불리 발 빼면 오히려 혼란 가중될 수도 국내 벤처 시장 성장 위해서는 ‘투자-성장-회수’ 선순환 이끌 우수한 VC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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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HB인베스트먼트

HB인베스트먼트가 민간 출자만으로 370억원 규모의 ‘HB디지털혁신성장2호펀드’를 조성했다고 22일 밝혔다. HB인베스트먼트 측은 추가 수요를 반영해 펀드 규모를 500억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번 펀드의 주요 출자금은 삼성증권의 184억원 규모 신탁 상품이다. 삼성증권은 지난해에도 신탁상품을 기반으로 HB인베스트먼트와 ‘HB디지털혁신성장1호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1호 펀드는 슈어소프트테크, 자비스앤빌런즈, 뽀득 등 11개 스타트업에 투자해 수익을 올렸다. 특히 슈어소프트테크의 경우 투자 6개월 만에 스팩(SPAC) 합병 등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삼성증권 프라이빗딜소싱(PDS) 팀 담당자는 “HB인베스트먼트의 황유선 대표와 박하진 대표는 업계를 대표하는 스타 운용역”이라며 “1호 펀드를 통해 운용 역량을 증명했고 2호 펀드는 어려운 시장 상황과 높은 금리 수준을 반영해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인 조건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어 “HB인베스트먼트와 황유선 대표가 많은 금액을 출자하며 책임투자 의지를 드러낸 진정성 역시 높게 평가받았다”며 “벤처투자펀드의 소득공제, 비과세 혜택 등 차별화된 상품성도 초부유층의 선택을 받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정부 “정책 모펀드-민간 모펀드 2중구조 형성한다”

민간 출자만으로 펀드가 조성되었다는 것은 벤처투자 시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례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벤처투자 시장이 크게 위축되며 정부의 민간 모태펀드 활성화 정책에 기대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출발해 정부 모태펀드는 정부 자금으로 조성해 민간 펀드에 출자하는 펀드로, 17년간 ‘제2 벤처 붐’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해왔다. 2021년에는 역대 최대 수준의 벤처 투자액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 모태펀드가 정부 주도 벤처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는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벤처 투자 심리가 경직되며 민간이 보유한 유동성을 벤처 생태계로 유입시켜 스타트업의 ‘돈맥경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이에 정부는 모태펀드 활성화를 위해 현행 정책 모(母)펀드 일변도에서 ‘정책 모펀드’와 ‘민간 모펀드’ 2중구조로 두꺼운 투자 풀을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관(官) 주도의 벤처 투자 생태계를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민간 주도 형태로 바꿔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국내 순수 민간 벤처펀드 비중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민간 모펀드는 전문성 있는 대형 벤처캐피털(VC)이나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는 만큼 민간 투자자 모집에 유리하다는 특징이 있다. 정부 재원 없이 조성될 경우 정책 목적 투자 의무(60%) 규제에서 벗어나 수익성 중심으로 펀드를 운용할 수 있다. 운용 자산 중 40%를 기존 벤처펀드에서 투자가 제한됐던 상장주식, 해외기업, 사모펀드(PEF) 등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

차후 민간 모펀드는 주로 민간 출자 수요와 투자 수익성이 높은 분야나 기존 모태펀드는 청년창업, 여성기업 등 정책 지원 필요성이 높은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민간 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민간 모펀드 법인 출자자에 최대 8% 세액 공제 혜택과 개인 투자자에 출자금의 10% 소득공제 혜택을 각각 제공하는 등 세제 인센티브를 내건 상태다.

벤처 관련 정부 사업의 민간 이양 사례

정부는 모태펀드뿐만 아니라 점차 다양한 벤처 관련 사업을 민간으로 이양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타트업 페스티벌 ‘컴업’이 있다. 지난해 4회를 맞이한 컴업은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전 세계에 알리고 해외 투자자 및 스타트업 등 글로벌 창업 생태계와 교류하기 위해 마련된 국내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페스티벌이다. 그간 민관 협의체 형태의 조직위원회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지난해부터 민간 주도-정부 조력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코스포가 행사의 운영 및 기획 등 전반을 담당하게 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향후 5년 안에 민간이 컴업 페스티벌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벤처 확인 제도도 민간으로 이양됐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벤처기업 확인 주체를 기술보증기금 등 공공기관에서 민간으로 변경하고 혁신성, 성장성에 중점을 두도록 벤처기업 확인 요건을 개편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기업이 보다 용이하게 벤처기업 확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민간 벤처모펀드 활성화는 이처럼 정부의 역할을 민간으로 인양하는 사례 중 하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6년까지 연간 8조원대의 벤처펀드 결성 생태계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밀어주는 ‘역동적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기부는 올해 모태펀드 예산을 지난해(5,200억원) 대비 40%가량 삭감했다. 1조700억원에 달했던 2021년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 모태펀드 규모가 줄어들자 오히려 민간 출자 비율이 감소하고 정부 예산 출자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밀어준다’는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국내 시장에서 민간 모펀드가 안정적으로 형성되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세제 지원 등 정부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수 벤처기업과 우수 VC의 선순환

민간 벤처펀드 조성을 선도하고 있는 HB인베스트먼트는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중소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하고 있다. 수년간 다수의 창업투자조합을 결성해 성공적으로 운영해왔으며, 지난해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투자 수익률도 우수한 편이다. 일례로 지난해 HB인베스트먼트는 반도체 장비 기업 HPSP에 195억원을 상장 전 투자했다. 주당 1만8,106원에 106만2,960주를 확보한 것이다. 이후 지난해 7월 공모가 2만5,000원에 코스닥에 상장한 HPSP는 같은 해 9월 주가가 7만원 선까지 상승했다. 자그마치 3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이에 더해 HB인베스트먼트는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처음으로 스팩 합병을 통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HB인베스트먼트가 합병하려는 법인은 ‘엔에이치기업인수목적23호’로, 합병이 원활하게 이뤄질 경우 HB인베스트먼트가 존속법인이 되고 엔에이치기업인수목적23호는 소멸한다. 합병 예정 기일은 내년 4월 초이며 예상 시가총액은 약 650억원 규모다.

최근과 같이 IPO 시장이 약세인 상황에서는 스팩 합병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고정된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HB인베스트먼트가 합병에 성공할 경우 엔에이치기업인수목적23호의 순자산 148억원을 확보하게 된다. 투자 역량을 살려 비우호적인 시장 상황에 적합한 형태의 상장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HB인베스트먼트처럼 역량을 갖춘 투자사가 우수한 벤처기업과 발을 맞추면 투자, 성장, 회수의 선순환 체계가 구축된다. 이 같은 선순환을 딛고 탄생하는 것이 ‘유니콘’이다. 국내 벤처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아이디어를 보유한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시장을 떠받치고 이끌어나갈 우수한 VC가 필요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