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노조VS정부? 타워크레인 월례비 논란, 면허정지 ‘초강수’

결격 사유 기준 △금품 부당 수령 △공사 방해 △불공정 작업 1차 위반 시 3개월, 2차 6개월, 3차 12개월간 정지 전국 대형 타워크레인 3,654대, 노조원 4,000명, 면허자 2만2,93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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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간 ‘월례비’ 관련 키워드 클라우드/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정부는 최근 월정액 수수, 공사 방해, 업무 방해 등을 이유로 타워크레인 조종사 면허를 이달 1일부터 최대 1년간 정지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건설기계 조종사들의 불법-불공정 행위가 늘어나면서 공익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공사 지연이 장기화되는 데 따른 조치다. 이에 대해 건설노조는 월급을 받지 않고 장시간-위험 노동을 거부하겠다며 ‘준법 투쟁’을 경고한 상태다.

면허정지라는 초강수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결격 사유가 되는 위법-부당 행위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월 사용료 등 금품 부당 수령 △건설기계로 현장을 점거하는 등 공사 방해 △불공정 작업 등이다. 특히 월 사용료 수취는 주요 품위손상 사례로 간주해 해당 행위를 한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면허를 1차 위반 시 3개월, 2차 6개월, 3차 12개월간 정지한다. 국토부는 불공정-불법행위에 대한 신고를 접수한 후 증빙서류를 확보하고 현장조사를 실시해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이후 행정처분심의위원회와 청문을 개최해 자격취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국토부는 국가기술자격 처분 결과를 건설기계 조종사 면허를 발급하는 시-군청과 공유해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할 예정. 국토부가 마련한 지침은 이달 1일 이후 발생하는 조종사 비위행위부터 적용된다. 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은 건설사들이 월례비 관행을 없애고, 그 대가로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일을 시키지 말라고 요구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노조는 “월례비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위험한 작업을 수행한 대가로, 관행적으로 지급되는 노동의 대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월례비에 대한 노조의 입장은 좀 더 미묘하다.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크레인 기사에게 추가 근무를 시키는 것이지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기본 입장은 근로시간 단축이다. 그래서 노조는 원칙적으로 월례비에 반대하지만, 현장에서 원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타워크레인 노동자에 대한 월례비 지급을 강압행위로 보고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으로 규정했지만, 노조는 건설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야기한 월례비 지급과 부당노동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건설업계는 “이전 정부까지 여러 차례 노사정 합의를 통해 건설현장의 왜곡된 노사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대부분 합의가 실현되지 못했다”며 “현 정부 들어서는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건설사들은 월급을 받는 대신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작업을 강요해왔고, 이로 인해 건설현장에서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심지어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월례비=임금이라는 판례

한편 광주고등법원이 관행적으로 지급한 타워크레인 월례비는 임금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1심과 2심 판결이 엇갈렸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월례비를 연장 근로 또는 생산성이 올라간 데 대한 정당한 노동 내지 용역 대가로 지급할 거라면 합법적 근로계약 내에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방적인 계약서에 사인하도록 하는 사실상 강요 또는 협박에 의한 월례비 지급은 현행 건설기계관리법에 의해 면허정지를 할 수 있는 벌칙 사항”이라며 “암묵적 계약서를 쓰지 못하도록 해 이런 법적 논란도 원칙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전남 담양군의 한 철근콘크리트 건설업체가 자사가 2개 건설업체에 하도급을 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운전한 타워크레인 기사 A씨 등 16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운전기사들은 업계 관행이라며 월례비 등을 명목으로 한 달에 약 300만원의 돈을 달라고 D사에 요구했다. 이에 D사는 2019년 11월 총 650만 원의 월 사용료를 지급해 손해를 입었다며 A씨 등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D사는 작업 거부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월 사용료를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A씨 등이 받은 월 사용료를 부당이득으로 보고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 등은 타워크레인 업체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았고, D사가 타워크레인 업체를 대신해 임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재판부는 타워크레인 사업주와의 고용관계도 인정하지 않았고, D사가 사용자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고 월 사용료가 “임금의 성질을 가진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D사가 월 사용료에 상당하는 금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묵시적 계약이 성립했다”며 “이에 따라 A씨 등은 월 사용료를 지급받았다”고 판결했다. 하청의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라는 것이다.

법원은 월 사용료가 월급이라고 판결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월례비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범죄자처럼 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월례비는 정확히 뭘까? 일반적으로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건설 현장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는 대가로 인식되지만, 노조와 정부의 입장이 모두 다르다. 추가 수당을 받는 관행은 수년 동안 계속돼 왔지만 각각의 인식이 다르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일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정부는 노조가 불법적인 수수료를 요구하고, 비조합원 근로자를 막고, 타워크레인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조폭인가 노조인가, 창조적 독과점

불법적인 수수료를 요구하고, 비조합원 근로자를 막고, 타워크레인 시장을 독점하는 노조? 마피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건설업계의 일상이기도 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3일 민주노총이 ‘타 조합원에 쌍욕을 하라’고 지시한 내부 회의 자료를 공개하며 “이게 노조인가, 조폭인가”라고 말했다.

최근 국토교통부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건설현장에서 가장 심각한 노조의 부당행위 사례로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월 사용료가 꼽혔다. 노조는 고의로 작업을 늦춰 시간 외 수당을 챙기고 월 수백만 원의 월비를 요구해 건설사가 비노조원을 고용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합비, 발전기금 등 건설 현장과 전혀 상관없는 터무니없는 금전 요구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노조 간부의 아들이 고가의 일본산 야구 배트를 선물로 받는 등 노조는 뇌물과 부패의 온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면 거래뿐만이 아니다. 타워크레인 노조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신규 인력이 업계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타워크레인 기사 면허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2,931명에게 발급돼 있지만, 사실상 노조원이어야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 어렵게 노조에 가입하더라도 타워크레인 조종석에 앉기 위해 4천만원에 달하는 회비를 내야 한다. 국토부 등에 따르면 전국 현장에 설치된 대형 타워크레인은 3,654대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타워크레인 관련 노조 소속 노조원 수(약 4,000명)와 거의 비슷하다. 반면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 따르면 한 해 770여 명(2018∼2022년 평균)의 신규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노조가 사실상의 인력사무소 역할을 하면서 노조원이 아닌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택배나 배달, 퀵서비스 등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부는 불법 노조 활동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하고, 업계는 현재의 독과점 구조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타워크레인 시장을 비노조원에게도 개방해 공정한 경쟁과 일자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건설사와 비노조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돼야만 건설 현장이 정상화될 수 있다. 

방 안의 코끼리

지난 7일간 ‘월례비’ 관련 키워드 네트워크/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지난 1주일간 빅데이터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월례비 키워드로 촉발된 논의의 흐름이 명확하다. △월례비 △노조 △윤석열로 이어진 삼각편대가 논의의 시발점이다. 건설 업계의 정상화라기보다는 정쟁으로 취급되고 있다. 노조도 기업도 정부도 월례비 폐지라는 대의에 대하여 공감하고 있다.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준법투쟁 유형과 대응방안이라는 괴문서를 유포하고 있고 국토부에서는 민노총의 민낯이라며 민노총 내부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과연 진정한 악당은 누구인가? 건설 노조는 악덕 기업들에게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수호신인가 아니면 건실한 기업들을 위협하는 악당인가? 어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건폭’이라는 무참한 단어로 시작된 지금이 기회라고 말한다. ‘준법 투쟁’이라는 형용모순을 써야만 하는 작금의 상황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 자체를 바꿔서 이익을 위한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적 부조리를 그대로 두면 무리한 공사를 요구하며 건네는 ‘제2·3의 월례비’는 또다시 다른 이름으로 등장할 것이다.

건설 노조는 월례비 폐지를 요구하는 동시에 이를 위해서는 위험한 작업 지시를 중단하고 임금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단순히 월급을 받는 자의 면허를 정지하는 것뿐이다. 최근 법원의 판결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지급되는 월 사용료 문제가 어느 정도 밝혀졌지만, 건설 산업을 규제하는 국가의 무능함도 여실히 드러났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임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한 법원의 결정은 국가가 수년간 외면해 온 만연한 하도급 관행을 부각시킨 것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가 건설산업 노동자의 안전과 정당한 대우를 보장하지 않은 자신들의 과실에 대해 언제쯤 책임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방 안의 코끼리를 무시하지 말고 당면한 진짜 문제를 해결할 때다. 정부가 나서서 건설 산업을 규제하고 노동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할 때다. 월례비 논란은 잘못된 시스템의 또 다른 증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