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만에 국회 법사위 통과한 복수의결권, 스타트업 ‘혁신’ 지키는 제도적 기틀 마련되나
첨예한 ‘복수의결권’ 찬반 대립, 26일 본회의에서도 팽팽한 논쟁 이어질 것으로 보여 이미 OECD 국가 다수가 도입한 제도, 반대 측이 지적하는 상법상 문제도 없다 스타트업 도전과 혁신 촉진하려면 각종 정부 지원책보다 ‘경영권 확보’가 우선
벤처·스타트업(벤처확인기업) 창업자들의 ‘경영권 방패’라는 평가를 받는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이 26일 국회 본회의 전 마지막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통과했다. 정부가 법 개정안을 발의한 지 약 2년 5개월 만이다.
국회 법사위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복수의결권 도입을 담은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 일부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기로 의결했다. 복수의결권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가 보유 지분 이상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대규모 투자 유치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 희석에 따른 경영권 약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해당 법안은 일부 의원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2021년 12월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중위) 의결 이후 1년이 넘도록 본회의에 부의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법사위 통과로 장기간 정체되어 있던 관련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됐다. 국회 최종 통과 여부는 차후 7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첨예한 찬반 대립, 본회의 논쟁 치열할 것으로 전망돼
복수의결권은 비상장 벤처·스타트업이 창업주로서 회사를 경영하는 자에 한해 1주당 최대 10개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번에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을 창업한 경영자의 지분율이 30% 미만일 때에 한해 주주들의 동의를 받아 정관을 변경하고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존속 기간은 최대 10년이며, 1주당 최대 10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복수의결권 관련 논의는 21대 국회가 들어선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지난 2월 법사위에서 일부 의원이 상법 원칙과의 상충과 투자자 피해 우려 등을 근거로 제도 도입을 반대하며 한 차례 통과가 불발됐다. 3월에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VC 도덕적 해이 및 벤처 버블 우려 △상장 후 일몰 조항 폐지 유예 또는 폐지 가능성 △재벌 대기업 세습 악용 등의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또 한 차례 법사위에 계류됐다.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복수의결권 제도가 실효성이 크지 않으며 악용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 이번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일부 의원의 반대가 이어졌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것은 상법의 대원칙인 1주 1의결권 원칙을 훼손할뿐더러 소액주주 원칙에도 위반되는 것”이라면서 “부득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반대 의사가 분명하다는 점을 밝힌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법사위에서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혀온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전체회의에 불참했다.
한편 복수의결권 도입을 찬성하는 의원들은 반대 측과의 ‘여론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무경, 박수영, 김병욱, 김경만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은 혁신단체협의회와 함께 오는 27일 본회의 개의 전 기자회견을 열고, 복수의결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혁신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이미 3년 넘게 복수의결권 도입을 두고 논의를 이어온 만큼, 일각에서 주장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충분히 있다”면서 “하루빨리 법안을 통과시켜 유망 스타트업이 지분 희석 없이도 대규모 자금조달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협회, 벤처캐피탈협회 등 벤처 업계는 본회의 개의 이전 각 의원실을 돌며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각 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오는 27일 예정된 본회의에서도 복수의결권 도입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복수의결권, 상법상 문제없는 선진 제도?
복수의결권 도입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복수의결권 주식이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어 ‘위헌’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상법은 1주 1의결권 행사를 원칙으로 삼고 있으나, 1주 1의결권 원칙에 대한 다양한 예외 사항 역시 규정하고 있다. 회사가 의결권이 제한되거나 배제되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상법에 명시된 사항이다.
이에 더해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상법상의 1주1의결권 원칙에 예외를 부여한다는 점을 고려,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활용에 충분한 제약을 두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복수의결권 주식은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지분이 30% 이하로 떨어지거나, 창업주가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하는 경우에만 발행이 가능하다. 아울러 창업주가 상속·양도·사임 등으로 경영에서 물러나거나, 기업이 투자를 받아 편입되는 경우 복수의결권 주식이 보통주로 즉시 전환되도록 제한하고 있다.
복수의결권 주식이 미국·영국·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7개국에서 이미 도입된 선진 자본시장 제도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실제 유니콘 기업 수 기준으로 1~4위에 오른 미국, 중국, 영국, 인도가 모두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시아에서도 복수의결권 제도가 활발하게 도입되는 추세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1주 1의결권’ 원칙이 막강한 영향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일본은 1주 1의결권 원칙을 규정하면서도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1주 1의결권 원칙이 어디까지나 ‘임의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원칙에 얽매여 불필요한 논쟁을 지속하는 대신, 시장의 수요를 고려해 유연하게 관련 제도를 수립한 것이다. 일각에서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복수의결권은 벤처기업의 안정적 투자 유치와 성장을 위해 마련하는 ‘제도적 기틀’일 뿐,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강제하기 위해 도입되는 것이 아니다. 벤처 업계에서는 법률상 문제가 없고, 긴 논의로 이미 충분한 규제 방안이 마련된 제도의 도입을 헌법까지 들먹이며 반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기업 살리기의 핵심은 ‘경영권 보호’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과 고금리로 벤처 시장 전반이 크게 위축되자, 정부는 각종 지원을 통한 ‘벤처기업 살리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일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위원회는 20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서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안에는 10조원 규모의 자금 지원과 민간 모펀드 활성화를 위한 정책금융기관 펀드 조성, 은행·CVC 투자 규제 완화, 다양한 벤처 제도 개선 방안 등이 담겼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여타 지원 방안보다 복수의결권 제도 확립이 ‘벤처기업 살리기’의 핵심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아무리 대규모 정부 지원이 있다고 해도, 창립자의 경영권을 지키지 못하는 시장 구조에서 기꺼이 도전하는 이는 극소수라는 지적이다. 실제 복수의결권 제도가 제때 도입되지 않아 창립자가 자신이 직접 키워낸 회사에서 떠난 선례도 많다. 일례로 메쉬코리아의 유정범 전 대표는 지분 문제로 인해 경영에 난항을 겪다가 끝내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왓챠의 박태훈 대표는 투자 유치를 위해 직접 일군 회사를 매각하라는 주주의 압박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현재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창업자들은 섣불리 투자를 받았다가 경영권을 빼앗길까 늘 노심초사하고 있다. 창립자의 창업 가치관과 혁신성을 지키기 위해 기업공개(IPO)를 꺼리는 사례마저 존재한다. 투자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마련한 자금을 기반으로 성장과 혁신을 이룩해야 할 벤처기업들이 ‘도전’조차 하지 못한 채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복수의결권의 본질적 목적은 창업자가 안정적인 경영권을 기반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국내 시장의 혁신을 책임지는 벤처기업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기초적인 발판인 셈이다. 벤처 업계는 오랜 염원이 이뤄질 수 있을지 고대하며 차후 관련 논의가 이뤄질 본회의에 바짝 촉을 곤두세우고 있다.