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벤처펀드 수탁 가이드라인 도출…벤처업계 발목 잡던 ‘수탁 거부’ 고질병 사라질까

중기부, VC·AC협회 등과 ‘수탁업무 처리기준’ 마련, 3월 적용 금융권 ” 돈 안되고 책임 많아” 벤처펀드 수탁 기피… 업무 조정으로 부담 덜어줘 벤처업계 “수수료율 인상, 업무 이관, 규모 조정 등 여러 방안도 정부와 검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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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소벤처기업부

3월부터 신탁기관을 통한 벤처투자조합 재산 수탁 업무가 쉬워진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캐피탈(VC)협회, 한국액셀러레이터(AC)협회, 한국엔젤투자협회는 이런 내용이 담긴 ‘벤처투자조합 재산 수탁업무 처리기준’을 마련했다고 최근 밝혔다. 중기부는 이달 중 업무집행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3월부터 각 업권별로 적용하기로 했다. 현행 벤처투자촉진법(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20억원 이상 벤처펀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펀드 재산의 보관과 관리를 은행, 증권사 등 신탁업자에 위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새로 마련한 처리기준에는 신탁은행 수탁업무 범위와 운용지시, 재산내역 대사 등이 담겼다. 운용사는 신탁업자에게 조합 재산 운용에 관련한 지시 이후에 발생한 사채권과 같은 투자 관련 권리증서를 15영업일 이내에 제공하고, 신탁업자는 권리증서를 제공하지 않는 운용사를 중기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운용사와 신탁업자의 업무 기준을 명확히 한 것이다.

국내 은행 수탁업무 관계자들의 벤처펀드 수탁 거부는 벤처업계 고질병으로 줄곧 지적되어 왔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사모펀드 같은 펀드의 수탁 기준이 상향되면서, 신탁업자는 벤처펀드에 대한 수탁업무를 기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라임·옵티머스펀드 사태로 인해 신탁업자가 책임지는 범위가 크게 넓어진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됐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처리기준이 마련돼 신탁업자 업무와 책임범위가 명확해졌다”며 “그만큼 수탁 기피 현상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조합의 재산 수탁과 관련된 업무 범위 및 책임소재에 대해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최근 증권·보험사가 조합의 재산 수탁에 신규로 참여하면서 조합의 재산 수탁 여건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픽사베이

수탁 기피하면 펀드 결성 못하고 벤처 투자 감소…”벤처 악순환 막는다”

일반적인 사모펀드와 비교해 규모가 작은 수탁 규모의 문제도 협상 안건으로 오르고 있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벤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 벤처펀드 평균 결성액은 154억원으로, 평균 수탁수수료율인 0.03~0.05%를 적용하면 수탁기관이 챙길 수 있는 수수료는 770만원 수준이다. 업무에 비해 적은 기대 수익 탓에 수탁기관들은 수탁 업무를 꺼려왔다.

VC협회와 AC협회 등 벤처투자업계는 그동안 수탁기관을 대상으로 수탁을 받아줄 수 있는 하한선을 요구했다. 벤처업계에 따르면 최소 50억원 규모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수수료율이나 수탁 규모의 하한선 문제를 논의하는 일은 차후로 미룬 것”이라며 “일단 업무 범위와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벤처펀드 수탁 기피 현상을 완화했다는 것에 이번 조치의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중기부는 지난 2020년 벤처투자촉진법을 개정해 벤처펀드 운영 주체를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와 증권사로 확대한데 이어, 소규모 벤처펀드 결성이 가능하도록 길을 터줘 벤처투자 시장의 저변 확대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하지만 벤처펀드 수탁을 기피하는 금융권에 발목이 잡히면서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탁계약서가 없으면 중소형 VC들은 펀드 결성이 어려워지고, 이는 결국 스타트업에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부정적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수탁 업무 이관, 수수료율 인상, 기준 상향 등 여러 방안 논의 중

벤처업계에 따르면 이번 조치처럼 수탁기관에 주어진 업무를 덜어주는 방안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수탁기관의 관리감독 업무 일부를 VC협회와 AC협회 등 벤처투자업계로 이관하는 방안이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기술보증기금이 수탁업무를 맡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벤처펀드의 수탁수수료를 최대 3배까지 인상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현재 벤처펀드 수탁 평균 수수료율은 0.03~0.05%인데, 이를 최대 0.1%까지 끌어올려 금융권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기부는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와 수탁기관들 간 수탁수수료 인상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투자조합에 대한 투자조합 재산 의무 위탁 기준도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규모를 높였는데, 이 설정액을 추가로 더 높이자는 것이다. 한국AC협회 관계자는 ” 벤처투자업계가 감당 가능한 수준까지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수탁의무 설정액을 완화하는 방법을 중기부와 함께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