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STO 제도권 편입, 국민연금이 ‘코린이’ 된다? – ④ 국민연금의 투자 가능성·해외 사례
국민연금 대체투자분야 투자금액 152조원, 1%만 투자돼도 1.5조 싱가포르,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기반 증권 토큰 플랫폼 iSTOX 설립 한발 늦은 한국, 전통 금융업계와 신흥 가상자산 업체 모두 협력·경쟁해야
국민연금의 투자 가능성과 그 의미
당국은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STO 토큰 투자의 자산 형태를 증권으로 확정 지으면서 증권 관련법인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의 규율 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대체투자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토큰 증권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주식, 채권 등 전통적 투자자산을 제외한 대체투자 분야에 집행한 금액은 전체 금융 부분 투자의 28%, 152조원에 육박한다. 이 금액의 1%만 투자되더라도 1.5조원이 토큰증권 시장에 투입된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의 자산배분 대상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국민연금이 몇 %씩 투자할 것인가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연금 기금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국민연금은 적립금 규모로 전 세계 3위에 이르는 거대 공적 연기금이다. 국내 자본 시장에서는 이미 슈퍼 갑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되었으며 전 세계 자본·연금 시장에서도 그 존재감을 점점 더 강화해 나가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민을 대신해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대규모 기관 투자자다. 은퇴자에게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수입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국민연금의 주요 목표를 감안한다면 필연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투자 전략을 짜야 한다. 자연스럽게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STO의 등장으로 국민연금 기금은 안정성과 성장 잠재력 사이에서 새로운 옵션을 갖게 됐다.
국민연금이 STO에 공식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경제적 영향은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각화다. STO는 전통적인 자산군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는 수익을 제공할 수 있는 신흥 자산군이다. 즉 STO에 투자하면 시장 변동성에 대한 헤지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장기적으로 기금 안정성에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영향은 STO의 합법성과 수용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연기금의 STO 투자 결정은 다른 기관 투자자와 대중에게 STO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합법적인 자산군임을 알리는 신호다. 이는 STO의 채택 증가와 주류 금융 시스템으로의 통합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 영향은 상당한 잠재적 수익이다. STO는 부동산, 예술품 또는 기타 수집품과 같이 이전에는 유동적이지 않았던 자산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률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STO에 투자하면 실물 자산 시장에도 긍정적인 경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STO는 실물 자산을 금융화하는 기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자산을 ‘토큰화’하여 부분 소유를 허용하면 자산에 대한 유동성과 접근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STO에 투자함으로써 실물자산 시장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고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올 수 있다. 하지만 STO 투자에 위험이 따르는 것은 분명하다. 아직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고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STO에 투자하는 것은 당장 다가올 미래는 아니다. 또한 STO를 둘러싼 규제 환경은 여전히 불확실하며, 규제의 변화는 국민연금의 투자의사 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제 토큰 증권을 대체 투자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고려할 수 있게 됐다. 국가 경제적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인 동시에 국민연금으로서도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당국이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STO를 둘러싼 규제 프레임워크를 명확하게 제시하여 투자자들에게 어느 정도 안도감을 주고 있다. STO 투자는 위험이 따르지만 △포트폴리오 다각화 △실물 자산의 금융화 △시장 변동성에 대한 헤지 등 다양한 경제적 이점이 있다.
해외 사례
STO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그 인기가 높다. 벌써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는 STO 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를 마련하고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한 지 오래다. 일본에서는 STO가 금융상품거래법의 규제 체계에 편입됐다. 이 법은 증권형 토큰을 주식이나 회사채와 같은 유가증권으로 정의하고 주식 발행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 증권형 토큰 공개 협회(JSTOA)는 2019년 10월 일본의 주요 증권사 6곳이 STO와 관련된 업계 규칙과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기 위해 설립했다. JSTOA는 2020년 4월 일본 금융청의 인가를 받았다.
미국은 STO를 통해 발행된 디지털자산이 증권에 해당할 경우 증권과 동일한 규제를 부과하고 있으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연방 대법원 판례를 통해 정립된 투자계약 요건 기준인 Howey Test를 통해 토큰의 증권성을 판단한다. 해당 테스트는 금전 투자, 공동 사업, 투자자의 수익 기대, 제3자의 노력에 대한 수익 창출의 네 가지 요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에서 증권형 토큰을 발행하려면 연방 증권법에 따라 SEC에 등록하거나 증권법 면제를 신청해야 한다. 증권형 토큰의 유통은 SEC의 규제를 받으며 기존 증권 거래소와 유사하게 운영된다. 증권형 토큰 거래 플랫폼은 대체 거래 시스템(Alternative Trading System, ATS)으로 승인되고 SEC와 금융산업규제당국(Financial Industry Regulatory Authority, FINRA)에 브로커-딜러로 등록돼 있다.
싱가포르
한편 싱가포르는 이 분야의 대선배 격으로서, STO 합법화의 표준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싱가포르 통화감독청(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 MAS)은 2017년 8월 성명서를 발표하여 증권형 토큰을 기존 증권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증권선물법(SFA)에 따라 규제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지 오래다. SFA의 적용을 받는 디지털 토큰 발행자는 발행 전에 투자설명서를 제출하고 등록해야 하며, SFA와 금융자문업자법의 적용을 받는 발행자와 거래소는 라이선스 의무, 자금세탁 및 SFA와 금융자문업자법에 따른 요건을 준수해야 한다.
이후로도 지속해 관련 규제를 정비해왔다. MAS는 2019년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14)가 채택한 강화된 자금세탁방지(An-ti-Money Laundering, AML) 및 테러자금조달방지(Countering the Financing of Terror-ism, CFT) 권고안을 받아들이며, 싱가포르의 AML/CFT 규정이 모든 디지털토큰에 적용될 수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또한 MAS는 2020년 2월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증권 토큰 플랫폼인 iSTOX을 승인했고, 동년 12월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을 공인시장운영자(recognized market operator, RMO)로 승인하고 세계 최초로 은행의 디지털 거래소 설립을 허가했다.
토큰증권 산업의 부상
증권형 토큰 거래 플랫폼 산업의 출현에는 전통적인 금융업계와 신흥 가상자산 업체가 모두 기여하고 있다. 은행, 증권 거래소,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탈중앙화 거래소, 증권형 토큰 거래소 등이 증권형 토큰 거래 플랫폼 산업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러한 거래 플랫폼은 상장된 증권형 토큰 관리, 커스터디 서비스, KYC(Know Your Customer), 적격 투자자 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STO를 신뢰할 수 있는 자산군으로 인정하여 이미 STO 규제가 확립되어 온 지 오래다. 특히 일본, 싱가포르는 STO를 제도권에 편입시켜 규제 테두리 안에서의 육성을 택하였으며, 이러한 규제체계 정비의 결과 증권토큰의 발행ㆍ유통에 관해 허용되는 행위의 범위가 명확해짐으로써, 다양한 유형ㆍ무형의 자산을 토큰화(tokenization)하여 발행ㆍ유통하는 STO의 제도적 인프라가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 여러 선진국은 강력한 규제 감독을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였으며, 투자금이 보호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일본 증권형 토큰 발행 협회 설립과 싱가포르의 증권형 토큰 거래 플랫폼과 같은 제도적 인프라의 발전은 증권형 토큰 시장의 성장과 발전에 더욱 기여했다. 한국에서도 관련 인프라의 신설을 통해 하루빨리 STO와 주류 금융 시스템의 통합이 이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