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에 따른 파장’ 국내 벤처대출 시장으로 이어지는 한편, 제도 추진 지속하는 정부
정부가 추진한 벤처대출 사업모델, SVB그룹 주요 사업모델 벤치마킹해 만들어져 SVB 파산 사태 원인 두고 벤처대출 때문 아닌 ‘보유 자산 손실 문제’라는 지적도 한편 벤처대출 도입 위해선 대출 상품 대신 정부의 직접 지원 더 늘려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그룹 파산 여파가 국내 벤처대출 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기업은행 등 정부가 추진해온 벤처대출 사업모델이 SVB그룹의 주요 사업모델을 벤치마킹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선 벤처대출 등의 내용을 담은 벤처투자촉진법 개정안이 발의된 반면 업계에선 벤처대출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도입 추진 중인 벤처대출
벤처대출은 은행 등 대출기관이 자금조달이 어려운 벤처기업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후속투자 유치 시 대출금과 지분인수권 일부를 얻을 수 있는 융자상품이다. 국내에선 중기부가 2021년부터 도입을 추진해왔으며, 이는 최근 파산에 빠진 SVB그룹의 사업모델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 말 기업은행이 1,000억원 규모로 시범사업을 개시함에 따라 국내 벤처시장의 새로운 자금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관련 법안인 벤처투자촉진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해당 법안은 투자조건부 융자 등의 벤처대출을 비롯한 다양한 벤처투자기법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안은 지난 2년간 여러 차례 국회 상임위 소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음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투자방식인 점과 더불어 상품의 복잡한 구조 탓에 벤처업계가 아닌 금융권이 투자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SVB 파산, 벤처대출 때문이 아니다?
일각에선 이번 SVB 파산 사태의 원인이 벤처대출에 있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SVB와 같은 중소형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여신 규모로 인해 대형 은행보다 고금리 상황에 더욱 취약한 특성이 있다”고 말하며 “SVB 파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벤처대출이 아닌 그들이 보유한 미국 장기 국고채의 가격 폭락과 연관이 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국채금리는 지난해부터 크게 상승해왔다. 미국 연준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시작하기 전인 지난해 3월 이전 미국채 금리(10년물 기준)는 1% 후반대를 나타내며 과거 10년 평균보다 낮은 수치를 보였지만, 이후부터는 급속도로 상승해 현재 3.6%~4%를 오르내리고 있다. 채권 ETF와 같은 간접투자상품을 살펴봐도 지난 1년간 -20%를 웃도는 손해를 기록했다.
중기부도 SVB 파산 사태의 원인이 벤처대출로 굳어지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벤처대출뿐 아니라 이와 유사한 융자상품들의 장점보다는 부작용에 관심이 쏠림에 따라 지금처럼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 벤처시장에서도 VC와 스타업이 직면한 자본접근 문제가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벤처대출’ 도입 먹구름, 향후 향방은?
현재 벤처 업계에선 벤처대출과 같은 융자상품이 국내에서 자리 잡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 등이 대출한 돈을 받기 위해선 투자기업의 후속투자 유치가 필수적이지만, 지금과 같이 고금리로 인해 ‘돈맥경화’에 빠진 시장 상황에 후속투자를 통한 회수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벤처대출이 가진 상품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벤처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얼어붙은 시장에 은행이 해당 상품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특례를 주는 등 설계를 정교하게 짜야 한다”고 말하며 “특히 은행이 투자 기업의 재무건전성 판단에 들어갈 때 신주인수권에 대한 이점을 제공한다면 투자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 설명했다.
벤처대출 도입에 대한 찬반양론이 거셌던 만큼 SVB 파산 사태까지 잇따르면서 관련 법안 개정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가 벤처대출과 같은 간접적인 방식보단 직접 지원을 통해 벤처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 벤처시장연구원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시장 참여자들은 벤처대출이 고금리 상황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느낌에 따라 정부의 지속적인 제도 추진은 반발하는 여론만 키울 것”이라며 “올해도 고금리가 지속될 것을 보이는 마당에 차라리 대출보단 벤처업계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